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연중 25 주간 금요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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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9-25 ㅣ No.499

연중 25 주간 금요일 - 홀수 해

 

        하깨 1,15ㄴ-2,9       루가 9,18-22

    2003. 9. 26.

주제 : 하느님은 내게 있어 누구이신가?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하고 삽니다.  사람이 질문과 응답을 통해서 아는 것을 더 확장시켜나가고 세상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질문을 하고 응답을 얻기는 하지만, 내 귀에 들려오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리켜 질문자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질문을 하기는 하되 어떤 것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소리이고, 그 말은 내가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겠다는 소리입니다.

 

삶에서 느끼는 이러한 전제들을 두고 판단하면,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질문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응답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만족할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페르샤 황제 다리우스의 칙령으로 해방이 선포된 다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백성의 지도자들은 실망하기 딱 좋은 만큼이었던 듯 합니다.  그런 현실에 낙담하고 있었을 지도자들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선포합니다.  실망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굳건히 하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 증거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힘의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은 많은 실망과 낙담 가운데 삽니다.  낙담과 실망의 자세를 갖는다면 그 안에 하느님이 함께할 공간이 없다는 소리를 하기는 쉽지만 그 마음과 자세를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는 올바른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지 궁금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질문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어떻게 대답하든지 그것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는 대답을 판단하는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응답하는 모양에 따라 내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순간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하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응답할까요?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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