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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오 9세 교황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 첫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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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12 ㅣ No.1441

라틴어 교황 칙서 첫 ‘한글 필사본’ 발견


안양대 곽문석 교수, 158년 만에 바티칸도서관서 「비오쥬교」 찾아

 

 

라틴어로 된 교황 칙서를 우리말로 옮긴 첫 교황 문서 「비오쥬교」 표지.

 

 

라틴어로 된 교황 칙서를 처음으로 우리말로 옮긴 ‘한글 필사본’이 발견됐다.

 

「비오쥬교」라는 제목으로 바티칸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한글 필사본’을 동서 교류 문헌을 연구하는 곽문석(안양대 HK+사업단) 교수가 찾아내 1일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주최한 조선대목구 설정 19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공개했다.

 

바티칸도서관(Biblioteca Aposto lica Vaticana) Sire.L.13으로 분류된 「비오쥬교」는 비오 9세 교황(재임 1846 ~1878)이 1854년 12월 8일에 반포한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으로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오쥬교」는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가 지시하고 인준한 책으로 1860년에서 1863년 사이에 라틴말을 번역한 첫 우리말 교황 문서이다. 「비오쥬교」는 서문 1쪽, 본문 52쪽, 결문 1쪽 등 총 54쪽으로 구성돼 있으며 가로 21㎝, 세로 28.5㎝ 크기이다. 그리고 쪽마다 화려하게 채색된 꽃으로 꾸며져 있다.

 

「비오쥬교」 서문에는 라틴어로 “우리의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 비오 9세 교황 성하께서 거룩하신 동정녀의 원죄 없는 잉태의 신비를 신앙의 교의로 선포하신 칙서를 생 쉴피스 신학교 교장인 시르 몬시뇰 요청에 따라 르 퓌 교구장 주교를 통해 비오 9세 교황 성하께 바치기 위해 조선말로 옮긴 번역문이다. 1863년 11월 25일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 작성, 이를 검토해 인준함. 갑사의 주교 조선대목구장 시메옹 베르뇌”라는 글이 쓰여있고 베르뇌 주교 인장이 찍혀 있다. 시르 몬시뇰은 프랑스 르 퓌 교구장 주교의 지원 아래 1860년부터 비오 9세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400개 언어로 번역해 교황청에 보내는 작업을 했다.

 

결문에는 “1866년 3월 8일, 11일, 30일에 순교한 선교사들을 대신하기 위해 파견될 예정인 세 명의 선교사들이 나의 요청에 따라 1867년 주님 공현 대축일에 생 쉴피스의 내 방에서 다음과 같이 서명했다. 뤼송교구 출신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알렉상드르 제레미 마르티노, 뤼송교구 출신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의젠 리샤르, 리옹교구 출신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귀스타브 블랑”이라고 적힌 시르 몬시뇰의 라틴어 첨언이 적혀 있다.

 

베르뇌 주교는 1863년 11월 7일 프랑클레 신부에게 보낸 편지와 같은 해 11월 18일 베롤 주교에게 보낸 편지, 또 11월 24일 알브랑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오 9세 교황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조선어로 옮겨 교황청으로 보낸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베르뇌 주교가 편지에서 염려했던 것처럼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었다.

 

158년 만에 찾은 「비오쥬교」의 학문적 가치는 벌써 ‘국보급’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첫째, 라틴어로 된 교황 문서를 처음으로 한글로 옮겼다는 데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문서학서를 우리말로 옮긴 ‘언해본’들이 전부였는데 라틴어 교황 문서를 박해 시기에 옮겨 교황청으로 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둘째, 19세기 중반 우리말과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비오 9세 교황에 대해 ‘주교’와 ‘교종’이란 말을 혼용하고 있어 당시 교회 용어에 관한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셋째, 박해 시기 한국 교회의 인쇄술에 관한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이다.

 

올해 5월 21일 바티칸도서관 사이트에서 「비오쥬교」를 처음으로 찾아낸 곽문석 교수는 “교황 칙서를 우리말로 필사해 바티칸이 소장하고 있는 유일한 필사본”이라며 “앞으로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협력해 바티칸도서관에 정식으로 원본에 대한 복사 영인본을 구할 계획이며 곧 이에 관한 학술 발표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곽문석 교수와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조한건 신부, 한국학중앙연구원 조현범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서원모 교수가 공동으로「비오쥬교」 편역주 출판을 위해 연구하고 있다.

 

한편, 조한건 신부는 “최양업 신부가 「비오쥬교」 우리말 역자일 개연성이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조 신부는 “「비오쥬교」 우리말 역자는 최양업 신부 아니면 다블뤼 주교일 가능성이 크다”며 “최양업 신부가 1861년 6월에 선종했으니 시르 신부의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조선어 번역 요청서가 언제 조선에 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번역자를 찾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10일, 리길재 기자]

 

 

한국교회사연구소 심포지엄,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비오 9세 교황 칙서> 한글 번역본 첫 공개


안양대학교 곽문석 교수 발견, ‘조선교회 역량 집대성’ 가치

 

 

곽문석 교수가 최초로 발견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

 

 

비오 9세 교황이 1854년에 선포한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 한글 번역본이 10월 1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성 베르뇌 주교(1814~1866) 서한에 언급돼 있었지만, 그 소재는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선포한 칙서다. 이 문헌은 안양대학교 HK+사업단 곽문석 교수가 올해 7월 교황청 도서관 디지털 문서고 자료(분류번호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Sire.L.13)에서 발견했다.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은 성 베르뇌 주교가 제4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재임하던 1863년 11월 25일 조선 한양에서 인준하고 교황청에 보낸 총 54쪽 분량의 문헌이다. 교황청은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반포 후 각 나라에 이 칙서를 보냈으며, 칙서 내용을 각국 언어로 번역해 교황청에 다시 보내도록 했다.

 

곽 교수는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가 10월 1일 오후 1시30분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2층 홀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한 조선대목구 설정 190주년 기념 심포지엄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조선 천주교회’ 종합토론 중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은 한글 언해본 중 가장 예술적으로 제본된 책이면서 번역 연대가 확실한 매우 희귀한 문헌”이라고 평가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설명했다.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 한국학중앙연구원 조현범(토마스)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서원모 교수, 곽 교수가 공동연구진을 구성해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 연구 성과를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며 올해 안에 연구 발표회도 열 예정이다.

 

조현범 박사는 심포지엄 종합토론에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이 지닌 영성적, 신앙적 의의를 짚어야 한다”며 “조선교회 인쇄소 역량을 총동원했다 할 만큼 조선교회에서 나온 출판물 중 이만큼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교회가 교황의 라틴어 칙서를 받아 한글로 번역해 교황청에 보냈다는 사실에서 보편교회 안에서 조선교회의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곽문석 교수가 10월 1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2층 홀에서 열린 조선대목구 설정 190주년 기념 심포지엄 중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 발견 경위와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종합토론 질의응답에 나선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조광(이냐시오) 교수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에 ‘비오쥬교’라고 표기된 것에 대해 “교황을 로마의 주교로 지칭할 때가 아니면 교황에게 주교라는 호칭을 쓰는 일은 특별한 경우여서 ‘비오쥬교’ 표기 부분은 좀 더 명확히 정리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한건 신부는 “천주교 문헌 연구를 위해 외부 기관과 협업할 필요가 있다”며 “아직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 실물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목판본인지 필사본인지, 가경자 최양업 신부가 번역에 참여했는지 여부 등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성 베르뇌 주교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성 베르뇌 주교의 활동상을 보여 주는 사료를 근거로 박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베르뇌 주교가 열정적인 사명감과 낙관적 인식을 지니고 조선 선교에 헌신했음을 조명했다.

 

심포지엄은 조현범 박사가 제1주제 ‘베르뇌 주교 서한 자료의 편찬사’에 대해 발표한 데 이어 내포교회사연구소 방상근(석문 가롤로) 연구위원이 제2주제 ‘베르뇌 주교의 조선 선교 활동 - 조선대목구의 수입과 지출을 중심으로’에 대해 발표했다. 마지막 제3주제 발표는 수원교회사연구소 이석원(프란치스코) 연구실장이 ‘베르뇌 주교의 조선 인식’이라는 주제로 맡았다. 이석원 연구실장은 “성 베르뇌 주교는 조선의 관습을 존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조선의 관습이 유럽보다 훨씬 낫다고까지 인식했다”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2021년 10월 10일, 박지순 기자]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 발견한 안양대 곽문석 교수


“한글로 라틴어 원문 번역한 최초의 문헌”

 

 

“이 문헌을 발견하고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에 천주교회 기관과 공동연구를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비오 9세 교황이 1854년에 선포한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 한글 번역본을 최초로 발견한 안양대학교 HK+사업단 곽문석 교수는 “평소 동서교류문화 연구를 하면서 교황청 도서관 디지털 문서고를 검색하다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분류번호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Sire.L.13)을 찾게 됐고 초기 연구를 거치고 나서 교회사적으로 의미가 큰 문헌임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곽 교수가 “18~19세기 한글 언해본 전통에 영향을 받은 번역본”이라고 표현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은 조선대목구 제4대 교구장 성 베르뇌 주교(1814~1866) 서한에는 조선에서 국경 너머로 보낸 것으로 언급돼 있지만 그동안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곽 교수가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 소재를 발견함으로써 조선교회에서 번역된 후 국경을 넘어 교황청까지 전달된 사실이 증명됐다.

 

곽 교수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의 가치에 대해 “라틴어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은 세계 각국에서 자국 언어로 번역해 교황청으로 보냈고, 조선에서도 교황청에 한글 번역본을 보냈기 때문에 세계사적 기록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관점에서 “한글로 쓰인 가장 이른 시점의 종교적 외교문서로도 볼 수 있고 라틴어 원문을 한글로, 문자적으로 번역한 최초의 문헌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국내에서 발견된 한글 언해본 가운데 가장 예술적으로 제본된 책으로서 예술사적으로도 가치가 높고, 성 베르뇌 주교가 번역본을 인준한 일시(1863년 11월 25일)가 명시돼 번역 연대를 알 수 있는 희귀 문헌”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한글 번역본 연구에 천주교 기관과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한국교회사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한글 번역본을 현대어로 옮기는 작업을 마무리한 단계로, 교황청 지시에 의해 라틴어를 한글로 옮긴 거의 유일한 문헌인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은 19세기 한글 연구에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21년 10월 10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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