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즐길 준비 되셨나요? - 생명을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삶을 즐기는 경지로 나아가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16 ㅣ No.251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즐길 준비 되셨나요?”

- 생명을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삶을 즐기는 경지로 나아가기

 

 

오랜 중국 생활을 하며 제가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한국의 자연이었습니다. 푸르른 나무숲과 풀과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 있는 한국의 산이 그리웠죠.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는 거의 매주 산에 갔었습니다. 가까이 있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떠나 보니 그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지요. 산에 가면 평소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꽃과 나무의 변화가 확연히 눈에 들어옵니다. 겨우내 죽은 듯 마른 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잎이 무성해져 신록이 우거지고, 온갖 꽃이 철따라 피고 지기를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면 모든 살아 있는 것, 생명 자체가 참으로 경이롭고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동양철학에서도 우주의 기본 원리는 만물을 낳고 살리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주역(周易)』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만물을) 살리고 살리는 것을 일러 역(易)이라고 한다.”1) 아주 작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생명을 얻어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 살리는 것이 자연의 본성입니다. 그러니 자연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삶에 대한 예찬이 터져 나옵니다. 산다는 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 아름다운 삶을 충분히 즐기고 계신가요? 공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2)

공자는 무언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와 그것을 좋아하는 단계, 그리고 그 속에서 즐기는 단계를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일단 클래식 음악에 대해 배워 나갑니다. 관현악은 어떻고 작곡가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시대별로 어떤 사조가 유행하는지, 한 곡을 두고서도 지휘자와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곡 해석이 달라지는지 등 많은 것을 알아 가지요. 하지만 단순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을 쌓아 나가기만 하는 사람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 미치지 못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지식을 쌓아 나가는 것은 물론, 자주 음악을 듣고 연주회를 찾아다니며,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지휘자나 악단의 음악을 골라듣기도 하면서 마니아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에 미치지 못합니다. 좋아서 찾아다니며 음악을 듣던 단계를 넘어서면 이젠 그 음악에 푹 빠져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릅니다. 굳이 누구의 작품인지 언제 레코딩한 것인지 따지지 않고 그냥 일상 속에 클래식 음악이 녹아들지요. 우리말에는 ‘즐긴다’는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어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기도 했지만, 여기서 즐긴다는 것은 그 속에서 혼연히 하나 되어 즐거워하는 경지입니다.

우리네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알아 가고 신앙을 배워 나가는 경지에서 더 나아가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신앙생활을 좋아해서 기쁘게 봉사하며 사는 경지에 이릅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노닐며 나에게 주어진 삶을 기쁘게 즐기는 것은 얼마나 높은 경지인지 모릅니다. 성무일도 기도를 하다 보면 유독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표현이 있지요.

“주께서 당신 백성의 귀양을 풀어 주실 그때, 야곱이 춤을 추리라 이스라엘이 봄놀으리라.”(시편 14,7)

이 구절은 돌아가신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인데요. 새 성경의 번역문보다 시인 신부님의 감성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봄놀다’라는 표현은 ‘뛰놀다’의 옛말이지요. 그런데 말이 참 재미있어요. 예전에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여인들이 일 년에 하루쯤 봄놀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봄놀다’ 라고 표현했답니다. 봄나들이를 나와 꽃구경도 하고 기뻐 뛰어노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지금 귀양살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주님의 사랑 안에서 자유로운데, 삶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부족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때로 삶의 현실이 팍팍하고 고생스럽더라도, 병의 고통 중에 있다 하더라도, 이별의 슬픔에 아파하더라도 우리는 살아 있잖아요. 하느님께서 주신 이 생명을 누리고 있잖아요. 그러니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이 공기를 마시고, 이 자연 속에 살아감에 봄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에게는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의 경지가 있으니까요. 하느님과 맞닿을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삶을 제대로 알고 삶을 좋아하는 단계를 지나 삶을 즐길 수 있는 경지가 되어야겠지요.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의 절대 경지를 노래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장자(莊子)입니다. 그는 주로 우화를 이용하여 자기 사상을 풀어갔는데, 책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혜자(惠子)가 양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가 그를 찾아 양나라에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가 혜자에게, ‘장자가 와서 당신 재상 자리를 노린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혜자는 두려워 사흘 동안 장자를 찾아 온 나라를 뒤졌습니다. (이 사실을 안) 장자가 혜자를 찾아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남쪽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이름이 원추라고 합니다. 당신은 그걸 아시오? 이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가지만,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와 앉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으며, 감로수가 아니면 마시지 않소. 그런데 여기 썩은 쥐를 얻은 올빼미가 있다가 원추가 지나가니까 혹 쥐를 빼앗길까 싶어 위를 올려다보며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거요. 지금 당신도 양나라 벼슬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워 내게 꽥 하고 소리를 지를 건가요?’”3)

‘원추’라는 이름의 새는 봉황의 일종입니다. 높은 이상을 지니고 절대 자유의 경지를 노니는 봉황이 썩은 쥐를 탐할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세상에서 아등바등하며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이들은 누구에게 그걸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데 바빠서, 눈앞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해서 원래 지니고 있던 자유로움을 많이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봉황처럼 하늘 높이 훨훨 날며 삶을 즐기던 방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요?

5월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죠. 성모 성월이며 전례력으로는 부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고요. 봄도 무르익어 자연도 가장 아름다운 때입니다. 꽃들도 화려하게 피고 나무도 신록을 더해 갑니다. 부활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여신 예수님과 더불어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 6)

주님은 생명을 주신 분이시며 영원한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영원을 내다보며, 지금의 삶을 기쁘게 즐겨야 하겠습니다.

1) 『주역(周易)』, 〈계사전 上〉, 5장. “生生之謂易.”
2) 『논어(論語)』, 〈옹야(雍也)〉, 18장.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3) 『장자(莊子)』, 〈추수(秋水)〉, 17장.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15년 5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2,80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