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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마리아 신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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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09 ㅣ No.193

[지상신학강의] 마리아 신심운동

 

 

1. 레지오마리애(Legio Mariae)

 

레지오마리애는 단원의 성화를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목적으로 1921년 프랭크 더프(1889~1980)를 비롯한 15명의 여성단원들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창설하였다. ‘자비의 모후회’라는 모임으로 출발하여 매주 암병원을 방문하고 봉사활동을 할 것을 결정한 것이 레지오마리애의 모체가 되었다.

 

가난한 병자들을 방문하기 위해 모인 최초의 레지오마리애는 군인과 같은 굳건함과 용맹성을 가지기 위해 옛 로마군대를 본떠서 마리아의 군대(Legio Mariae)라는 명칭을 택하였다. 현재 레지오마리애는 전세계 5개 대륙에 걸쳐 2000개 이상의 교구에 조직되어 평신도사도직 단체 가운데 가장 큰 단체로 발전하였다. 약 26만 개의 쁘레시디움에 행동단원수가 260만 명, 협조단원수가 750만 명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평신도사도직 가운데 가장 큰 단체로 성장한 레지오마리애는 1953년 당시 광주대교구장 현 하롤드 대주교의 지도로 전남 목포의 산정동성당에서 시작,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여 서울과 광주 두 개의 세나뚜스에 50만 명 이상의 규모로 발전하였다.

 

한국 레지오마리애가 잡음없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변칙을 철저히 배격하고, 교본 중심의 원칙적 운영으로 혼선을 미연에 막고,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실질적인 실천을 강조해 신앙과 실천을 함께 하고자 하는 신자들의 요구에 잘 부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금전적 봉사를 철저히 금지시키고, 기도와 노력봉사만을 허용한 점도 금전관계로 인한 잡음과 대립에서 조직을 보호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교와 본당신부의 지시를 받아 운영함으로써 본당의 일치를 저해하지 않고 선교와 사목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특히 입교 권유와 냉담자 회두, 각종 봉사활동 등에 큰 성과를 거둠으로써 한국 교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2. 푸른군대

 

푸른군대는 1947년 미국의 헤롤드 콜갠 신부에 의해 창설됐다. 콜갠 신부는 구 소련의 회개를 간절히 바라면서 붉은군대 소련에 대항해 성모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푸른군대를 창설하였다. 본부는 파티마에 있고, 세계 60여 개국에 전국평의회가 조직되어 있다. 한국에는 1964년 부산 동항성당의 하 안토니오 신부에 의해 도입되었다. 한국본부는 부산에 있으며 1981년부터 <마리아>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각 교구마다 지부가 결성되어 있고 전국 평의회의 지시를 따른다.

 

단원들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일상생활의 고통을 참고, 희생하며,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으로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생활을 한다.

 

 

3. 성모의 기사회

 

성모의 기사회는 성모님의 충실한 기사로 열심히 사도직을 수행하고 특히 죄인들의 회개와 이교인,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며 성화를 이루려는 신심단체이다.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와 동료수사 6명에 의해 1917년 로마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성 테오도로 국제 대신학교에서 창설되었다. 한국에는 1976년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의 승인으로 설립되었고 전국 대부분의 교구에서 활동 중이다.

 

 

4. 마리아의 사제운동

 

1972년에 파티마를 순례하던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곱비 신부는 성모성심께 스스로를 봉헌하는 결심을 하면서 이에 동참하는 사람들로 ‘다락방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 모임은 점차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에는 1976년 부산교구 하 안토니오 신부를 통해 전파되었는데, 1995년 현재 약 200명의 사제가 가입되어 있고 사제 다락방모임뿐 아니라 수도자, 평신도 다락방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마리아 사제운동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 스스로를 티 없으신 성모성심께 봉헌하고 생활로써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5. 평가

 

오늘날 한국교회 신심운동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고 있다. 초대 교회시기에 벌써 성령운동이 일어나 큰 영향을 끼쳤지만 결국에는 교회에 폐해를 끼치고 소멸했던 사실이 있다. 초대교회 성령운동 실패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령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우월의식과 영적인 자만심을 갖게 되어 엘리트 신앙인이라는 의식을 가졌고, 둘째, 성서해석학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신앙진리를 주관화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따로 형성하게 되어 일치를 저해하였다. 셋째, 성령은사가 인간의 감성적 측면을 일깨워 줌으로써 삶에 커다란 활력과 용기를 불러일으켰지만, 감성에 대한 과도한 치중으로 오히려 신앙의 혼란을 초래하였으며, 넷째, 치유와 방언과 같은 성령체험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건전한 신앙을 저해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교와 본당신부까지 거역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게됨으로써 결국은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이단으로 빠지거나 소멸되게 되었던 것이다.

 

신심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야 하고 교구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요소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주교와 본당신부에게 순종함으로써 교도권의 지원을 받아야 하며 본당공동체의 일치를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신심운동의 가르침이 보편적인 신앙을 벗어나거나 독선적이지 않아야 한다.

 

넷째, 개별적인 신심차원보다는 봉사와 활동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신앙인이 교회의 신심단체에 가입하여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신심단체에 가입한 신앙인들은 자기 신심운동이 가톨릭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자만하지 말고 더욱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1900년대 초에 일어났던 꾸르실료, 레지오마리애, 성서모임, 성령운동과 같은 수많은 신심운동은 개인의 성화뿐 아니라 교회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해왔다.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로 평신도사도직이 크게 각성되면서 교회활동에 있어서 평신도의 역할이 더욱 부각되었다. 그 많은 신심운동 중에 마리아 신심운동도 평신도사도직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목자들은 다양한 신심운동들이 교회내에서 골고루 활성화되고,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심단체들이 자기 것에만 집착하지 않도록 잘 지도해야 할 것이다.

 

[월간 빛, 2001년 11월호, 전광진 엘마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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