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웅천 왜성을 아시나요? - 16세기 한국에서 최초로 미사가 봉헌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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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1-09 ㅣ No.610

웅천 왜성을 아시나요? (상) 16세기 한국에서 최초로 미사가 봉헌된 곳

 

 

경남 창원시 남문동에는 한국 최초로 미사가 봉헌된 웅천 왜성이 있다. 임진왜란 중 왜군(일본군) 군종사제로 활동한 세스페데스(예수회, 1551~1611) 신부는 1593년 웅천 왜성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일본군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등 사목활동을 했다. 


10월 26일 웅천 왜성에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한 이제민(마산교구 명례성지조성추진위원장) 신부가 "미사 강론을 많은 신자들과 나누고 싶다"며 원고를 보내왔다. 이 신부의 글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마산교구 신자들이 세스페데스 신부가 한국 최초로 미사를 봉헌한 웅천 왜성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웅천 왜성을 처음 찾은 것은 십여 년 전 구암본당에서 사목할 때였다. 절벽 아래 소나무 사이로 멀리 내다보이는 푸른 바다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때 나는 언덕 아래 바다를 향해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다보면서 엉뚱하게도 부여의 낙화암을 떠올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다시 이 언덕을 찾았을 땐 소나무 사이로 보이던 바다가 매립지로 변해 있어 무척 안타까웠다. 이곳이 한반도에서 최초로 미사가 봉헌된(1593년께) 곳임이 생각났다. 역사마저 저 바다처럼 매립돼 버린 듯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백 몇 십 년 전 세스페데스 신부는 자기가 봉헌하는 미사가 이 땅에서 최초로 거행되는 미사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 주길 바라며 미사를 드렸을까?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이를 기억하라"고 하셨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 주길 바라셨을까?

물론 우리는 세스페데스 신부가 어떤 지향을 가지고 이 땅을 침범한 일본군과 함께 미사를 드렸는지는 모른다. 미사를 드리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의 땅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들의 행복과 이 땅의 평화를 위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을까? 아니면 오로지 일본군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며 미사를 드렸을까? 우리는 그의 마음을 모른다. 그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여하는 수 천 명의 일본군 천주교 신자는 또 어떤 마음으로 미사에 임했을까?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졌을까? 아니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무사히 돌아가게 해달라는 기도만을 바쳤을까? 우리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세스페데스 신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미사를 드렸고 미사에 참례한 군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모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을 쪼개며 그들의 몸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들 마음 안에서 녹아 사라지시며 그들이 당신의 마음과 하나 돼 또 다른 성체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마음을 기억하며 오늘 성체의 삶을 살고자 한다.

예수님의 이 마음과 하나 되겠다는 마음을 발하지 않고 그저 400여 년 전 이곳에 미사가 거행되었다는 것만을 기억하고자 할 때 미사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행사에 그치고 말 것이다. 미사는 우리 마음을 과거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전개되는 현실 속으로 파고들게 한다. 성체와 관련해 몇 가지 생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예수님께서 돌아기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시며 빵을 들고는 "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먹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그들 몸 안으로 씹히며 들어가시어 소화되고 사라지셨다.

그분은 제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것이다. 우리가 미사를 드리며 그분의 죽음과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그분의 몸을 받아먹어 우리의 몸을 그분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분처럼 "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먹어라"고 세상에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분처럼 우리의 몸을 쪼개고 희생시키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 많이 먹고, 많이 쌓고, 많이 누리기를 바라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자기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고 세상이 평화롭길 갈망한다. 종전보다 더 큰 집에서 잘 먹고 마시며 부를 누리고 있음에도 우리들의 마음이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과 평화를 자기에게 모으려고만 할 뿐 자기 몸을 쪼개며 남들과 나눌 줄 모르기 때문이다.

행복과 평화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쌓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쪼개어 나누어주는 일을 통해서 찾아온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시는 것은 우리도 그분처럼 온 인류를 위해 내 목숨을 내놓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우리는 희생제사인 미사를 드리면서 나만의 행복을 기원할 때가 많다. 또 미사를 자기만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고 할 때가 많다. 우리는 사실 이런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미사를 드린다.

예수님 이전 사람들은 다른 동물을 잡아 희생 제물로 하느님께 바치면서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염원하였다. 예수님은 그들과 달리 다른 이들의 평화를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 미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게 한다. 미사는 그렇게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치유해 준다.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우리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아예 포기하려 할 때가 많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며 이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자기희생의 모태에서 세상에 태어났으며 이를 근본으로 해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용기를 북돋아주시기 위해서다.

우리 가정이 평화롭다면 우리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위해 자기를 쪼개고 나누는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희생은 사랑의 근본이요 평화의 원천이다. 행복과 평화를 자기에게만 집중시키거나 자기 가정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교회나 본당) 안에서만 찾으려 할 때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로 변하며 남을 희생시키게 된다.

우리가 오늘 미사를 드리는 이유는 "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먹어라"고 하시며 자신을 희생시키는 삶의 가치를 이 세상에 보여 주신 그리스도의 삶을 오늘 살기 위해서다.

점점 자기희생으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희생 제사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조차 성체를 마음에 모시면서 그리스도처럼 살겠다는 마음보다 우리의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을 발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10일, 이제민 신부(마산교구 명례성지조성추진위원장)]

 

 

웅천 왜성을 아시나요? (하) '성체와 소금의 삶' 일깨우는 웅천, 명례

 

 

세스페데스 신부가 첫 미사를 드린 지 300여 년이 흐른 뒤인 1897년 명례 언덕에 경남 지방 첫 본당인 명례본당이 설립됐다.


소금의 삶

성체의 삶의 가치를 보여준 이곳 웅천에서 우리는 명례의 순교자 신석복(마르코, 1828~1866)을 생각한다. 세스페데스 신부가 이곳에 미사를 드린 후 거의 250여 년이 지나서 소금장수 신석복이 웅천 땅을 밟았다.

그가 웅천왜성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런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곳이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미사가 거행된 곳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웅천왜성에서 신석복을 기억하며 미사를 드리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때문이다.

그는 누룩과 소금 장수였다. 누룩은 명례의 들판에서 얻었다. 또 그가 웅천 장에서 돌아오다가 붙잡혀 순교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1866년) 소금은 염전이 있었던 이곳 웅천에서 샀을 것이다.

그가 성 바로 아래 염전까지 와서 소금을 샀는지 아니면 웅천 장에서 소금을 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명례에서 누룩을 짊어지고 이곳 웅천 장에 오는 길에 팔았다. 또 이곳에서 명례로 돌아가는 길, 아니면 명례 인근 장을 돌아다니면서 소금을 팔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천주교 신자가 됐다. 천주교 신자가 된 후 소금을 사고파는 삶을 넘어 소금같은 삶을 살았다.

소금은 다른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을 녹이며 사라진다. 소금이 배추에 뿌려지면 배추는 절여지고 김치가 된다. 김치에서 더 이상 소금은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소금이 아니라 김치 맛을 낸다.

소금은 다른 존재를 맛내기 위해 자신을 녹이며 사라지고 성체는 남을 위해 자기를 쪼개고 희생하며 녹아 사라진다. 이들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다른 존재를 위해' 자신을 녹여 세상에 맛을 내게 하는 데 있다.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며 사라지신 그분 몸에서 인류는 사랑을 맛봤다. 사랑이 흘러나오는 곳에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을 체험했다.

성체이신 그리스도가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입니다"(마태 5,13)라며 우리에게 소금이 되라고 한다면 우리를 빵이신 당신의 존재로 초대하는 것이다. 자신을 소금처럼 녹이며 사라지는 것이 곧 순교 영성이 아니겠는가? 신석복은 예수님 초대에 응해 일생을 하느님께 바쳤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웅천에서 명례로 가는 길.
 

신석복 순교자가 누룩과 소금 장수였다는 사실을 새삼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된 것이 하느님 섭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땅은 녹는 소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하얀 교회, 하얀 그리스도인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녹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우리의 존재가 녹아 사라지는 곳에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것이다. 소금 장수였던 순교자 신석복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소금의 의미를 새로 일깨워주고 있다.
 

소금길, 생명의 길
 
신석복이 순교한 후 30년, 세스페데스 신부가 첫 미사를 드린 지 300년이 막 지나던 해에 명례 언덕에 경남 최초로 본당이 설립됐다(1897년). 사제가 본당에 거주하면서 미사를 거행한 최초의 성당이 설립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조선 땅에서 제일 처음 미사가 거행된 웅천과 경남에서 제일 처음 본당이 설립된 명례는 유사한 점이 있다. 물론 여기서도 방점은 '최초'가 아니라 '미사'에 있다. 웅천과 명례는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미사와 성체성사. 소금의 의미를 현대에 일깨워 주는 곳이 될 것이다. 이 두 지역을 순교자 신석복이 시대를 넘어 소금 행상을 하며 이어주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어느 고고학자와 함께 신석복이 걸었을 법한 길을 고지도(古地圖)를 보며 따라 걸었다. 웅천과 명례를 잇는 이 길은 성체와 소금으로 살길 갈망하는 현대인에게 큰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순교자 박대식(빅토리노)과 서성겸(요한)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 가락(가야)과 신라의 문화도 만나고 낙동강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대자연도 만나게 된다.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이 땅과 이 땅 위에 펼쳐진 역사,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 추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본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이전에 남을 이롭게 하는 홍익이념을 삶의 근본으로 삼고 살았다.

근본적으로 소금의 삶, 성체의 삶을 지향하며 산 것이다. 이 길은 우리를 본래의 모습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명례성지는 자신을 소금처럼 녹여 순교한 그분을 기억하며 '녹는 소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저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녹는 소금이 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소금입니다. 당신(우리 가정, 우리나라, 우리 교회)을 위하여 녹는 소금이 되겠습니다.'

'교회도 녹아야 한다.'

웅천에서 명례까지 명례에서 웅천까지 자신을 녹이는 순례의 길을 떠나자. 이 시대 소금이 되기 위해, 성체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나자. "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먹어라. 이는 내 피다. 너희는 받아마셔라"는 예수님 말씀은 사제가 미사를 봉헌할 때만, 미사 중에 사제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일상을 통해 인생 순례를 하면서 해야 할 말이다. 그분은 "너희는 이를 기억하라"고 하시며 우리가 서로 나누는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 지금 이 시대에는 녹는 소금이 필요하다. 많이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녹는 소금이 되길 희망해 본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17일, 이제민 신부(마산교구 명례성지조성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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