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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42: 신비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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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07 ㅣ No.776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42) 신비신학자들

하느님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여정은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기도 중에서나 아니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하느님을 체험하는 순간을 기대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신비체험이란 아직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영혼이 하느님 은총 속에서 어느 순간에 잠시나마 하느님과 하나되는 체험을 일컫는 말입니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이러한 체험은 끊임없이 발생했고, 어떤 이는 투박하게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하거나 아예 감추려고도 했습니다. 때로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체계를 갖춰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하는 신학자들도 많았습니다.

고대와 중세에는 신비체험의 순간을 짐작할 수 있는 신비체험가의 고백보다는 상대적으로 이론을 곁들인 신비신학자의 설명이 더 많았습니다. 첫 번째 유형의 신비신학자들은 ‘본질-신비사상’이라는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인간 영혼이 원래 이데아계인 신의 영역에서 유래했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성질이 같은 물체끼리는 쉽게 합쳐질 수 있다는 특성에 착안해 본질이 같거나 거의 유사한 신과 인간 영혼은 서로 결합하려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영적 상승의 여정을 통해 신비체험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 세계 공의회를 통해 믿을 교리가 확정돼 선포되기 이전에 나온 이론이어서 창조주 하느님과 피조물 인간 영혼의 본질이 똑같을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결정적인 오류를 지닌 주장이었습니다. 중세에 이런 오류를 보완해 다시 설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으로 여겨졌습니다. 고대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와 중세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이러한 이론을 전개한 대표적인 학자들입니다.

두 번째 유형의 신비신학자들은 ‘부정신학(否定神學)적 신비사상’이라는 이론을 펼쳤습니다. 인간의 지성 능력으로는 하느님을 헤아릴 수 없다는 고대 유다인 철학자 필론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하느님을 알 수 없다는 ‘불가지성’(不可知性)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지성으로 다가가기보다는 굳은 신뢰와 믿음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대 교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모세의 일생을 통해 설명을 시도합니다. 즉, 인간 스스로 알 수 없었으나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느님을 끝까지 믿은 모세는 구름 속을 마다치 않고 시나이 산을 오르기 시작해 산 정상 어둠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 현존을 끝까지 믿었기에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대 말엽 저술가 위-디오니시우스도 ‘신비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긍정신학과 상징신학에 이어 부정신학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설명했고, 중세 말엽 익명의 저술가는 저서명을 아예 「무지의 구름」이라고까지 하면서 알 수 없는 하느님께 다가가는 영적 여정을 설명했습니다.

세 번째 유형의 신비신학자들은 ‘사랑-신비사상’이라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인 애덕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수덕 생활을 통해 발전하려 노력하는 모든 덕행의 최고 정점에 애덕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신 이타적인 사랑에 도달하여 애덕의 완성을 이루었을 때 신비체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인물 중에 드물게 고백록을 통해 자신의 신비체험을 언급했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중엽 신학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 등은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사랑의 단계를 구분하면서 영적 여정을 묘사했습니다. 이후 그리스도교 신비체험에서 애덕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주제가 됐습니다.

신비체험을 향한 여정이나 신비체험의 순간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기에 그동안 수없이 다양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공통점은 결국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적 여정은 존재하며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향한 영적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6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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