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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회, 꿈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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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4-19 ㅣ No.233

[경향 돋보기] 교회, 꿈의 공동체

 

 

그리스도 교회의 뿌리

 

그리스도교는 교회와 더불어 긴 역사를 걸어왔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선교가 이루어진 곳이면 어디나 예외 없이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만들었고 공동의 신앙생활을 지향했다. 심지어 무교회주의자들마저 왜 무교회 모임에 나오지 않느냐며 교우들을 닥달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그리스도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바 없는 공산국가에서조차 이른바 ‘지하교회’가 있으니 그리스도교의 근간조직이 교회임은 분명하다. 그처럼 교회라 불리는 신앙 공동체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단연 ‘역사의 예수님으로부터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한 뒤 추종자들은 일종의 무정부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믿었던 지도자가 갑자기 험한 꼴로 십자가에 처형당해 눈앞에서 사라졌고 이후를 기약하는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제자들은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아직 예수님이 약속했던 성령이 오지 않아 교회가 형성되지 않았고 배신자 유다 자리의 충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사도행전 보도의 역사성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학자들도 있지만, 어쨌든 예수님이 십자가형에 넘겨지자 제자들이 전원 줄행랑을 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살아생전 예수님이 만들었던 공동체가 일순간에 와해될지 모르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그리스도교 최초의 역사책인 사도행전에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처음 형성된 곳을 예루살렘으로 지목했다(사도 1-2장). 4세기경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오와 유다교 문헌에서도 모교회의 존재를 인정하니 그 보도의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2.1; 요세푸스 “유대고사” 20.200). 아니, 무엇보다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 모교회의 존재를 의미심장하게 되새겨준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갈라 1?2장).

 

사도행전과 루카 복음서의 저자인 루카(사도 1,1-4와 루카 1,1-4를 비교)는 예루살렘 모교회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이 공동체가 대안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루카는 세 번에 걸쳐 모교회의 모습을 요약했다(사도 2,42-47; 4,32-35; 5,12-16). 그 가운데 앞의 두 가지를 옮겨보겠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 빵 나눔과 기도들에 전념하였다. 또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과 표징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흥겹고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들며 하느님을 찬양함으로써 온 백성에게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그 모임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셨다”(사도 2,42-47 참조).

 

“신도들의 무리는 한마음 한정신이 되었으며 아무도 자기 재산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그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그들 모두에게 큰 은혜가 내렸다. 그들 가운데 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누구든지 밭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팔아서 매매한 값을 가져와 사도들의 발치에 놓았고, 사도들은 저마다 필요한 만큼 각자에게 나누어주었다”(사도 4,32-35). (이하 “200주년 신약성서”를 참조 인용하였다.)

 

 

유다교 회당과 그리스도 교회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 사회는 사람들의 거주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그 중심에 회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① 유다교 회당은 세 명의 장로단이 있어 공동체의 중대사안을 관장하고 결정했다. 예루살렘 모교회에도 기둥으로 여겨졌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의 장로단이 있었고 그들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에서 해방시켜 준 위대한 결정을 내렸다(갈라 2,1-10 참조). ② 유다교 회당은 예로부터 과부나 고아 같은 사회 주변부 계층에 특별한 관심을 쏟아 다양한 구제제도를 마련해 두었다(이사 1,16-17; 10,1-3 참조). 회당에는 구체적으로 ‘쿠파’ 와 ‘탐츄이’라는 헌금통이 있었는데, 쿠파에 모인 돈으로는 빈자들의 거주지를 찾아가 주 14회 식사를 제공하고, 탐츄이에 모인 돈으로는 노숙자들을 위해 날마다 식사를 제공했다. 요즘 식으로 전자는 독거노인을 찾아가는 식사봉사이고, 후자는 서울역 근처의 노숙자 식당쯤 될 것이다. 사도행전 6장 1절의 보도를 참고할 때 모교회도 유다교 회당의 구제제도, 특히 ‘탐츄이’를 도입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히브리계 사람들에 대한 헬라계 사람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는데,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의 (음식) 봉사에서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6,1).

 

③ 유다교의 회당 예배는 크게 보아 의식적인 부분과 교훈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셔마 이스라엘(들어라 이스라엘)’이라는 신앙고백과 ‘18조 기도문(셔모네 에스레)’은 의식적인 부분에 포함되고, 율법서와 예언서를 읽는 ‘독서’와 그에 대한 ‘해설(미드라쉬)’은 교훈적인 부분에 포함된다. 모교회의 예배 의식에 관해서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보도가 워낙 제한적이라, 원형의 사실적인 복구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회당 예배와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는데, 바로 찬양과 기도와 가르침이다(사도 2,42.46). 회당 예배와의 연관성은 오히려 가톨릭 주일미사를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데, 셔마 이스라엘은 사도신경에, 18조 기도문은 보편지향기도에, 독서는 독서에 그리고 해설은 강론에 각각 해당한다. 이 역시 그리스도교의 예배의식이 회당 예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부분이다.

 

위의 세 가지 증거로 짐작할 때 예루살렘 모교회는 유다교 회당을 본으로 삼았다는 말이 가능해진다. 또한 신약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유다교 회당에 출입했고(사도 14,1; 17,1-2), 안식일을 지켰으며(마태 24,10), 십일조를 내고 금식을 했다(로마 14,4 이하). 또 제단에 예물을 바쳤고(마태 5,23-24), 예루살렘 성전에서 신앙생활을 했다(사도 3,1; 5,12). 하기는 그리스도인으로 갓 태어난 사람들의 입장에서 딱히 본을 삼을 만한 데가 있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이 새로운가?

 

신약성경의 증거들을 토대로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모교회가 유다교 회당을 본떴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루카가 아직 이렇다 할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유다교 회당을 흠모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교회가 품고 있는 독특한 면, 곧 ‘무엇이 새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사도행전에 숨어있다고 보아 옳다.

 

두 요약문에 따르면 모교회의 구성원들은 개인재산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재산의 공동소유를 지향했다. 교우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유재산권의 포기인 셈이다(2,44; 4,32). 또한 개인 재산을 팔아 모인 돈은 공동재산이 되었고, 그 씀씀이를 관리하는 책임은 사도들에게 돌아갔다. 교우들의 입장에선 공동체의 필요에 따른 사유재산의 매각으로 볼 수 있다(2,45; 4,34.35). 따라서 만일 ‘사유재산 포기’가 모교회의 경제 원칙이라면, ‘사유재산 매각’은 그 실천율이라 할 것이요,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온 일이 먼저 있었다면, 전자는 후차적으로 이루어진 신학적 의미 부여가 될 것이다. 곧, 재산을 팔아 선선히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없애신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렇게 표현했다는 뜻이다(4,32: “신도들의 무리는 한마음 한정신이 되어…” ). 아무튼 이렇게 모여진 돈을 바탕으로 초대교회는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는, 이른바 ‘소유공동체’를 이룩해냈다. 그렇다면 소유공동체가 모교회의 독창적인 발상일까? 그렇지 않다.

 

유토피아! 누구나 그려보는 이상향이다. 고대 지중해권 세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토피아 사상이 널리 퍼져있었다. 우선 생각나는 사상가들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을 비롯해서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가 있고 로마의 키케로, 유다 사상가로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가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에세네파도 이상향을 추구했던 종교집단이다. 이들의 한결같은 목표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윤리적으로 성숙한 상태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세상이었다. 특히, 필로는 소유공동체가 이루어진 상태를 ‘코이노니아’(친교)라 했고(Prob 75-86), 에세네파의 꿈란 수도원 규칙서에는 “누구든 자신의 진실함을 보여주려는 자라면, 그 표시로 자신의 모든 힘과 전 재산을 하느님의 공동체로 가져와야 한다. 이로써 하느님을 아는 그의 지식이 깨끗해진다.”(1QS 1,11-13)라고 했다.

 

루카에 따르면 인류가 그렇게도 그리던 유토피아가 드디어 예루살렘에서 실현된 것이었다.

 

 

예수의 공동체

 

예루살렘 모교회의 모델은 유다교 회당이 아니라 역사의 예수님이 이끌었던 공동체였다. 그에 따라 예수님의 직제자들이 중심인 모교회는 열두 사도의 집단 지도체제를 유지하려 했고(사도 5,12-16; 1코린 15,5 참조), 예수님의 생활공동체를 본뜬 소유공동체를 지향했다. 실제로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재산을 헌납했고(루카 8,3; 19,8; 마르 10,17-22; 루카 12,33-34 참조) 일행의 살림을 꾸려나갔다(마태 16,5-7; 요한 4,31-33; 마르 14,12-16; 요한 12,6). 모교회는 틀림없이 3년간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이 직접 이끌었던 공동체 모습 그대로 예루살렘에 세우려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비전은 그렇게 형성되었다. 예루살렘은 비록 거대한 로마제국 한 귀퉁이 척박한 속주 유다 땅의 수도였지만 거기에 모인 신앙의 선배들은 위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희망은 날개를 달았고, 재림 기대로 가슴 벅찬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의 신앙을 함께 고백할 장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지중해권 곳곳에 정기적인 모임이 구성되었으며 예루살렘 모교회는 최초의 교회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귀감이었다. 바오로 사도도 자신의 편지에서 이방 교회들이 모교회에서 영적 은혜를 나누어받았다는 그 사실을 토로한 바 있다(로마 15,25-27).

 

앞서 지적했듯이 사도행전 보도의 역사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면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갈등도 없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공동체인데 어찌 유다 과부들과 헬라 과부들 사이에 반목이 있을 수 있으며, 바오로가 가는 곳마다 모금을 해서 모교회를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이상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예루살렘 모교회의 정통성을 강조했을 뿐이지 현실을 반영하진 않았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 지적은 일견 옳아 보인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모교회가 지향했던 공동체 모델이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는 종종 전 재산을 팔아 교회에 헌금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도행전에 나온 모교회의 모습은 분명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물론 지난 교회 역사에 사유재산권의 포기와 사유재산의 매각, 그리고 그렇게 모여진 재산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들어 낸 경우가 있다. 바로 ‘가난’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받는 수도원의 등장이다. 그처럼 사도행전의 유토피아는 수도원 운동을 통해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유토피아의 꿈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채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예수님의 직제자들이 세운 최초의 교회가 드디어 기록에 담겨졌고 이제 곧 우리 교회에도 생생한 모교회의 역사를 담은 사도행전이 도착할 것이다.’ 기원후 80-90년대 지중해 지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마 떨리는 마음으로 사도행전을 읽게 될 날을 학수고대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도행전을 손에 쥔 순간 모교회의 모습에서 떨리는 감동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처럼 신앙의 선배들은 그리스도교의 세계화를 위한 거대한 꿈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이제 세상에서 교회의 역할을 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3-16).

 

* 박태식 - 대한성공회 신부. 독일 괴팅엔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 “나자렛 예수”, “다르소의 바오로”가 있다.

 

[경향잡지, 2009년 3월호, 박태식(대한성공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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