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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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37: 성령의 특별한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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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24 ㅣ No.761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37) 성령의 특별한 은사


성령의 은사, 누구를 위한 선물인가?

 

 

초자연적 주입덕은 초자연적이기는 하지만 덕행 실천이라는 측면 때문에 수덕 생활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성령의 은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 번째 위격이신 성령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신비 생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만큼 주입덕행과 은사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주입덕행은 조력 은총으로 자극받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활성화되지만,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활성화됩니다. 따라서 주입덕행은 조력 은총을 전제 조건 삼아 인간이 원한다면 활성화될 수 있으나, 성령의 은사는 인간의 원의와 상관없이 성령이 원하실 때만 활성화됩니다.

 

둘째, 주입덕행은 인간 이성의 지도 관리를 따르기에 인간 행동 양식 안에서 활동하게 되지만,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직접 개입이기에 초자연적인 양식 안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셋째, 주입덕행을 실천하고 있는 동안에 인간 영혼은 능동적이며 매우 활동적인 경향을 띠지만, 성령의 은사가 활동할 동안은 인간 영혼이 의식을 잃지도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있더라도 수동적이거나 수용적인 경향을 띱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언급하다 보면, 독자분들 중에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 말로 ‘카리스마’(charisma)라고 불렀던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떠올리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 특별한 은사에 대하여 상세하게 가르쳤습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1코린 12,7-11).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에게 성령의 특별한 은사에 대해서 헛된 기대를 갖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적이나 이상한 언어의 은사와 같이 때로는 예외적인, 그 은사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카리스마는 성화 은총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또 교회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한다. 카리스마는 교회를 건설하는 사랑에 이바지하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003항).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한 은사는 뛰어난 것이든 더 단순하고 더 널리 퍼진 것이든 교회의 필요에 매우 적합하고 유익한 것이므로 감사와 위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례적인 은총은 함부로 간청하지 말아야 하며, 지레 그러한 은총에서 사도직 활동의 결실을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교회 헌장」 12항).

 

만약 여러분 중에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잘못 이해하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더 좋다고 생각하는 은사를 더 간절히 원했거나, 또는 자신만을 위하거나 자신을 내세워 자랑하기 위하여 은사를 사용하기 원했던 분이 있었다면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결코 비상한 은총이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성화 은총과 함께 주입덕행을 완성하여 인간을 구원에 도달하게 하는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선물입니다. 만약 조력 은총의 자극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주입덕행이 인간의 부족함 때문에 충분히 습성화되지 못하고 불완전한 상태에 머문다면, 우리의 성덕은 제대로 완성 되지 못해 완덕에 다다르기 힘들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성령의 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입덕행의 완성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가 필요했듯이, 영적 여정을 통하여 구원에 다다르기 위해서도 성령의 은사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24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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