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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연극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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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20 ㅣ No.880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연극 ‘눈물’


너도 나도 흘린다 거부하지 말자



연극 ‘눈물’ 한 장면.


눈물이라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자연현상이다. 눈물샘은 눈물을 펑펑 퍼 쓰고도 남아돌게 대량 생산한다는데, 낭비가 없는 것이 자연이고 보면 눈물의 대량생산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을 터. ‘눈물 자체에 대한, 그리고 눈물이 가진 질감과 빛깔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극단 서울공장의 연극 ‘눈물’은 눈물 대량생산의 이유가 뭔지 알려줄까?

‘눈물’은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이상협의 신소설이다. 사랑, 배신, 불륜 등의 막장 소재로 엮인 신소설 ‘눈물’은 그 당시 연극으로 공연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00년 전 독자들의 눈물을 끌어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 관객들의 눈물도 흘리게 할 수 있을까’. 연출 이상옥의 두 번째 호기심은 ‘눈물의 질감과 빛깔’과 시간의 흐름이 빚어내는 변수로 향한다. 이것은 고전을 재해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삶에 담긴 그윽하고 아름다운 것을 현대의 언어로 바꾸는 재창조는 시대와 실존의 모습을 한 큐로 꿰뚫어야 하는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다.

연출 이상옥과 11명의 배우들이 만들어낸 연극 ‘눈물’. 그 안의 인물들은 모두 운다. 억울해서, 그게 아니어서, 내 맘을 몰라주어서, 서러워서, 분해서, 그리워서, 미안해서, 후회스러워서 그들은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치고 몸부림치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두 살짜리 아들 봉남이를 둔 조필환과 서연우, 조작된 불륜을 핑계로 착한 아내를 쫓아낸 조필환과 그 자리를 차지하는 내연녀 피양희, 미쳐버린 서연우 사이에서 봉남이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피양희는 내연남인 장철수와 함께 조필환의 재산을 들어먹고, 장철수는 또 다른 내연녀를 불러들인다. 질투로 울부짖던 피양희는 결국 장철수 손에 죽게 된다.

무지와 미련과 집착과 욕정과 이기심과 탐욕의 아수라장이 한 연극 안에서 펼쳐진다. 엄마가 그리운 봉남이는 울지만 울어도, 울어도 엄마는 안 온다. 하늘이 보내셨는지 이름도 은혜인 남은혜가 나타나는데, 아직 고등학생인 그녀는 임신 중이다. 은혜는 혼자 울다가 아이를 지우고 대신 봉남이를 키운다.

은혜는 연극 ‘눈물’에서 가장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으로 행동하는 살아있는 인물이다. 은혜 덕분에 봉남이의 눈물이 멈추고, 어둡고 추웠던 객석도 훈훈해진다. 봉남이는 자라고 조필환과 서연우는 늙어간다. 이윽고 다시 만난 둘, 서로의 추레하고 볼품없는 모습을 본다. 웃는지 우는지 말없이 한참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객석에서도 눈물이 고인다. 허나 그 장면이 분명치 않게 그냥 지나간다. 그들이 말없이 나누는 대화가 더 크게 들리면 좋겠다. “미안해 괜찮아 사랑해.”

“울어라 실컷 울고 나면 속 시원해져” 과연 그렇다. 게다가 얼굴도 맑아진다. 사람이 뭘 더 바라야하는가. 그렇다면 눈물 대량생산은 혹시 그분의 속셈? 만일 맞는다면 셈하기 좋아하는 그분과 ‘맞셈’할 궁리를 우리도 해야 한다. 하긴 그분은 이미 당신의 속셈을 밝혀두셨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 그들은 하늘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니 울자 실컷 많이 울자.

*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연극 ‘꽃상여’ ‘안녕 모스크바’ ‘수전노’ ‘유리동물원’ 등에 출연했다.

[가톨릭신문, 2015년 9월 20일,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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