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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걸어서 하늘까지2: 신리성지에서 솔뫼성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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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9-19 ㅣ No.711

[순교자성월 특집] '걸어서 하늘까지' (2) 신리성지에서 솔뫼성지까지(대전교구 도보순례)


순교 성인 피땀 밴 길 걸음마다 깊이 새긴다

 

 

내가 걸어가야 할 땅 바라보고 냄새 맡을 수 밖에 없는 이 땅은 목자들이 마지막으로 가신 땅이요, 신앙 선조들이 주교·신부를 찾아 헤매던 땅이다. 그 길을 걷고 있다.

 

 

대전교구 사제단 110여 명과 수도자, 신자 등 2500여 명은 순교자성월 첫 날인 9월 1일 ‘사제의 해 성직자 도보성지 순례’에 나섰다.

 

성 김대건 신부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유해와 유품을 모신 순례자들은 신리성지에서 솔뫼성지까지 8km 구간을 걸으며 순교자들의 삶을 되새기고 기도했다. 그 길을 함께 걸었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땅, 신리성지에서

 

신리성지에 섰다. 높은 가을하늘 아래 빗질한 듯 머리를 쓸어 올린 구름이 자리를 틀었다. 하늘 아래 다블뤼 안 주교 동상이 서 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손발이 다 터지는 고초를 감내했던 신자들. 그들을 너무 사랑한 성인은 양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착한 목자였다.

 

이제 길을 나선다. 다블뤼 주교가 상복을 입고 방립을 쓰고 버선과 짚신을 신고 신자들을 찾아 걸었던 그 길을 걷는다. 다블뤼 주교의 체포소식을 듣고 자신도 순교하고자 거더리로 향한 성 오매르트 오 신부의 순교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신리성지 전담 김성태 신부의 강론을 묵상한다.

 

순교자성월 첫 날인 9월 1일 대전교구 사제단과 수도자·신자 등 250여 명은 신리성지에서 솔뫼성지까지 8km 구간을 걸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포한 사제의 해를 기억하고 순교의 삶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땅, 우리가 바라보고 우리가 냄새 맡을 수밖에 없는 이 땅은 우리 목자들이 마지막으로 가신 땅이고 우리 교우들이 주교, 신부를 찾아 헤매던 땅입니다. 그렇게 한국교회의 초석이 다져진 곳입니다. 오늘 순례가 그분들이 만들었던 교회의 모습으로, 천상교회로 이끌어지는 축복의 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신리성지~합덕성당(4km, 1시간 30분)

 

성지 휴게실 건물 뒤편으로 쭉 뻗은 농로. 사방 어디든 이제 막 황록색으로 옷을 바꿔 입은 논이 물결친다. 길 옆 자투리땅에 심어놓은 서리태도 볼거리다. 다블뤼 주교가 21년간 이곳에서 사목할 수 있었던 것도 몇 킬로 밖까지 볼 수 있는, 그래서 포졸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던 지리적 여건 때문이라는 이용호 신부(솔뫼성지 전담)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져 양식 걱정 없었고 삽교천을 따라 배를 타고 먼 바다로 피신할 수 있었던 이곳은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신앙생활을 이어간 보금자리였다. 이 길 곳곳에는 그런 선배 신앙인들의 자취가 배어 있다.

 

신리-솔뫼성지 도보순례 중간 경유지인 합덕성당에서 한 순례자가 순교성인들의 유해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작은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여사울에서 신리, 합덕, 솔뫼로 이어지는 순례 길을 안내한다. 이정표 속 물고기가 가리키는 대로 발걸음을 내딛으면 된다. 그늘이 없어 아쉽지만 햇살이 따갑다 싶으면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걸음걸이가 가볍다.

 

합덕에서 신례원으로 향하는 32번 자동차 전용도로를 머리에 이고 굴다리를 지나면 북서쪽 멀리 합덕성당이 보인다. 신자들 사이에서 걷고 있던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만났다.

 

사제의 해를 맞아 이보다 더 좋은 순례 길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어떤 계획을 갖고 순례 하시나요”라 묻자 “가볍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발걸음을 내딛다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을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답한다. 아등바등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된다. 천천히 욕심내지 말고….

 

연리교를 지나 연호방죽 옆길로 접어들자 때늦은 매미소리가 귀를 울린다. 한 시간 30분 만에 만나는 나무그늘이 반갑다. “햇볕이 있으니 그늘의 감사함이 더 나타나죠. 얼마나 감사한가요. 잘 왔다고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는 거죠.”

 

유 주교를 따라 성당 언덕을 오른다.

 

 

순교성인 유해 앞에 무릎을 꿇다, 합덕성당에서

 

천천히 성당을 둘러본다. 성 황석두 루카, 백문필 신부 등의 순교비와 성직자 묘소, 대형 성가정상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성당 안은 기도하는 신자로 가득하다. 성 김대건 신부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유해와 유품이 제대 앞에 모셔져 있다. 제대 우측에는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모방 나 베드로, 샤스탕 정 야고보 등 순교 성인들의 유해가 자리하고 있다. 솔뫼 출발 20분 전. 제대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합덕성당~솔뫼성지(4km, 1시간)


합덕성당을 나와 길을 건너면 우측에 합덕리회관이 있다. 회관을 오른쪽에 두고 농로로 접어들었다. 합덕리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다. 신촌리회관(순례길 좌측)과 합덕2양수장(순례길 우측)을 지나면 70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로를 건너 다시 좁은 길로 방향을 잡는다. 5분여 걷다보면 왼편에 400년 된 팽나무가 육중한 몸매를 뽐낸다. 나무 아래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순례에 참가한 주일학교 학생들이 본당 신부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다. 팽나무를 지나 만나는 세 갈래 교차로에서 좌측 마을길로 방향을 잡아 5분 정도 걸으면 우강치안센터가 나온다. 길을 건너 순례 이정표와 우강제일감리교회 입간판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걷자 너른 들판 너머 솔뫼성지가 눈에 들어온다.

 

신리~솔뫼성지 도보순례 안내도.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비오), 작은 할아버지 김한현(안드레아)과 그의 딸 데레사,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 그리고 김대건 신부 자신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태어나고 생활하던 솔뫼에 도착했다. 김대건 신부 생가를 지나 소나무 숲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바라보며 미사를 봉헌한다. 시작성가가 성지 가득 울려퍼진다.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푸르른 그 충절 찬란히 살았네.’

 

 

신리~솔뫼성지 도보순례 코스 안내

 

신리성지~솔뫼성지 도보순례 코스는 비교적 짧은 거리이고 평지여서 노약자나 어린이들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차량통행이 드문 농로이기 때문에 안전하다. 순례길을 연장해 여사울성지~솔뫼성지 도보순례도 가능하다. 여사울에서 신리까지 거리는 7.6km, 도보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순례 경유지인 합덕성당에서 하루 정도 묵으며 근처 성지를 순례하는 것도 괜찮다. 성당 내 합덕유스호스텔을 이용하면 된다. 자전거 순례도 가능하다. 유스호스텔은 자전거 30여 대를 비치해 놓고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다.

 

대전교구는 신리성지~솔뫼성지 도보순례 코스를 비롯해 내포지역 도보순례 지도를 올해 중 제작할 예정이다.

 

※ 순례문의

041-362-5021~2 솔뫼성지(www.solmoe.or.kr)

041-363-1359 신리성지(www.sinri.or.kr)

041-363-1061 합덕성당, 041-363-1064 합덕유스호스텔

 

[가톨릭신문, 2009년 9월 13일,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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