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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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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2 ㅣ No.244

[신심서적 다시 읽기]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 외 17분의 성직자가 쓴 어머니를 회상한 이야기다. 평범하고 편안한 삶을 버리고 봉헌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인내와 사랑없이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많았음을 사제들은 이제야 알았다고 고백한다. 어머니! 참으로 정겨운 이름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얘기들이다. 김 추기경님은 우리 어머니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어머니라 하셨고, 임 알렉산데르 신부님은 ‘눈물 젖은 빵맛’을 얘기하셨고, 조 타대오 대주교님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어머니의 ‘기도문’을 적었고, 김 시몬 신부님은 밤새 ‘양팔 묵주기도’를 바치는 어머니를 보고 회심을 하였고, 오 루도비코 신부님은 사제수품 선물로 배냇저고리를 받고 우셨다고 한다. 사제 어머니들의 공통점은 기도로 사신 점이 아닐까 한다. 그 절절한 이야기를 다 전하지 못하고 그중 몇 이야기를 줄여 옮긴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

내게도 우리 조국 한국이 으뜸이고, 우리 어머니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어머니이다. 우리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크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서 산과 들을 헤매는 착한 목자의 사랑과 다를 바가 없다. 큰 형이 20대에 집을 나가 일본에 있다가 다리에 큰 화상을 입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곧바로 주소 하나만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일본 말은 한 마디도 모르시지만….) 형을 데려와 약을 만들어 먹여 살렸다. 떠나시던 날에는 중풍으로 누워있던 병상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십자가를 떼어 들고 성당에 가서 그 십자가를 손에 꼭 잡은 채 성로신공(십자가의 길)을 다 했고, 때마침 기도하고 있던 나이 든 사제에게 다시 한 번 총고해를 한 후 집에 와 저녁을 잘 들고, 그날 밤에 조용히 돌아가셨다.


임희택 알렉산데르 신부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심순덕 시인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의 내용 일부이다.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찬 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 ……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 아! /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쫓겨나 배도 고프고 무섭기도 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먹을 것을 찾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 살며시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내밀어보니 어머니가 방문 앞에 빵을 사다 놓았다. 난 그날 ‘눈물 젖은 빵 맛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그 빵을 먹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느님과 같은 맘으로 날 사랑하고, 하느님처럼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지만 나의 작은 사랑과 관심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리라.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의 ‘강림공소 팔남매 이야기’

부모님은 저희를 엄격하게 키우셨다. 반찬투정을 하거나 동생이나 형과 싸우다가는 “너는 내 아들 아니다. 당장 나가라!”는 어머니의 매서운 말씀을 들으며 쫓겨났다. 쫓겨난 아들은 골목을 서성대다가 어머니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가만히 솥뚜껑을 열어 보면 따뜻한 밥이 한 그릇 담겨 있었다. 그 밥은 물론 어머니가 밖에 쫓겨난 아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었다. 엄마는 올해 93세로 치매를 앓고 있는데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한테 배운 기도만 기억하고 있다. 오늘 이 기도를 잊으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적는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아침·저녁 기도와 식사 전·후 기도를 모두 이 기도로 바치신다. 사제성소도 부모님의 믿음과 기도 덕분이 아닌가 싶다.


김강정 시몬 신부의 ‘피에타 상의 성모님처럼’

사제직을 포기하려고 술에 절어 만취상태로 집으로 돌아와 울고 또 울었다. 엄마는 나를 가슴에 끌어안고 말없이 등을 쓸어주었다. 마치 피에타 상의 성모님처럼….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왔더니 안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무릎을 꿇고 양팔을 든 채 묵주기도를 바치며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엄마는 눈물의 밤 기도를 봉헌하고 있었다. 어쩌면 몹쓸 아들을 위해 평생 저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오세민 루도비코 신부의 ‘어머니가 주신 선물 보따리’

사제품을 받고 첫 부임지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내게 사제수품 선물이라며 보따리 하나를 건넸다. 임지에 가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풀어보라고 하셨다. 그 선물 보따리를 풀어본 나는 어머니의 깊고 깊은 사랑에 목이 메어 한참을 울었다. 그 보따리 안에는 장롱 깊숙이 차곡차곡 보관해 두었던 내 갓난아기 적 배냇저고리들과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당신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책을 읽고 나서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불현듯 어머니가 그립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하숙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러 보따리를 들고 40리 길을 걸어서 하숙집에 오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직장을 가지고도 연락을 하면 엄마는 늘 고샅길에 나와 계셨다. 힘 빠진 주먹으로 아들의 가슴을 치던 머리가 허옇던 어머니! 그리고는 국수와 묵을 내오셨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다. 어느 어머니인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다르랴마는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은 그 사랑을 가슴에 묻는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김수환 추기경 외 17명의 사제, 생활성서 펴냄

[월간 빛, 2015년 1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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