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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나요? - 이익을 버리고 인의를 택한 성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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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09 ㅣ No.247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나요?”

- 이익을 버리고 인의를 택한 성현들

 

 

“수난기약 다다르니, 주 예수 산에 가시어~.” 사순시기에는 미사 전 입당 성가만 들어도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가 많습니다. 사순 성가의 애절한 노랫말 때문인지 장엄한 멜로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유독 사순시기의 성가는 우리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나 봅니다. 특히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죽음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 자체가 하나의 ‘십자가의 길’이어서 사순시기가 더 깊이 와 닿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사순시기에 그대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자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퇴역 군인으로 64세에 무당의 딸인 17세 소녀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공자가 태어났지요. 그리고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공자는 어머니와 단 둘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열일곱 살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어요. 가난하고 부모도 없는 열일곱 살의 청년 공자는 홀로 일어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배움에 뜻을 두고 열심히 노력했지요. 온갖 비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공자 스스로도 자신은 젊었을 때 미천했기 때문에 할 줄 아는 천한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런 공자가 노나라의 작은 관직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잘해 노나라의 힘도 강해졌고 이 시기에 제자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노나라의 군주와 실권자들이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에 공자는 미련없이 재상의 자리를 버리고 노나라를 떠납니다. 그의 나이 55세였습니다. 그때부터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14년 동안 7개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뜻을 받아줄 군주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 유명한 “주유열국(周遊列國)”의 시기였지요.

사실 공자가 편한 길을 택했다면 재상의 자리에서 적당히 타협하면서 편하게 부를 누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는 이익(利)을 택하지 않고 평생 자신이 추구한 인의(仁義)를 선택했습니다. 68세가 되어서야 늙은 몸을 이끌고 공자는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이익을 추구하는 길과 인의를 따르는 길 가운데서 공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길을 버리고 인의를 따르는 길을 갔습니다. 공자 이후, 이익을 버리고 인의를 택하는 삶은 그의 뒤를 따르는 모든 유학자가 가야 할 길이 되었습니다. 맹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책 『맹자』의 첫 대목은 이와 같습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니 왕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오셨으니, 장차 내 나라에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대답했다. “왕은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1)

그 유명한 맹자라는 선생님이 자기 나라를 방문한다고 하니 왕이 기쁜 마음으로 나가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자기 나라를 찾아 주셨으니 얼마나 큰 이익이 있겠냐?’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맹자의 대답은 단호했지요. “왕께선 왜 하필이면 이익을 이야기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진 마음과 의로움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나라의 왕이 이익을 추구하면 그 밑의 대부도 이익만 좇으며, 그러면 그 밑의 하급 관리와 서민들도 모두 이익만 좇으며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나라 전체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2천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있게 와 닿는 내용입니다. 국가는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며, 기업은 기업의 이익만 따지고, 국민은 각자와 자기 집안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에 시달려야 하지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우리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경쟁에 내몰리며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익을 얻는 만큼 행복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안연(顔淵)이라는 제자입니다. 그는 정말 가난하게 살았지만 개의치 않고 학문을 배우고 덕을 실천하는 데 큰 기쁨을 느끼며 잠시도 소홀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스승인 공자보다 먼저 죽었죠.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연이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이겨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仁)을 행하는 것이다.”2)

공자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핵심은 어진 마음, 즉 인(仁)입니다. 하지만 그 인에 대해서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제자 안연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인이 무엇인지는 직접 가르쳐 주지 않고, ‘인을 행하는 것(爲仁)’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극기복례가 바로 인을 행하는 것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를 이겨 예를 회복한다.’ 즉 공자는 자신의 욕심, 아집, 이기심 등을 이겨내어 자기 안에 있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 양보하고 겸손하며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는 예(禮)를 다시 살리는 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무조건 자기를 억누르고 억지로 예를 차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안에 있는 본래의 선한 마음,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신을 단단히 싸고 있는 껍질 같은 이기심을 극복하고 깨부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누누이 당부하신 말씀과도 같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 24)

안연은 스승의 가르침을 들으면 바로 그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머리로만 알고 넘어가지 않고 직접 몸으로 실천해야 진정으로 그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체득(體得)’했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삶을 살 때 비로소 우리는 체득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복된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를 버리고 내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걸어갑시다. 이익을 추구하는 삶의 길이 아니라, 그런 욕심을 버리고 올바른 가치를 찾아 나가는 길을 걸어갑시다. 하지만 이 길은 결코 외롭고 힘든 길만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앞서 걸어가셨고, 주위의 많은 이가 함께 걸어가는 길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너무 험하고 고달프고 외롭더라도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같은 길을 가는 동료, 이웃들과 함께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시다.

1)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상, 1장. 孟子見梁惠王. 王曰, “ ! 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2) 『논어(論語)』, 안연(顔淵) 12편, 1장.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15년 4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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