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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아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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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1-10 ㅣ No.376

[레지오 영성] “아빠, 아버지”



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만 부를까요? 왜 ‘엄마,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것일까요? 가부장제도의 낡은 전통인 것일까요? 더군다나 오늘날 수많은 결손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상실되어 있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아빠, 아버지’보다는 ‘엄마, 어머니’가 하느님을 느끼기에 더 친밀합니다. 이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음을 먼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남성으로 태어나셨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아빠, 아버지’를 세속의 개념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모시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아빠(abba)’ 호칭은 예수님 시대 가족들 사이에서 친밀하게 사용되던 호칭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우리에게 ‘아빠, 아버지’로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아빠,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루카복음에는 그저 간결하게 ‘아빠’라는 호칭만이 존재할 뿐인데, 마태오 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확장되어 나타납니다.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성경에서 보다 짧은 문장이 원문에 가깝다고 합니다. 따라서 루카 복음의 ‘아빠’라는 간결한 호칭이 예수님의 본래 가르침에 가깝습니다. 또한 주님의 기도의 전체 구조와 내용을 놓고 보더라도 루카복음의 ‘아빠’라는 간결한 호칭이 더 적합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아빠(abba)’라는 호칭은 예수님 시대에 가족들 사이에서 친밀하게 사용되던 호칭입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의도로 주님의 기도에서 ‘아빠’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단순하게 ‘아빠’라는 호칭으로 시작하도록 가르쳐 주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바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셨던 것일까요? 히브리어로는 ‘우리 아버지’를 ‘아비누(abhinu)’라고 부릅니다.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8장 15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abba)”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일까요? 바오로 사도 역시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사용하셨던 ‘아빠’라는 표현의 귀중함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로마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도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아람어인 ‘아빠’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깊이 느끼는 것이 성화의 첫째가는 길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처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아빠’라는 호칭을 보존하여 사용하면서, 하느님께서 단지 멀고도 높기만 하신 분이 아니라, 가족의 가장과도 같으신 친밀하고도 사랑스런 아버지라는 느낌을 이 안에 가득히 담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아빠’라는 호칭을 얼마나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그 어감대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의 어감이 아니라, 전지전능하기만 하신 분 혹은 나와는 멀리 떨어진 높으신 하늘에 계신 분으로만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리는 데”(레지오 마리애 교본, 27쪽 참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아빠,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아빠,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깨닫는 것이 성화의 첫째가는 길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1월호, 
정재호 안드레아  신부(의정부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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