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세 가지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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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08 ㅣ No.1773

[다시 보는 세상] 세 가지 유혹

 

 

서른 살 청년 예수가 광야로 나섭니다. 머지않아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깨우는 사명을 따라 외롭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오해 받을 것이고, 배척 받을 것이며, 가까운 친구에게 조차 버림받아 결국은 목숨까지 내려놓아야 할 길이 그의 앞에 놓여있습니다. 그 길에 발을 내딛기 전 그는 자신의 마음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늘의 마음과 일치된 마음이라는 것을 굳게 믿지만, 연약한 인간의 심장을 가진 그 이기에, 자신에게 찾아 올 유혹들을 살피고 싶었을 것입니다. 오롯이 자신을 마주할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40일간 곡기를 끊었습니다. 정신은 명료하지만 몸은 허기질 터이지요. 첫 번째 유혹이 말을 겁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단순히 마술을 부려 주린 배를 채우라는 유혹이 아닙니다. 주어진 힘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유혹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어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허기지고 굶주린 유다의 백성들 앞에서 돌을 빵으로 만든다면, 그의 길에 사람들이 구름과 같이 모여 들어 환호할 테지요. 어쩌면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훨씬 쉽게 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앞에 빵을 보고 모여든 이들은 굶주림이 채워지면 돌아설 것입니다. 굶주리게 하는 원인을 찾지 않을 것이고, 굶주린 이웃들을 살피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이 일하는 방식이 아니지요. 예수는 답합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

 

유혹이 두 번째 말을 겁니다. “저 나라들의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게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이번에는 어떤 힘을 가질 것인가, 권력의 원천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관한 유혹입니다. 그는 유다의 민중들이 제국 로마의 압제에서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땅과 자유를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권력 중에 으뜸가는 권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권력을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면 되지 않는가! 달콤한 제안이지요. 그러나 예수는 고개를 젓습니다. 인간의 권력은 하느님의 힘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권력을 사용하여 소유하고 제압하는 것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비우고 나누고 낮아지는 것이 하느님의 방식이지요.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필리 2,6-8 참조)는 것을 청년 예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답합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유혹이 마지막 말을 겁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유혹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몸을 던지고 천사들이 그를 손으로 받쳐 떠올려 준다면 모든 이들이 그를 우러러 보며 두려워 할 것입니다. 그가 하느님께서 몸소 기름 부어 세운, 유대 민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예수는 기적을 통해 자신의 힘을 증명하여 하느님의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이 예수에게 비웃듯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영원히 공포에 떨게 할 권세 앞에 무릎 꿇는 노예들의 환희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랑을 열망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요란하고 웅장하고 위압적이어야 하지만, 사랑은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스며드는 것입니다. 권력은 입증되어야 하지만 사랑은 증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내어줌으로 상대를 변화하게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가 유혹에게 답합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예수가 광야에서 받은 유혹은 우리 모두가 힘을 갖게 될 때 직면하게 되는 보편적인 시험입니다. 직장 혹은 사람 관계에서 갖게 되는 일상의 권력이든, 정치권력이든, 종교 권력이든, 모든 권력에는 유혹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사랑의 길은 도무지 어렵고 힘들지만 권력은 언제나 쉬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헨리 나우웬이 이런 말을 했지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되는 것이 더 쉽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다스리는 것이 더 쉽다. 삶을 사랑하는 것보다 삶을 소유하는 것이 더 쉽다.”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청년 예수와 함께 광야에 나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힘을 무엇을 위해, 무엇에 원천을 두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유혹이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2022년 3월 6일 사순 제1주일 수원주보 4-5면, 조민아 마리아(조지타운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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