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세상 속 신앙읽기 - 복음적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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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2 ㅣ No.243

[신심서적 다시 읽기] 《세상 속 신앙읽기》 - 복음적 삶을 위하여

 

 

《세상 속 신앙읽기》는 2014년 2월 선정도서이다. 이 책은 네 개의 장(1. 세상 속 나, 2. 세상 속 하느님, 3. 세상 속 교회, 4. 세상 속 사람들)으로 나뉘어 있고 각 장의 끝에 신학 에세이 한 편씩을 실었다. 글을 열면서 “신앙, 그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말,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나한테 익숙한 삶에 변화를 추구하는 힘든 도전일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제3의 눈’을 갖는 아름다운 체험”이라고 적고 있다. 또 진흙탕 같은 세상 속에서도 진주를 발견하고,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는 영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신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늘 자신에게 하는 물음이 있다. “당신은 신앙인인가? 그리고 당신은 진실한 신앙인인가?” 젊은 시절, 자신의 판단만을 믿고 멋대로 살아온 걸 후회하면서 40대 중반 늦깎이로 신앙을 가졌다. 그것도 성당에서 하는 교리공부가 부담스러워 통신교리를 하고 보충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구색만 갖추고 주일미사에만 나가는 신자생활을 하였다. 그게 마음에 걸려 보속하는 마음으로 정년퇴임 후 13년 동안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교사로 봉사를 한 이유의 하나다. 어느 날, 집 앞 재래시장에서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는 남루한 차림의 한 아주머니가 기쁨에 찬 모습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참, 기쁘게 사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껏 주일미사에 나가고, 1년에 한두 번 성사생활을 하면서 필요할 때 형식적인 기도를 바치면 그게 옳은 신앙인인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경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퇴근 후 어버이 성경학교에 다니고, 그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에서의 과정도 수료하였다. 성경공부를 시작하고부터는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얕은 지적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을 배우라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그 뒤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 과정을 끝내고 해당 성경의 내용을 개괄하면서 3년여에 걸쳐 필사를 완료하였다. 지나고 보니 그 짧은 지식으로 내용을 개괄하였으니 무식한 소치가 아니었나 싶다. 성경을 읽거나 필사하는 이유는 ‘삶의 변화를 모색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삶이 달라져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엉뚱한데 마음을 쓴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김 추기경님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하러 기차를 타고 가시는데 차내 복도에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는 소리를 듣고 ‘인생은 계란’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일화가 웃음 짓게 한다. 진리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닌가 보다. 하느님 없이 산 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잘 모르지만 부활신앙이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앎의 갈증을 이 책이 조금은 풀어준 것 같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일화를 생각한다. “모래 구덩이를 파고 조가비로 바닷물을 떠 채우면서 바다를 옮기겠다.”는 꼬마의 말. 어떻게 그 신비가 쉽게 이해가 되랴.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고 당연한 것임을 늦게야 깨닫는다. 신앙인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시련과 고통을 없애주시기 보다 오히려 그런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짊어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분이심을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 신앙인이 찾는 여정은 하느님을 닮은 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여정이 아닐까?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폭력과 불의의 혼탁함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영적 감수성을 갖는 것이라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연 속에서, 토마스 모어는 세상 권력의 불의 앞에서조차 하느님은 살아계시고 인간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조화롭거나 아름답지 않고, 창조주 하느님께서도 고개를 돌리실 정도라고 한다. 어두움과 무질서, 혼돈과 파괴가 세상을 뒤덮고, 살인과 자살, 폭력과 전쟁, 환경파괴와 자연재앙, 이른바 죽음의 문화와 죽임의 문화가 기세를 떨치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우리 삶이 어떤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나의 신앙은 하느님 없이 사는 날은 없는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정작 나의 십자가는 외면하지 아니 하는가? 혀끝으로 전달되는 신앙은 결코 타인을 움직일 수 없다. ‘하느님의 몽당연필이 된 마더 테레사, 수단 톤즈에서 믿음과 사랑을 전파한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복음적 열정을 삶으로 보여준 분들이 아니었을까?

기도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성호를 긋고 짧은 감사기도를 바치는 사람,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반성하고 짧은 성호경을 바칠 줄 아는 사람, 식사 전후에, 사람을 만나기 전에, 버스 안에서, 책상 앞에서, 거리를 걸을 때조차도 속삭이듯 하느님께 화살기도를 바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한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기 이전에 하느님이 내 삶의 중심에 계신지 반성해 보자. 신앙은 선택이 아니라 결단이란다. ‘믿음이라는 인격적 행위에 뿌리를 둔 신뢰에 찬 결단임을 생각하자. 삶의 어두움과 두려움,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신뢰에 뿌리를 두는 것이다. 그 안에서 마음의 평화가 샘솟아 오른다.

이 책에서는 부활신앙, 성령, 삼위일체의 신비, 성경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등을 설명하고 있다. 모두가 ‘쉬운 신앙은 없다.’는 가르침에 따라 자신부터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도 늘 함께 하시고 힘을 더하여 주시리라. 신앙은 생각이나 말뿐이 아니라 내 삶이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신학 에세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에서 “신앙인이란 땅을 밟고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삶에 참된 행복이 있음을 깨닫는 사람이다.”를 깊이 음미하면서 살아가야 하리라.

-《세상 속 신앙읽기》, 손용민 지음, 바오로딸 펴냄

[월간 빛, 2015년 2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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