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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사목] 황혼의 기쁨: 고독, 하느님이 우리를 기다리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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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31 ㅣ No.1115

[황혼의 기쁨] 고독, 하느님이 우리를 기다리는 자리

 

 

생활환경에 관계없이 노년의 의미에 대한 확실한 이론은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완전한 삶에 대한 구상이나 초안, 프로그램도 없다. 다만 이상을 말할 수 있을 뿐 확실한 규정은 없다. 그 이상을 말한다고 해서 그가 그 이상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선의에 달린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안 키티스터는 그러한 이상들이 긍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이상은 동경을 보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향을 가리킬 수 있으며, 우리가 노년에 품위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한 환경과 조건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상은 삶에 필요한 오리엔테이션을 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네가 이것을 꼭 해야만 한다’는 도덕적인 요구를 하거나 개인적인 판단 기준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재속의 불씨』참조)

 

모든 인간은 영혼 깊은 곳에서 고향을 찾고, 거기에 소속되고 자리 잡기를 갈망한다. 늙어갈수록 이 갈망은 더욱더 강해진다. 하느님 안에 인간의 본향이 있음을 아는 영적인 사람이나 끊임없이 하느님께로 향한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모태에서부터 업혀 다니고 태중에서부터 안겨 다닌 자들아,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이사 46,4).

 

이 말씀은 곧 인간은 늙어가도 하느님은 변함없이 한결같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하느님의 언약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노인들은 자신들이 늘 혼자이고 고독하며 이해받지 못하고 때로는 버림받은 느낌이든다고 하소연한다. 함께 모여 사는 양로원이나 복지시설 같은 곳에 사는 분들도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요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롭고 고독하고 때로는 버림받은 느낌이 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런 느낌은 비록 노인들만 사는 시설에서뿐 아니라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도 생긴다. 그 원인들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자신들이 중요한 대화와 관계 속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개인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용서하고 이해하지 못하여 소화되지 않은 예전의 부정적인 체험들이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노인은 쉽게 마음의 문을 닫고 상처를 받는다. 젊은 세대들도 가정이나 부부생활에서 대화가 짧아지고 대화 주제가 빈곤해지는 경우가 있다.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40년간 결혼생활을 한 부부들의 대화시간이 8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일상에 관한 주제들로 한정되어 있다. 이는 어떤 면에서 침묵과 고독 속에서 영적생활을 하는 공동체와도 비슷하다. 그러므로 침묵을 많이 하는 곳에서는 종종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젊을 때부터 좋은 만남과 대화를 갖고자 노력하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노년의 삶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은 우리를 자기 자신에서 해방시키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어떤 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시간이 흘러가게 할 때 갑자기 우리를 찾아오는 삶의 신비를 체험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어떤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삶은 더욱 신비로워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주는 삶의 지혜와 풍요를 체험하면서 기다림, 인내, 시간의 귀중함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노인은 유연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바다, 호수, 강물을 바라볼 때면 물의 속성을 생각한다. 날카로운 칼로 물을 자른다고 물은 상처를 받거나 쪼개지지 않고 그냥 아래로 흐르기만 한다. 물은 동그라미 속으로 들어가면 동그라미가 되고, 네모난 곳에 들어가면 네모가 되는 유연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도 물처럼 유연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년에는 강직함, 똑똑함보다는 구부려져 있고, 힘이 없고, 굽히는 것처럼 보이는 유연한 삶이 필요하다. 모난 사람은 모난 대로, 동그라미 같은 사람은 동그라미대로 받아들이고, 생긴 그대로 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아래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될 때 결코 상처를 주거나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힘든 일이긴 하지만 결국 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다와 하나가 된다. 바로 거기가 큰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요, 그곳에서 하느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느님과 함께 살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또한 삶의 신비를 체험한다. 노년에는 점점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하느님은 바로 이 고독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비록 삶이 부러지고 흐르던 강물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노인은 새로운 희망을 향해 절름거리면서라도 걸어가야 한다. 절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생스럽다.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없고 잦은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 수밖에 없다. 비록 천천히 갈 수밖에 없지만 마음과 시선만은 현재에 묶어두지 않고 꾸준히 앞을 향해 한 걸음씩 가야 한다. 노년기는 새로운 삶을 위한 때이고 철저하게 살아내야 하는 때이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하느님의 섭리, 뜻, 의미를 헤아리긴 힘들지만 우리는 그 시간이 지난 뒤에 비로소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어려움을 겪을 때면 자신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내가 지금 이 어려움을 견디어내지 못한다면 다음에 오는 어려움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나의 성장을 위해 허락하신 것이고, 바로 이곳이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수련 장소다.” 극복된 삶의 어려움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더욱 가까이 인도해 준다. 고통 없는 부활이 없다는 것이 비록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라도 고통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의 은총도 크다는 것을 신앙인은 체험을 통해서 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없이 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 도우심을 청해야 할 것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봄호(Vol. 41), 정하돈 안나 마리아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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