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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상처 입은 가정에 대한 교회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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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30 ㅣ No.885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준비하며] 상처 입은 가정에 대한 교회의 배려



올해 바티칸에서 열리는 제14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Synodus) 정기총회(10월 4-25일)는 현대사회의 가정문제를 총괄적으로 다루게 된다. 상처 입은 가정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여줄 것이다.


참된 가정을 위한 노력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는 “교회와 현대세계에서의 가정의 소명과 사명”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주제를 보면 2015년을 지내고 있는 교회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문제는 ‘가정’이다. 우리의 가정이 현대사회의 문화적 경향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위협과 공격을 받고 있는지 거듭 확인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상처입고 힘들어하는지 모른다.

교회는 일찍부터 가정의 참의미를 가르쳐왔다. 가정의 구원론적 의미와 사회학적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느님께서 인간 세계를 찾아주신 장소도 가정이다.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지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이루어진 장소가 가정이다.

우리 또한 모두 이곳에서 참인간으로 성장하고 교육받으며 자신을 형성시킨다. 그래서 어느 시대이든지 가정의 참된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교회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울타리로 보호하여 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그 울타리가 파손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어떤 때는 내부에서 스스로 제거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가 가르치는 전통적인 의미의 ‘가정’이 붕괴되어 가고 있다.

이대로 그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문제이다. 하루빨리 참된 가정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새로운 문화가 새로운 복음으로 정착되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가정은 작은 교회

우리 교회가 가르치는 ‘가정’의 의미를 살펴보자. 가정이란 ‘혼인’을 통해 형성된다. 그렇다면 혼인은 무엇인가? 교회법 제1055조 1항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서약으로 체결되는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혼인은 남녀의 계약으로 체결되는 것이라 했다. 동성(同性) 간의 혼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혼인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부부간의 사랑과 일치를 통한 자아의 완성, 자녀출산, 자녀교육이 그것이다. 혈연으로 형성될 기초 공동체를 내포하고 있다.

혼인의 목적이 완성되는 곳은 ‘가정’이다. 가정은 사랑을 기반으로 형성된 가장 작은 공동체이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희생, 헌신, 그리고 성실과 신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참인간으로 성장하고 훈육되며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을 하느님께서 계시는 성전이고, 하느님을 배우는 학교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가르친다. 그야말로 ‘작은 교회’인 것이다.

국가권력은 무엇보다도 이 ‘가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인간은 모두 이러한 보호의 울타리 속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으며 성장할 권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고자 끊임없이 소리치며 예언자직을 수행해 왔다. 가정의 울타리 안을 성역으로 규정짓고,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이를 해쳐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처 입은 가정이 늘고 있다. 현대사회의 무관심의 세계화와 개인주의, 쾌락주의, 황금의 우상화가 만든 패덕한 문화의 결과이다.


가정의 권리

1983년 교황청은 「가정권리헌장」을 반포하면서 세계 각국에 가정의 권리가 수호되도록 힘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머리말에서 이 헌장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가정권리헌장은, 그리스도인이건 비그리스도인이건,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이라는 자연적이고도 보편적인 사회에 내재하는 기본 권리들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정리하고 이를 형식화하여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헌장은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반포한 「가정 공동체」의 권고에 따라 제정되었다. 교황님은 이 권고의 46항에서, 「가정권리헌장」의 필요성을 요청한 1980년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그 헌장의 제정을 교황청에 위임하셨던 것이다. 「가정 공동체」 46항에서 말하는 가정의 권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깊이 새겨야할 내용이다.

모든 인간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가정을 건설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적절한 수단을 소유할 권리를 지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권리 또한 근원적인 것이다.

생명전달과 자녀교육에 관한 책임을 이행할 권리. 친밀한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의 권리. 결혼제도를 통한 안정된 생활의 권리. 가정의 신앙을 실천하고 전파할 권리. 가정의 전통과 종교적 문화적 가치에 따라 자녀를 양육할 권리. 육체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얻을 권리.

적당한 주택을 가질 권리. 공권력을 지닌 이들과 그 하급 권력자들 앞에서 표현하고 대표할 권리. 다른 가정이나 단체들과 연합체를 구성할 권리. 적절한 기구와 법률의 보호를 받으며 마약과 알코올, 음란물 등에서 미성년자를 보호할 권리. 가정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적당한 오락과 시설을 즐길 권리. 노인의 가치 있는 삶과 죽음을 보장할 권리. 더 나은 생활을 찾아 이주할 권리.


사목적 배려가 필요한 가정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인간이면 누구나 가정을 이루고 이를 유지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 같은 가정의 권리가 국가와 사회 안에서 온전히 보장되고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그럼에도 사각지대는 늘 발생한다. 후미진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교회는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목자들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이른바 특수한 사목적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가정 공동체」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번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민 또는 이주 노동자 가정. 장기간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가정(이른바 ‘기러기 가정’). 죄수 · 피난민 · 망명자의 가정. 대도시에서 실제로 버림받은 생활을 하는 가정. 집 없는 가정. 편부모의 가정. 조손가정(조부모와 손주 가정). 장애인이나 마약중독 자녀를 둔 가정. 알코올 의존증 가정.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서 소외된 가정. 정치적 이유나 다른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는 가정.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는 가정. 본당과 접촉이 쉽지 않은 가정. 종교 때문에 폭력이나 부당한 처우를 받는 가정. 십 대 결혼 부부 가정.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홀로 사는 노인 가정.

신앙인으로 살면서도 교회의 법규대로 살지 못하여 고통 가운데 놓인 사람들도 있다. 사회혼 또는 동거생활 중인 사람들, 별거자들, 이혼 후 재혼한 이들 등이 그들이다.

교회는 힘든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자 애쓰는 우리의 이웃이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마련한 사회보장제도를 모든 이가 이용할 수 있도록 힘쓸 뿐만 아니라, 그 제도에서 소외된 사람들까지도 돌보아야 한다. 신앙생활의 문제로 고민을 호소하고 교회의 배려를 요청하는 이들의 문제도 심각하게 바라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제14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속되어야 하는 사목적 배려

교회는 먼저 국가가 법률과 제도로 가정의 모든 권리를 보호하도록 힘써야 한다. 국가의 임무사항을 끊임없이 일깨워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가정을 지닌 모든 이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도록 깨우쳐줄 사명도 교회는 지니고 있다. 교도권은 그런 이유로 교회에 맡겨진 권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교회법규를 지키지 못하여 신앙인의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의 고충도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 과연 그들을 위한 최선의 사목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며 성령의 지혜를 간청해야 한다. 곧 열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에 참여하는 모든 주교님들에게 성령께서 특별한 지혜를 내리시어 새로운 길을 찾기를 바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5년 ‘가정을 위한 교서’ 「가정, 사랑과 생명의 터전」을 발표하였다. 모두 82개 항으로 된 이 교서를 통하여, 한국교회는 이제 가정사목의 대상을 신자가정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가정으로 확대하는 폭넓은 사목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천주교회의 최고 어른이신 주교님들이 각 교구에 가정사목 전담사제와 전문인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시며, 양들의 구원을 위해 목자의 희생과 헌신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 상세히 밝히신 것이다.

1983년에 반포된 새 「교회법전」에서도 가정 부문에 관한 조문이 나올 때마다 사목자의 관심과 배려를 끊임없이 요구하며 규정에 그 정신을 심어놓았다. 아무리 법으로 상세한 내용을 규정한다 해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발생하기에 사목자의 더 없는 노력을 주문한 것이다. 권리는 의무의 준수로 얻는 것인데, 의무를 준수하지 못하여 권리의 혜택에서 제외된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며

‘가정을 위한 교서’가 나온 지 10년이 된 지금, 한국교회의 모든 교구에서 더욱 발전적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다. 가정문제를 전담하는 사제가 늘고 있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다. 그리고 2014년까지 군종교구를 제외한 한국의 모든 교구에 혼인 무효소송을 위한 법원이 설립되었다. 이혼 후 재혼한 가정의 신앙생활을 위해 법원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해마다 확인하고 있다.

올 가을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대로 완성되기를 기도한다. 세상의 미래가 가정에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야 하겠다.

* 홍기선 히지노 - 춘천교구 신부. 현재 춘천교구 사목국장과 법원장을 맡고 있다. 1989년 사제품을 받고 2001년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5년 9월호, 홍기선 히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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