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사운드 가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07 ㅣ No.1121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사운드 가이

 

 

영화 촬영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 어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의 경우 시청자들은 마치 두 명의 배우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앵글 밖에서 그 장면을 위해 일을 하고 있으며 역할에 따라 각 팀의 성격이 구분된다. 그 중 현장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로 촬영준비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람이 바로 ‘사운드 가이(Sound guy : 현장에서 녹음을 담당하는 사람)’다. 사운드 가이는 영화에서 배우들의 목소리와 촬영 현장의 음향을 담는 역할을 하는데, 조감독은 촬영을 시작할 수 있는지 사운드 사이에게 먼저 확인한다. 사운드 가이가 “사운드 롤링(Sound rolling : 녹음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 롤링(Camera rolling : 촬영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라고 신호하면 몇 번째 장면과 촬영 횟수를 알리는 슬레이트를 치고 감독이 배우들에게 연기를 시작하라는 신호로 “액션”을 외친다. 촬영 중에는 모두가 숨을 죽이지만 그 중에 서도 사운드 가이는 헤드폰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면서 배우들의 목소리,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모든 팀이 배우들의 연기에 시선을 모으고 있을 때 촬영현장 한구석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배우의 목소리와 현장의 음향에 귀를 기울이는 그들이 가끔 구도자(求道者)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보이는 이야기(Visual story)’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영상미는 영화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기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이라도 음향을 제거하면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다. 새가 지저귀는 장면에서 새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배우들이 대화를 하는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자막으로만 내용을 보면 그 영상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으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차라리 소리와 음악으로만 이루어진 라디오 드라마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될 것이다. 이처럼 듣는다는 것은 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할 때 맨 먼저 외치는 소리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말씀하신 뒤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고 하신다. 수많은 기적의 징표들을 눈으로 확인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들어라.”고 한다. 병든 이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를 쫓아내고 풍랑을 잠재우는 기적의 징표를 사람들은 보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또 다른 징표를 끊임없이 요구한 것은 그 안에 담겨진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바를 하느님께 기도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한다. 그러나 그 기도 안에서 주님은 하느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하고 계획이 이루어지기만을 원한다. 하느님을 주님이 아니라 알라딘에 등장하는 램프의 요정 ‘지니’로 전락시킨다. 내가 지금 기도하는 대상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면 먼저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그래서 내 가 하느님이 될 때 우리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처럼 기도하는 위선자가 되며 마치 자신의 뜻이 하느님의 뜻인양 착각하여 자신과 이웃,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촬영의 시작이 사운드 가이의 외침에서 이루어지지만 마무리 또한 그러하다. 촬영을 마친 뒤 현장의 소리를 1분 정도 담아야 하기 때문인데 사운드 가이가 “룸 톤(Room tone)”이라고 외치면 감독은 물론 모든 작업팀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침묵을 지킨다. 그때 촬영 현장에 흐르는 고요함은 모든 작업팀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운드 가이가 온 마음을 기울여 고요히 현장의 소리를 담아내듯 우리 또한 기도의 순간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운드 가이가 될 때 분명 그 기도는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 교회를 하느님과 일치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월간빛, 2018년 9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1,79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