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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물처럼 살라하네 - 겸손, 비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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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1 ㅣ No.245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물처럼 살라하네.” - 겸손, 비움의 미학

 

 

이른바 ‘갑질’ 논란이 최근 우리나라에 큰 화젯거리입니다. 부와 권력을 거머쥔 사회 상류층, 이른바 갑(甲)의 횡포에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상처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땅콩 회항 사건’, ‘백화점 모녀 주차장 갑질 사건’ 등 많은 사건이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갑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새로 만들어진 말이지요. 인터넷 검색창에 ‘갑질’이라고 입력해 보니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상류층의 사람들이 그보다 못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괴롭히는 모습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고 온유한 어른이 참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런 어른이 더 그리워지는 시절입니다.


『효경(孝經)』에서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지위가 높아도 위태롭지 않다. 절제하고 아껴 삼가 법도에 맞게 하면, 가득 차더라도 넘치지 않는다.”1)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최고의 미덕은 ‘겸손(謙遜)’입니다. 겸손이란 스스로 낮춘다는 뜻입니다. 특히 동양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하더라도 겸손하지 않으면 그 인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을수록 더 요구되는 덕이 바로 겸손과 절제입니다. 옛 성현들은 자연 속에서 이런 겸손을 배웠습니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행동하면 어디에 처(處)하든지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지요. 도가(道家)의 노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덕을 물(水)에서 찾았는데요, 물에 관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바로 『노자(老子)』 8장에 나옵니다.

“가장 선한 사람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그들과 다투지 않으며, 주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2)

노자는 물을 겸손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물은 낮은 곳에 처하기 때문에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 공을 다투지 않아 경지가 도(道)에 가깝습니다. 저는 옛날에 혼자 섬진강을 자주 찾곤 했습니다. 지리산을 감싸고 남해로 흘러 내려가는 강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을 낮추어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물의 ‘자기 낮춤’의 미덕을 생각하게 됩니다. 물은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더럽고 오염된 것을 깨끗이 씻어주는 역할도 하지요. 노자 사상의 저변에 흐르는 중요한 덕은 이 물과 같은 겸손입니다. 물처럼 자신을 낮추어 다른 이들과 경쟁하지 않고 남보다 앞서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천하를 자기보다 앞세우는 겸손의 덕을 강조합니다. 남보다 낮추려는 노력, 하지만 그건 결국 남보다 높아지게 되는 비결이지요. 또 다른 곳에서 노자는 자신이 평생동안 간직한 중요한 보물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그것을 간직하고 보존하나니, 첫째는 자애요, 둘째는 검소(절제)요, 셋째는 감히 천하보다 앞서지 않는 것(겸손)이다.”3)

자애로운 마음(慈)은 어짊(仁)과 같고, 검소함은 절제, 의로움(義)과 통합니다. 그리고 천하보다 앞서지 않는 겸손은 바로 예의(禮)와 지혜(智)입니다. 그러고 보니 노자가 말한 세 가지 보물은 결국 인의예지(仁義禮智)와도 통하는군요. 이 네 가지 덕은 모두 우리 마음 안에 이미 갖춰져 있는 것이라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지요? 그럼 결국 그 보물이라는 것은 내 안에 갖춰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잘 간직하고 보존하기만 하면 되겠군요. 사실 예수님께서도 항상 우리에게 강조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10, 43-44)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 4-5)

이쯤되면 겸손, ‘자기 낮춤’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은 결코 자신이 못났다거나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가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존감,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결코 겸손할 수 없습니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비굴하게 굴복하는 행위일 뿐이지요. 내가 정말 소중한 존재임을 안다면 내 마음은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타인을 받아들이고 먼저 배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모범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예수님을 대지(大地)에 비유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대지는 겸허합니다. /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내려 서 있습니다. / 사람들의 발아래 있고 짓밟힙니다. /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썩고 죽은 것까지 받아들입니다. / 그리하여 대지는 부패와 죽음을 극복하고 이를 오히려 밑거름으로 삼아 새로운 생명을 낳습니다. / 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도 좀 더 겸손해집시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약한 어린아이처럼, 발아래 처하는 대지(大地)처럼, 그리고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물(水)처럼 겸손해집시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내려 갈 때,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높이 들어 올려질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랑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1) 『효경(孝經)』, 3장. “在上不驕, 高而不危. 制節謹度, 滿而不溢.”
2) 『노자(老子)』, 8장.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3) 『노자(老子)』, 67장.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15년 3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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