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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유익한 교리여행9: 여행지 -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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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01 ㅣ No.2790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9) 여행지 : 삼위일체

 

 

- 러시아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1360~1430)가 1410년경에 그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 성화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세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장면(창세 18,1-15)을 묘사한 것으로 왼쪽부터 성부, 성자, 성령을 나타낸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삼위일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이면서 셋!’ 삼위일체는 우리 이성을 뛰어넘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지만,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지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신 분으로, 존재로 한 분이시지만,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의 공동체로 계십니다.”

 

하느님은 삼위로 계시지만 사랑 안에서 한 분이시기에 삼위일체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처음부터 공동체로 존재하십니다. 하느님이 독자적으로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공동체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진정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은 바뀔 것입니다. 우리 자신보다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사회와 세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 신앙의 본질이며 핵심인 삼위일체께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

 

 

퀴즈여행

 

삼위일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면서, 몇 가지 위격으로 존재하는가?

2.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는가?

① 구약에 나온다. ② 신약에 나온다. ③ 구약과 신약에 나온다. ④ 나오지 않는다.

3. 신약에서 삼위, 즉 예수님(성자)과 성부, 성령께서 동시에 나타날 때가 언제인가?

4. 하느님의 활동을 삼위일체 각 위격에 귀속시켜 말하면, 창조 사업을 하신 분은 누구이신가?

5.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단죄한 최초의 보편 공의회는 어디에서 열렸나?

6. 초기 공의회(4~5세기)를 통하여 성자(예수님)의 신성이 확립되었고,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위격에 몇 가지 본성을 가지심이 선포되었는가?

7. 지면의 ‘성 삼위일체 이콘’(안드레이 루블료프, 15세기 러시아)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삼위의 관계를 잘 나타낸다. 삼위가 똑같이 들고 있는 지팡이는 그들 관계의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답란

 

1 □가지

2 □번

3 예수님께서 □□ 받으실 때

4 성□

5 □□아

6 □가지

7 □□성

(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

 

1. 하나이면서 셋인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세가지 위격으로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사랑 자체이므로 사랑을 나누는 관계 안에서 셋입니다. 사랑을 주시는 성부, 사랑을 받으시는 성자, 사랑을 이어주는(또는 사랑 자체인) 성령의 세 위격이 있습니다. 삼위(성부, 성자, 성령)는 완전히 구별되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한 분으로 하나의 실체(신성)를 이룹니다.

 

2. 성경 안의 삼위일체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초기 보편 공의회(4~5세기)를 통해 정립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유일신 사상을 견지하고 있어, 세 위격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구약이 신약을 밝히고 예고하는 의미에서, 어느 부분에서는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한 사람이 아닌 세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이야기(창세 18장)에서, 사랍들이 하느님께 한 번이 아닌 세 번의 “거룩하시다”를 외치는(이사 6,3) 내용 등에서입니다.

 

참조)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us, 155~220년) 교부이다.

 

3. 신약 안의 삼위일체

 

신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일체 신비가 명시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면서(170번) 하느님과 부자(父子) 관계임을 밝히십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당신이 하나(요한 10,30)이며 같은 분(요한 14,9)이라고 하십니다. 서로 구별되지만 서로 같은 분이라고 하시죠. 또 당신과 똑같은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십니다.(요한 14,15-21) 삼위가 동시에 나타나는 순간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로,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면서 성자를 인정하는 성부의 소리가 들려올 때이지요.(마태 3,13-17; 마르 1,9-11; 루카 3,21-22)

 

4. 삼위일체 각 위격의 활동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므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동시에 존재하십니다. 삼위가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류를 구원하셨으며, 교회와 역사 안에서 함께 활동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활동은 각 위격에 귀속(appropriation)시켜 말합니다. 창조 사업은 모든 것의 근원이신 성부께 돌려서, 성부를 ‘창조주’라고 하고, 구속 사업은 강생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성자께 돌려서, 성자(예수님)를 ‘구원자’라고 하고, 교회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성화 사업은 성령께 돌려서 성령을 ‘성화자’라고 합니다.

 

5. 니케아 공의회: 예수님 신성을 확립

 

하나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던 유다인들이 성자(예수님)와 성령께서도 성부와 같은 하느님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초기 교회 때 여러 이단(異端)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인 아리우스(256~336년)는 예수님은 신성을 가졌지만 하느님과는 다른 본질로, 하느님과 인간의 중간 존재라고 주장하지요. 이에 최초로 공의회(주교들의 모임)를 소집하는데, 니케아에서 열린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성자께서는 하느님과 똑같은 본질이신 참하느님이심을 선포하고, 아리우스파를 파문합니다.

 

6. 예수님: 신인양성 일위격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 이어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 때는 성령의 신성이 확립됩니다. 성령께서도 성부와 성자와 똑같은 본질이신 참하느님이심이 선포되고, 니케아 공의회 때 제정된 ‘니케아 신경’과 합쳐진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제정되는데, 현재 우리가 바치는 니케아 신경이지요. 또 성자(예수님)의 본성에 대해서는 에페소 공의회(431년)와 칼케돈 공의회(451년)를 통해 성자께서는 2가지 본성(신성, 인성)을 가지심이 공포됩니다. 4차까지의 초기 공의회를 통해 성자께서는 하나의 위격에 참하느님이며 참사람이신 양성을 가졌다는 교의가 확립됩니다.

 

7. 성 삼위일체 이콘

 

‘성 삼위일체 이콘’에 나오는 삼위는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사람을 표현한 것입니다.(창세 18,1-8) 가운데 예수님 희생을 상징하는 성작이 놓인 탁자가 있고, 삼위가 마주 보며 함께 앉아 있습니다. 성부(왼쪽 황금색 옷)와 성자(중앙의 붉은색 옷)와 성령(오른쪽 초록색 옷)께서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으나, 파란색(신성)을 공통으로 입고 있음은 같은 본질인 하느님임을 표현하지요. 각각 들고 있는 지팡이(권위 상징)는 삼위가 서로 높낮이가 없는 동등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눈빛과 마주 앉은 모습에서 삼위의 상호성과 상호의존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행옵션 : 성 삼위일체 세르기우스 수도원(러시아)

 

성 삼위일체 세르기우스 수도원은 1993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자 러시아 정교회의 영적 중심지이다. 7개의 성당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은 옆에 보이는 성 삼위일체 성당이다.(1422~1425년 건축)

 

성당 안에는 러시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 중 한 분이며, 이 수도원을 세운 성 세르기우스(Sergius, 1314~1392년, 9월 25일 축일)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제단 앞에는 이곳의 보물이자 러시아의 문화유산인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 삼위일체 이콘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스크바의 미술관으로 이동되어 있다.

 

 

여행 기념품

 

하느님은 독자적으로가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의 공동체로 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 따라 창조되었기에 우리 모습은 공동체 안에서 완성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공동체의 관계 안에 계시듯이, 나도 공동체와의 관계를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현재 나는(가정, 직장, 학교, 나라, 세계) 공동체를 위하여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5월 30일,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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