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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명작 속 하느님: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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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14 ㅣ No.240

허연 기자의 명작 속 하느님 (4) 좁은 문 - 앙드레 지드



신성함은 의무 아닌 기쁨

 

“신성함이란 결코 비싸게 치러야 할 의무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찾아야 할 기쁨인 것이다.”

신과 가까워지거나 영성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1869~1951)가 쓴 <좁은 문>은 지드가 3년에 걸쳐 수없이 포기와 재시도를 거듭한 끝에 탄생시킨 작품이다. <좁은 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지드에게는 비난과 찬사가 동시 쏟아졌다. 비난하는 쪽은 신성을 모독했다고 몰아세웠고, 찬사를 보내는 편은 종교의 구태를 벗겨냈다는 평가를 내렸다.

<좁은 문>은 주인공 제롬과 두 살 위 사촌인 알리샤와의 관계를 통해 신과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윈 제롬은 두 명의 외사촌 알리샤와 줄리엣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알리샤는 정숙한 반면 줄리엣은 활발한 성격을 지닌 소녀였다. 언니 알리샤는 어머니의 불륜을 알게 된 이후 그 트라우마 때문에 과도하게 신앙에 집착한다.

어느 주일미사 때 제롬과 알리샤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강론을 듣게 된다. 강론은 신약성경 마태오복음 7장 13에서 14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이 구절은 제롬과 알리샤의 전 생애를 좌우하는 화두가 된다. 알리샤를 사랑한 제롬은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넘어 하나님의 길에 이르듯 노력한다면 알리샤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으리라 믿는다. 제롬은 알리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알리샤는 받아주지 않는다.

얼마 후 군에 입대한 제롬이 사랑의 편지를 보내자 알리샤는 사랑의 답장을 보낸다. 하지만 그 사랑은 편지 속에서만 가능할 뿐 실제로 만나면 알리샤의 태도는 예전과 변함이 없다.

알리샤는 늘 결혼하자는 제롬에게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며 청혼을 거절한다. 알리샤는 스스로 지상의 사랑을 버리고 ‘좁은 문’을 거쳐 영적 행복에 이르는 길을 걸으려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알리샤는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고 제롬은 그녀의 일기를 보게 된다. 일기에는 “하느님이시여, 다시 한 번 그분(제롬)을 만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라는 글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죽음 직전까지 ‘좁은 문’을 통과하려고 했으면서도 제롬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알리샤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 일기장을 건네받은 제롬은 평생토록 그녀를 가슴에 품은 채 홀로 살아간다.


봉건적 종교관에 대한 의문

유려한 문장과 당시로서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쓰여진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종교적 윤리와 그것의 정당성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깔려 있다. 이 소설이 나온 20세기 초는 기존의 전통적 종교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반목과 충돌이 극심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인간의 개성이라는 두 개의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었다. 인간의 본성과 본능 그리고 인간의 자유라는 새로운 조류가 유럽에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좁은 문>의 저자 앙드레 지드 역시 당시 유럽의 여느 가정에서처럼 엄격한 청교도식 교육을 받고 자란다. 하지만 명민했던 지드는 청교도식 교육에 의문을 던지며 새로운 가치관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바로 소설 <좁은 문>을 탄생시키는 동력이 된다.

지드는 이 소설을 집필하고 나서 “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야기는 왜 아름답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만약 제롬과 알리샤가 부르주아 집안의 자제들이 아니었다면, 그리하여 봉건적 억압으로부터 좀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제롬과 알리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과연 신이 원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물론 작품 속에서 지드는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는다. 그는 알레고리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품을 읽으며 그가 하고 싶어했던 말을 깨닫게 된다. 지드는 제롬과 알리샤의 사랑을 방해하는 그릇된 종교관이 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임을 말하고자 한 그의 의도를 느끼게 된다.

이 소설에 대한 논란이 격심했을 때에도 지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좁은 문>의 서문에 “이 책을 통해 나 개인의 의견을 찾으려 하면 길을 잃게 마련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말할 계제가 아니다. 내 역할은 독자로 하여금 성찰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이 ‘풍자’와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당시 부르주아들의 생활과 도덕의 모순을 드러내고, 그것에 일침을 가하는 것은 깨어 있는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지드는 순응만을 강요하는 종교적 독단에 반기를 들고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개인을 꿈꿨다.


진정한 성스러움은 인간의 삶을 인정하는 것

이러한 측면에서 지드가 비판하는 대상은 알리샤이다. 당시의 관념상 영웅주의적 죽음으로까지 이해될 수 있는 그녀의 죽음은 <좁은 문>이라는 소설 안에서는 불필요한 오만으로까지 읽힌다.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그녀의 편지는 정신적이며 신성하고 순결하지만 사실 그것은 모두 지나친 것이며 그녀의 선택은 고통과 비애만을 불러올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신이 원하는 죽음도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모두를 슬프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지드는 알리샤의 교조적 종교인식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은 절대 조롱이나 조소가 아니다. 그것의 본바탕에 바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사실 앙드레 지드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다. 자신과 사촌 누이이자 아내인 마들렌의 이야기를 소설에 차용한 것이다. 비극으로 끝난 결말을 제외한 도입부의 이야기와 편지들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의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풍자와 비판의 시작은 작가가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재발견한 종교적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진정한 성스러움이란 현실적 삶을 경멸하지 않으며, 인간적인 사랑을 무시하지도 않는 것이다. 진정한 신비주의자란 세상의 모든 것이 신성한 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리샤는 천상에 대한 동경보다는, 지상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드가 비판하는 알리샤의 또 다른 오류는 고통과 비애에 대한 갈망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욕망을 스스로 박탈하는 기이한 염원을 지니고 있는데. 이 염원은 그녀에게 있어서 정신적 삶의 원칙이며 종착점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알리샤의 실패한 삶을 통해, 신성함이란 결코 비싸게 치러야 할 의무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찾아야 할 기쁨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결국 알리샤가 헛되이 찾으려 했던 신성함이란 인간적 사랑을 통해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의지적이고 금욕적이어서 진정한 성스러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

작가는 금욕을 통해 영혼의 결합과 신을 향해 나아가는 길, 즉 ‘좁은 문’ 앞에 두 주인공을 서게 만들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을 보여 주면서 봉건적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비판하고 있다.

노련한 이야기꾼인 작가는 완전한 사랑을 향해 나아가려고 애쓰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묻는 것이다.


앙드레 지드 자신의 이야기

지드는 1869년 11월 22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청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1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더욱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세 때부터 문학에 빠지면서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가치관에 눈을 뜨게 된다. 평생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사촌 누나 마들렌은 그에게 예술혼을 유발시키는 평생의 동반자였다.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것은 1893년의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아프리카의 작렬하는 태양과 야성적 풍토는 지금까지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엄격한 중세적 윤리에서의 해방을 가능하게 했다.

1894년 어머니가 죽자 앙드레 지드는 첫사랑이었던 마들렌과 결혼을 하고 영향력 있는 문학평론지 <누벨 르뷔 프랑세즈>를 창간하면서 프랑스 문단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었다.

[평신도, 2014년 겨울호(VOL.46), 허연 바오로(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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