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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TV - 어린이들에게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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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24 ㅣ No.871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어린이들에게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



- ‘영재 발굴단’ 한 장면. (SBS 제공)


부모가 자녀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심리다. 그런데 자녀의 성장 목표와 기대수준을 일방적으로 정해서 강요하는 일부의 행태가 부모들 사이에 집단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오늘의 어린이들은 사교육의 형태를 띤 중노동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현대의 가정 문제를 다룬 2014년 세계 주교 시노드 임시총회에서도 “아시아에서… 학교 성적과 학위 취득이 가정의 제일 목표로 여겨지고 있는”(의안집, 76항) 상황이 언급된 바 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우리는 최근에 탄생한 명언을 새겨볼 만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1990년대 어린이들의 영웅, 반평생을 어린이와 함께한 종이접기 연구가 김영만 선생의 말씀이다. “어린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 아직 생각도 작고 머리도 작잖아요.”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대하는지 성찰케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한민국 인재 육성 프로젝트’를 표방하는 ‘영재 발굴단’이다. 이 프로그램은 당초에는 특정 분야에 재능이 뛰어난 속칭 영재들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며 경합을 붙이다가, 근래에는 영재들의 정서적 문제, 가족과의 관계 등 생활환경 전반을 다루며 아동심리 솔루션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영재 발굴단’은 세상과 지식에 눈뜨고 재미를 붙이는 어린이의 잠재력을 생생히 보여준다. 일찍 발견한 재능에 흥미를 붙여 스스로 공부하고 발전하는 아이들, 특히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에서 독학으로 관심사에 통달한 영재들을 보면 대견하고 뿌듯하다. 괴짜 같은 몸짓과 속사포 같은 말투로 지식을 쏟아내는 모습은 당황스럽지만, 순수한 몰입의 증거라 여기고 보면 귀엽기도 하다. 출연 아동에게 관심 분야의 명인을 소개해 진로상담을 해주는 멘토링 서비스도 구체적인 성취동기와 목표를 심어준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영재교육의 부작용에 대한 묘사도 주목할 만하다. 부모의 공부 강요에 끌려가는 아이, 영재 동생에게 밀려 주눅 든 형과 언니, 이상향에 어긋나는 자녀의 행동을 용납하지 못하는 부모, 자녀의 재능을 과대평가하는 부모. 생각도 작고 머리도 작은, 아직 자기주장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사랑하는 부모를 기쁘게 해주려고 무리한 요구를 눈물로 감내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런 부모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어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재 발굴단’은 어린이의 개성을 존중하며 격려하자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어린이들의 잠재력과 학력 중심주의의 부작용을 균형 있게 다루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로 아이들을 소개하더라도, ‘영재 발굴단’의 화제몰이는 아이들이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표현하는 주체가 아니라 평가의 객체가 돼버린 현실을 방증한다. ‘대한민국 인재 양성’이라는 구호가 학력 중심주의에 대한 순응을 전제하고 있고, (재능 계발에는 가정환경, 거주지역, 경험 등 다양한 외적 변수가 작용함에도) 방송편집 과정에서 숱한 맥락정보가 생략된 영재들의 사례를 통해 공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는 자기계발 논리를 무의식중에 전파하는 것도 프로그램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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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TV칼럼니스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23일,
김은영(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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