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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6-7: 형제자매의 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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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5 ㅣ No.1116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6) 형제자매의 우애 (상)


사랑받고 자란 형제자매는 서로 사랑하며 의좋게 자라

 

 

‘웃을 줄 알고 안아줄 만한 어린아이가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가 없으며, 그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소학」 <내편>)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이 바로 어버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를 가슴에 품어 먹이고, 재우고, 눈을 맞춰 교감함으로써 비로소 그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이가 부모인 것이다. 그러한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다음으로 접하는 사람이 형제자매다. 먼저 태어난 형제자매는 종종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돌보며 뒤치다꺼리해준다. 그러한 보살핌을 받은 동생이 손위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어린아이는 일정한 시기가 되면 거듭 태어나는 계기를 가졌다. 그럼으로써 온전한 인간으로 변모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영위했다. 이를 성인의례라 칭했다. 제임스 프레이져의 「황금의 가지」(The Golden Bough)에 따르면, 보편적으로 여자들은 초경 무렵이 되면 초막에 들어가 태양을 안 보거나, 또는 마을 밖 별도의 구역에서 따로 지냈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가 어두운 동굴에서 지냈듯이 말이다. 반면 남자들은 발목에 긴 넝쿨을 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뜨겁게 달군 돌길을 맨발로 뛰어 건넜다. 심지어 악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에서는 소년의 몸에 악어 비늘처럼 생채기를 낸 후 풀물을 들였다. 악어 문신을 해서 그 후손임을 선포했던 것이다. 이처럼 성인식을 치르는 여자들은 정신적 시련을, 남자들은 육체적 시련을 겪었다. 이러한 통과의례에 수반되는 시련을 이겨냈을 때, 어린아이는 그 집단에서 새롭게 태어나 성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우리의 경우 성인의례에 수반되는 시련은 「삼국지」 〈동이전〉에서 확인된다. 마한의 젊은이들은 등가죽에 끈을 꿰어 큰 나무에 붙들어 매고 소리 지르며 잡아당겨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어린아이는 이처럼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후에 비로소 평생 마주칠 세파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지닌 성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성인의례는 남자에게 갓을 씌워주는 관례, 여자에게 비녀를 꽂아주는 계례가 있었다. 남자는 15~20세에 「효경」이나 「논어」를 읽어 예의를 안 뒤에 관례를 치르게 했다. 우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친구 중에서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 빈객을 초대했다. 빈객은 남자의 머리를 빗겨 올려 상투를 틀고 모자를 씌우고 옷을 갈아입히는 가례(加禮), 술로써 예를 행하는 초례(醮禮), 새로운 이름인 자를 주는 자관자례(字冠者禮)를 주관했다. 반면 15살 된 여자는 양쪽으로 땋았던 머리를 풀어 한데 모아 쪽을 찌어 비녀를 꽂았다. 계례는 어머니가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 부인을 청해 의례를 주관하게 했다. 다소 까다롭고 엄중한 의례를 마친 이들은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고한 다음, 부모와 친지와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했다.

 

흥미로운 것은 성인의례를 주관하는 빈객이 천주교의 세례식 때 세우는 대부·대모와 흡사하며, 성인의례를 행한 후 새로운 이름인 자를 짓는 것이 세례명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성인의례를 치른 이들이 철부지에서 성인으로 거듭나 자존감과 책임감을 갖고 살고자 하는 것, 그리고 세례식을 치른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 복음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같은 이치인 것이다.

 

오늘날 매년 5월 세 번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고 자부심과 자긍심을 고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몇몇 뜻있는 단체나 기관을 제외하면,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성인의례를 시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성인의례에 수반됐던 시련과 재생의 의미도 사라져 버렸다. 가족 친지와 마을 사람들이 성인이 된 이를 축하해주고, 성인이 된 남녀는 그간 키워주고 보살펴주었던 부모형제에게 감사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모습도 보기 힘들어졌다. 성인이 된 이들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 그리고 독립적 인격체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슴에 품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련을 이기고 거듭날 기회가 없어졌으니 어제의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오늘을 새롭게 시작하고 밝은 내일을 꿈꿀 일도 그만큼 적어진 것이 아닐까. 성인이 됐지만 부모형제에게 기대어 철부지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양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하면 지나친 일일까. 당연하게 보이는 성경 말씀이 가슴에 파고든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1코린 13,11)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현장과 강단에서 고전문학과 구비문학을 연구해왔으며, 중국선교답사기인 「둥베이는 말한다」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가톨릭신문, 2018년 8월 5일, 김문태 교수]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7) 형제자매의 우애 (하)


형제자매는 부모의 생명을 나눠 가진 존재

 

 

‘형제는 동기의 사람이다. 뼈와 살을 같이한 지극히 가까운 친족이니 더욱 마땅히 우애하여야 한다. 노여움을 마음에 품고 원망하여 하늘의 바른 뜻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동몽선습」 〈장유유서〉)

 

조선 중종 때의 박세무는 서당에서 천자문을 뗀 학동들에게 가르칠 교재로 「동몽선습」을 지었다. 그는 여기서 형제자매의 관계에 대한 실례를 들고 있다. 우애가 남달리 두터웠던 사마광은 거의 팔십 살이 된 형 공경하기를 엄한 아버지와 같이 하고, 형 백강은 아우 보살피기를 젖먹이 어린아이와 같이 하였다. 그들은 밥을 먹고 나서 조금 지나면 서로 배고프지 않은지를 물었다. 그리고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서로 등을 어루만지며 옷이 얇지 않은지를 물었다. 공경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남달랐던 것이다. ‘나이가 많아 곱절이 되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십 년이 많으면 형처럼 섬기고, 오 년이 많으면 걸을 때 어깨를 나란히 하되 조금 뒤에 따른다’는 「소학」 〈내편〉에 이르는 말이 사마광 형제의 삶을 지칭한다고 해도 좋을 듯싶다.

 

형제자매는 동기간(同氣間)이다. 부모가 전해준 생명을 나누어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같은 상에서 함께 밥을 먹고, 같은 방에서 함께 잠을 자며 자랐다. 그런 까닭에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성장한 형제자매를 부모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판소리와 고소설로 잘 알려진 「흥부전」에 등장하는 놀부가 만인의 지탄을 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가 세상을 뜨자 부자였던 형 놀부는 동생 흥부를 구박하고 내쫓았다. 마음씨 착한 흥부는 후에 부자가 됐지만, 형을 원망하거나 복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욕심 많은 형 놀부를 데려다 함께 살았다. 그들은 뼈와 살을 나눈 친밀한 사이, 다시 말해 골육지친이기 때문이었다. 오늘까지 흥부를 칭찬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형제자매는 네 것 내 것이 없는 무간한 사이다. 뼈와 살을 나누고 생명을 나누었는데, 무엇을 못 나눌까.

 

형제자매의 관계는 마치 교회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한 몸을 이루는 것과 같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는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당신 몸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교리서」(806항, 872항)는 교회공동체의 모든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몸은 단일하지만, 지체는 다양하므로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조건과 임무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에 협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의 위상과 역할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형제자매는 부모의 지체로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기」 〈백이열전〉에 소개되고 있는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감동을 주는 까닭이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였다. 부왕은 아우인 숙제를 왕위에 앉히고자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숙제는 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백이는 아버지 명령을 어길 수 없다며 나라를 떠났다. 숙제 또한 형을 제치고 왕이 될 수 없다며 길에 나섰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문왕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그 아들 무왕은 부친상이 끝나기도 전에 정벌에 나서자 형제는 그를 말리며 한탄했다. 결국 둘은 수양산에 숨어 지내며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죽고 말았다.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위나 재산을 두고 형제자매간에 피를 흘린 일은 부지기수였다. 소위 ‘형제의 난’이라 불리는 정치계의 권력 다툼과 경제계의 재력 다툼이 그러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왕위를 두고 서로 양보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형제는 급기야 그 나라를 떠나고 말았다. 형제간의 시샘과 반목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처럼 우애를 중시 여기던 형제는 불의에 항거하며 서로 의지하며 살다 마침내 함께 세상을 떠났다. 형제간의 도리를 알았기에 함께 갈 수 있는 길이었다. 범상한 이들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일심동체인 형제가 서로 의지하며 상생하기를 바랐던 마음이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이루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형제자매를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형제자매를 뼈와 살을 나눈 동기간이라 여기고 있는가. 부모로부터 생명을 나누어 받은, 터럭만한 틈도 없는 일심동체로 인정하고 있는가. 살아있거나 세상을 떠난 부모 보듯이 형제자매를 보고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각박해진 듯하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그것들은 주님과 사람 앞에서 아름답다. 형제들끼리 일치하고 이웃과 우정을 나누며 남편과 아내가 서로 화목하게 사는 것이다.’(집회 25,1) [가톨릭신문, 2018년 8월 12일, 김문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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