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전례ㅣ미사

[미사] 알기 쉬운 미사 전례6: 주님의 현존을 청하는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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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2-06 ㅣ No.2400

[알기 쉬운 미사 전례] (6) 주님의 현존을 청하는 인사


비언어적 표현 통해서도 하느님을 찬양

 

 

- 미사 거행을 위해 입당한 사제는 주님께 대한 공경과 사랑의 표시로 제대에 입을 맞춘다. 사진은 2014년 8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봉헌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심리학자 메라비언(Albet Mehrabian)은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시각이 55%, 청각이 38%의 영향을 미친다고 하며, 정작 전달하고 싶은 말의 내용은 고작 7%라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각과 청각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내는 시간은 0.1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입술을 통해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자세와 태도 등으로 대부분이 이미 전달된다는 것이지요. 말보다는 동작과 자세와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소통 방식은 이미 미사에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사 거행을 위해 입당한 사제는 제대 인사, 십자성호 그리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의 동작, 그분의 현존을 청하는 인사말을 통하여 미사에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참된 희생 제사인 미사가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잔치라는 사실을 교회 공동체는 영혼 가득한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입당 성가와 함께 복사들과 행렬을 지어 제단 앞에 온 사제는 참된 사제이며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인사를 한 후, 제단에 오르고 주님께 대한 공경과 사랑의 표시로 제대에 입을 맞춥니다. 이 관습은 4세기 말경에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아 도입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큰 절로 대신하지요.

 

입당 성가가 끝나면 사제와 교우들은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을 합니다. 십자성호는 14세기에 사제가 제대 앞 층계에서 복사들과 함께 바치는 이른바 층하경을 시작하는 기도로 미사에 도입되었습니다. 2세기경 교회 예식에 들어온 십자성호는 입교 예식에서 주례자가 예비신자의 이마에 작은 십자가를 표시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현재와 같은 큰 십자성호는 5세기경에 나타났지만 널리 보급된 것은 13세기부터입니다.

 

현재의 미사 통상문에는 세 가지 인사 양식을 제시합니다. 첫째 양식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3장 13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사용한 인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둘째 양식은 사도 바오로가 편지 서두에 자주 사용한 전례적 인사에서 유래했지요.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로마 1,7; 1코린 1,3; 2코린 1,2; 갈라 1,3 등 참조) 셋째 양식인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는 신약과 구약에서 자주 나오는 인사이며(판관 6,12; 룻기 2,4이하; 1열왕 17,37; 루카 1,28; 2테살 3,16), 미사에 도입된 시기가 3세기 이전이라는 사실을 3세기에 기록된 히폴리투스의 「사도 전승」 4장과 25장에서 밝혀줍니다.

 

이러한 사제의 인사에 교우들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Et cum spiritu tuo)라고 답하지요. 2017년 이전의 미사 통상문에서는 ‘영’(spiritus)이 없는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의 전통과 교부들에 의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영’이 사제 개인의 ‘영혼’이 아니라 서품식 때 받은 성령과 그 성령께서 주시는 직무 수행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임을 확인하고 교황청에서 ‘영’을 꼭 넣어야 한다고 강하게 권고했습니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성호를 긋고 사제와 인사를 나누면서, 습관적인 태도가 아닌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예레 32,41), 곧 ‘진심’이 담긴 태도와 자세, 그리고 목소리는 미사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으로 이끌어줍니다.

 

[가톨릭신문, 2024년 2월 4일,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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