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대림 3 주간 화요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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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12-15 ㅣ No.550

대림 3 주간 화요일

 

        스바니야 3,1-2.9-13    마태오 21,28-32

    2003. 12. 16.

주제 :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힘들고 두려워하는 것의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갖는 힘’입니다.  요즘의 상황으로 비교한다면 아마도 정치판의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듯 합니다.  꼭 1년 전, 지난해 대통령선거 전후에 있었던 일들로 한참 시끄럽습니다.  누가 무슨 돈을 얼마나 받았고, 그 돈을 받는 방법은 ‘차떼기’였으며, 천문학적으로 많은 돈을 낸 사람들은 훗날을 위한 보험이나 훗날에 있을지도 모를 위세에 눌려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정치자금들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은 것이고, 그로 인해서 시작된 경제의 어려움이 지금도 그림자를 아주 어둡게 드리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부정행위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스바니야 예언자의 선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악이란 오래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머무는 우리는 그것과 다른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서 잘 살았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적당히 흙탕물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진흙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깨끗한 물에서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말을 사용하고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자세가 옳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이 요즘 나오는 말의 하나는 양비론(兩非論)으로서 나도 나쁘고 너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더 크게 하는 데는 내 잘못보다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크게 보려고 합니다.

 

분명 이런 세상은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요즘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어떤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대로 따랐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분법(二分法)의 세상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는 둘 중의 어느 하나에 내 마음을 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잘 읽어보면, 예수님은 어떤 아들의 행동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둘째보다는 첫째가 더 나을 확률이 크다는 것뿐인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 앞에 적당하게 타협하며 사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사람과 다른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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