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그래, 사는 거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16 ㅣ No.252

[신심서적 다시 읽기] 그래, 사는 거다!



《그래, 사는 거다!》는 ‘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사제로 산다는 것’ 등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씩 자기의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끔은 고민한 적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삶 주변에는 훌륭한 분들이 적지 않다. 회자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를 위해서 산 사람들이 아니고 남을 위해서 자기를 던진 사람들이 아니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의 이유를 더 깊이 묵상을 하게 된다. 결국 ‘신앙인의 일생이라는 것은 외롭고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을지라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내어주는 삶’임을 깨친다. 몇 가지 묵상자료를 정리해 본다.

하나. 사랑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생활에서 자주 입에 올리는 단어가 ‘사랑’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개념이야 쓰임에 따라서 조금은 다르겠지만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가족사랑, 남녀 간의 사랑, 자연 사랑 등 가볍지 아니한 것들이다. 수도자의 얘기에 웃음을 짓게 한다. 아주 규율이 엄격한 수도원에 있는 요한 수사님의 얘기다. 수사님의 조그만 책상머리에 붙여놓은 아름다운 중년 여인의 사진을 보고 한 수도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마이 비러브드(my beloved, 사랑하는 여인)”라고 했단다. 수사님이 50대 중반을 지날 무렵 병으로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을 때 간호해 주던 간호사란다. 더 이상의 얘긴 듣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에 간 천사 같은 그 간호사를 잊지 못하고 사진을 걸어둔 아름다운 그런 감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때로는 스캔들처럼 보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사랑은 우리의 삶을 흔들어서 성장시키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지 아니한가?

둘. 나이 듦의 삶에 적응하는 길은? 우리 인생의 오전은 인간으로 성장하면서 외부 세계에 나아가 자리 잡고 활동하는 시기라면 인생의 오후는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소중한 기억과 내적보화를 발견하는 시기다. ‘정오에서 해질녘까지의 시간은 인생을 숙성시키고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자신의 것’이 되게 한다. 진정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도 젊음도 아니요, 바로 가슴 속 맑고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살아있는 감성,즉 좋은 글 한 줄 읽고도 행복해 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가슴 속 쌓인 이야기를 풀어보고, 달빛 밤하늘을 바라보듯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느님!’ 하고 부르며 기도하며 사는 일들이 우리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 아니하는가?

셋. 무엇을 청할까? 낡은 배낭에 쌀 한 봉지, 김치 한 통을 넣고 순교성인들의 신앙답사기인 ‘한국의 성지’를 손에 쥐고 ‘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싶어서!’ 한 달간의 긴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은 끝났지만 아무런 응답도, 영감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긴 여행은 피곤에 지친 몸과 실망스런 마음만을 안겨 주었다. 세월이 숱하게 흐른 지금, 하느님께서는 내 삶 속에 들어와 구체적으로 이끌어 주심을 알았다. 길을 잃으면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 길을 안내 받았고, 추위와 허기에 지쳐 있을 때면 따뜻한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침묵의 하느님은 묵묵히 제 삶 속에서 하나하나 응답해 주고 계셨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긴 겨울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지 않으려 한다. 그저 어디에도 미련을 두지 않는 가난한 순례자의 삶을 사는 그런 사제가 되길 청하겠다고 했다. 우리 신앙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가당치도 않은 것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넷. ‘걷는다.’는 것의 의미는? ‘사려니’는 ‘살안이’, ‘솔안이’에서 온 말로 ‘신성한 곳’을 말한다. 사려니 숲길은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신령한 느낌을 주는 밀림이다. 올레길, 둘레길은 이동이나 운송 수단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걷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이런 길은 현대인의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진정 걸어야 할 인생길을 걷도록 하는 데에 숨은 의미가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브르통의 ‘걷기예찬’에서 길을 걷는 것은 시선을 본래의 조건에서 해방시켜 공간 속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난 길을 찾아가게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을 깊이 음미해 보자.

다섯. 영성의 정상엔 무엇이 있을까? 산악인 허영호 씨가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 때의 순간의 느낌이다. “사투를 벌이며 올라간 정상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탁자만한 초라한 봉우리와 칼바람뿐이었다.”고 한다. 우리 영성의 산꼭대기는 어떨까? 온갖 사욕편정에 물든 자신의 욕망과 자존심과 이기심이 죽고, 마침내 자신의 전 존재가 십자가에 매달려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는 곳, 그 자리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영성의 최고봉이라면 과연 절대고독의 경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섯. 내 인생에서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는 것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평생 죽음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그는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단다. 죽음의 궁극적인 물음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삶의 끝자락에서 하느님께서는 ‘네가 선택한 삶이 옳았느냐?’가 아니고 ‘그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으신다. 사회학자 토니 캠폴로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루지 못한 업적을 바라보며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살고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고 하였다.
 
삶을 묵상하며 푸른 하늘을 본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에 가까이 가는 길이다. 우리가 만일 살아가는 이 삶의 의미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모든 활동도, 삶 자체도 공허와 죽음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도 예수님처럼 나를 전적으로 버리면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며 청해야 하지 않을까? - 《그래, 사는 거다!》 / 전원 신부 지음 / 바오로딸 펴냄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5년 5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2,39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