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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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성막, 함께 움직이는 하느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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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19 ㅣ No.842

[건축칼럼] 성막, 함께 움직이는 하느님의 집

 

 

백성과 함께 움직인 성막.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지어 바칠 수 있는 집이 어디 있느냐?’”(이사 66,1) 이런 하느님께서 광야를 지나는 당신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려고 당신이 머무시는 성막(聖幕)을 지으라 하십니다. 이렇게 성막은 하느님께서 계획하고 지으신 집이지,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도록 사람이 지어 바친 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아주 구체적으로 지시하시며 당신이 머물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탈출 25-31장) 지시하신 순서는 오늘날 건축물을 설계하는 순서와도 대략 일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현존을 나타내는 계약 궤, 제사상, 등잔대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천막을 짓는 재료와 크기, 색깔, 연결하는 방법을 일러주십니다. 내부 공간에 쓸 목제품과 휘장, 제단, 외부 공간인 성막 뜰, 조명 설비인 등불 등도 말씀하십니다. 또한 시공자인 성막 제조 기술자도 정해주셨습니다.

 

특히 탈출기 26장은 성막을 어떻게 지을지를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수치가 계속 나와 평면도를 머릿속에 그리지 않고는 어디를 말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부분이 말하는 요점은 성막에 쓰일 천과 나무의 폭과 너비를 반복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이동할 때 해체하여 일정하게 포개서 운반할 뿐만 아니라, 장소를 옮겨 다른 곳에도 같은 방법으로 세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기물들도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게 고리와 채를 두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성막은 이동용 성전이었습니다. 백성이 움직이면 하느님의 집인 성막도 움직이고, 백성이 멈추면 성막도 멈추었습니다. 멈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성막을 한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살았습니다. 성막 앞에는 이스라엘 백성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뜰이 있습니다. 성막 안은 사제가 들어가는 성소, 대사제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로 나뉩니다. 오늘날의 성당은 이와 같은 성막의 공간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성막은 영어로 ‘태버내클(tabernacle)’입니다. 성체를 모시는 감실과 영어 표현이 같습니다. 이는 히브리 말로 미쉬칸(mishkan)이라 하는데, ‘거주하는 곳(dwelling place)’이라는 뜻입니다. 거주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집 짓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나 계셔서 어떤 장소에도 얽매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려고 사람이 사는 것과 같은 집을 지으셨습니다. 그만큼 집이란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는 성당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당은 하느님께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지나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려고 지으시는 집, “내가 그들 가운데에 머물겠다.”(탈출 25,8)라며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시려고 지으시는 집입니다.

 

[2022년 3월 20일 사순 제3주일 서울주보 7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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