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종교철학ㅣ사상

인문학 강좌: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의 순교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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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5 ㅣ No.231

김문태 교수의 인문학 강좌 (3)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의 순교영성

 

 

“공경하올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라 부르고, 5월 29일에 그분들의 축일을 거행하도록 허락한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엄한 선언에 신자들이 일제히 환호하였다.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광화문(光化門)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때 순교한 79위가 1925년 로마에서 복자로 선포되었고, 이어 병인박해 때 순교한 24위가 1968년 로마에서 복자품에 오른 이후 세 번째 맞는 시복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식 광경에 뜬금없이 주어사의 풍경이 겹쳐졌다. 얼마 전에 다녀온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하품리 산106번지에 위치한 주어사 입구에는 ‘주어리’라 쓰인 표지석이 우뚝 섰다. 임도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풍성하여 물고기가 힘차게 달릴 만하니 주어사(走魚寺)라는 명칭이 알맞았다. 마치 등용문에 오르는 잉어처럼 부지런히 학문을 갈고 닦던 젊은 유학자들의 패기가 서릴 만한 곳이었다. 순간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 인용된 『시경(詩經)』의 ‘연못에는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하늘에는 솔개가 난다’는 어약연비(魚躍鳶飛) 구절을 가슴에 품었을 선비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해발 400m 지점에 도달하자 사찰 터는 오간 데 없고, 몇 십 년 전에 숯가마로 쓰였다는 둥근 석축만 남아있었다. 그 상단 중앙에 ‘주어사, 천주교 강학회 장소’라 쓰인 자그마한 철판이 보였다. 바로 이곳에서 1779년(정조 3년) 권철신 · 정약전 · 김원성 · 권상학 · 이총억 · 이윤하 등의 남인 성호학파 학자들이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강학하였던 것이다.

초기 한국천주교회는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2티모 3,12)라는 말씀대로 이루어졌다. 신앙선조들은 순교야말로 영광의 화관이라 여기며 용감하게 천주를 증명하였다. 투옥과 고문과 처형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수난을 온 몸으로 견뎠고, 아울러 재산과 지위를 보장해준다는 달콤한 회유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오죽하면 굶주림에 감옥 안에 깔아놓은 가마니를 뜯어 먹어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고 하였을까.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1-12)는 말씀을 가슴에 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전의 103위에 대한 시복과 시성은 파리외방전교회가 주도한 경사였다. 그러므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모방 신부가 입국한 이후의 순교자 행적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번의 124위 시복식은 전적으로 한국천주교회가 주도하여 성사되었다. 따라서 기해박해 이전의 초기 순교자 86위가 대거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 땅에서 최초로 미사를 올린 주문모 야고보 신부, 성 정하상 · 성녀 정정혜와 복자 정철상의 아버지이자 성녀 유조이의 남편이며 첫 한글교리서인 <주교요지>를 편찬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첫 여회장인 강완숙 골룸바가 1801년에 순교하여 이번에 복자품에 올랐다. 또한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말로 잘 알려진 백정 황일광 시몬도 1802년에 순교하여 이번에 복자품에 올랐다.

한국천주교회의 역사는 평신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교사 없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평신도들의 손으로 세워진 교회, 남녀노소 ·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천주를 증명하기 위해 뿌린 피로 다져진 교회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신앙선조들의 순교영성과 복음적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목숨을 바치는 적색순교의 상황에서 벗어났다면 의로운 삶으로써 하느님을 증명하는 백색순교를 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의인 열 명만 있었어도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소돔이야기(창세기 18장)가 먼 옛날 이민족에 국한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율곡은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재물을 보면 먼저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견득사의(見得思義)’를 주장하였다. 오늘과 같은 황금만능주의·재물지상주의가 만연하는 사회에 딱 들어맞는 지적이다. 재물 · 지위 · 명예 앞에서 의로움을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비움으로써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백색순교가 아닐까 한다.

또한 우리는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생명의 문화를 창달하는 데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자살, 낙태, 살인, 사형, 기아, 폭력, 전쟁 등 생명윤리를 거스르는 죽음의 문화를 극복함으로써 하느님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가치 선택적 존재인 우리는 어떠한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어느 자리에서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부단히 물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제자라 자부한다면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육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영혼에 대한 관심을, 찰나의 기쁨보다는 영원한 행복을 추구해야 합당하리라.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할 때, 그리고 생명의 문화에 동참하고자 할 때 비로소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의 순교영성을 본받고 복음적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평신도, 제45호(2014년 가을), 김문태 힐라리오(가톨릭대 ELP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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