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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요한 23세 성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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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09 ㅣ No.254

[신심서적 다시 읽기] 요한 23세 성인 교황



요한 23세 교황은 엄청난 파괴와 대학살로 점철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도좌에 올랐다. 그는 전후 파시즘과 나치즘의 잔재를 치워야 했으며 공산주의와 냉전, 핵무기 경쟁,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에 대처해야 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소작인이어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풍년에만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가난한 농부, 조반니 론칼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소토 일 몬테의 농장에서부터 풍부한 자연에서 성장하였다. 그리고 안젤로 론칼리(교황)는 로마 출신도 아니었고, 교회 내 중추세력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그가 교황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실용적이고 친절한 인물이었으며 기도와 숨겨진 선행을 통해 형성된 지적이고 아이러니한 유머를 갖추고 있었다. 안젤로 론칼리가 요한 23세 교황으로 즉위할 때 교황직이 과도하고, 특별한 일없이 그저 지나가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교황은 뛰어난 직관력으로 교회의 미래상을 그렸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고 회칙 〈지상의 평화〉, 〈어머니요 스승〉, 〈하느님의 영원한 지혜〉, 〈인간의 구원〉 등을 발표하였다. 1962년 타임지가 요한 23세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지적인 사람도 아니고 전문적인 신학자도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개념으로 생각하기보다 기본적인 인간의 체험으로 다양하고 유별난 삶을 겪으면서 이러한 자신의 체험을 놀라울 정도로 자기 것으로 흡수했으며 종합했다.”고 그 이유를 들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몇 개의 회칙을 정리한다.


1. 회칙 : 〈어머니요 스승〉에서


이 회칙은 ‘보조성의 원리’를 재확인하고 ‘사회생활의 발전’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경제정의와 사회정의 문제에 관한 회칙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현시대에 상반되는 두 가지의 모순, 즉 극도의 빈곤과 기아로 인한 재화의 궁핍과 최근의 과학 기술의 진보와 경제 발전이 인류를 공포의 죽음과 파멸로 몰아가는 수단이 됨을 심각하게 지적한다. 또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고 한다.(248-253항) 사람은 그날(주일), 일상을 미루고 천상의 선익 추구에 정신을 써야 하며 하느님과 인간의 필연적인 불가침관계를 인식하기 위해 자신의 내밀한 양심성찰에 그날을 바쳐야 한다. 인간에게는 노동을 멈추고 휴식을 할 권리와 필요가 있다. 매일의 힘든 노동으로부터 육신을 쉬게 하고, 품위있는 오락으로 체력을 회복시켜야 할 뿐 아니라 자기 가정의 일치를 보살피기 위해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가족이 화목하고 평화로운 공동생활을 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 바로 가정의 일치다.


2. 회칙 : 〈지상의 평화〉에서

이 회칙은 요한 23세 교황의 여덟 번째, 그리고 마지막 회칙이다. 이 회칙은 질서와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을 본따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말한다. 이렇게 창조된 인간들 사이의 질서, 즉 세계평화를 위해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상의 평화 마지막 부분에서 교황님은 그의 형제자매들에게 평화를 지향할 것을 당부한다. “사실 개인들 안에 평화가 없다면, 곧 각자 자신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상의 평화>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감탄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청 사람들은 공의회 소집에 부정적이었다. 1962년 7월에 바티칸은 공의회에서 심의할 사람들에게 2,850장의 초청장을 보내고 10월 1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공의회 개막 일주일 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을 맞아 성인의 무덤과 로데토의 성모의 집을 들러 공의회가 성공적으로 열리길 기도하면서 “내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오늘”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교황은 미사전례에서 “교리의 통찰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하였고, 모든 이의 형제적 일치에 이르는 열쇠는 사랑과 자선”임을 강조하였다. 첫 회기가 끝났지만 전례, 교회 일치 운동의 범위, 진정한 평신도의 역할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 그 후 바오로 6세 교황의 지휘 아래 전례 등 8개 영역을 다루는 공의회로 거듭나게 된다.


4. 참으로 인간적인 교황

교황님은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수년간 불가리아와 파리 등에서 주재 외교관으로 생활하였다. 터키에서는 수많은 유다인의 집단수용소 이송을 지연시켰고 2만 4천명의 목숨도 구하였다. 파리연회에서는 무례하게 여자 누드사진을 내밀고 히죽히죽 웃는 남자에게 “사모님인가 보죠?”라는 유머로 응대하기도 했다. 요한 23세 교황님은 암 투병을 하시면서 비서인 카포빌라 몬시뇰에게 “주교답게, 교황답게 죽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했고 “자신이 어느 누구에게나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렸다. 임종 때 “나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죽을 때도 가난하게 죽을 수 있으니 매우 기쁘다.” 그리고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베드로 사도가 한 말)”라고 하셨다. 서거 후 38년 만인 2001년 6월 3일, 성 베드로 대성전 밑 지하실의 개장의식에서 관을 열었을 때 육신은 놀랄 만큼 부패되지 않았고 ‘온전하고 평화로운’ 얼굴이었으며 이 의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은총과 성덕이 일치함을 보여주는 표지”라고 하였다. 요한 23세 교황은 2000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그 지방의 언어로 그 지방의 문화적 특성을 지닌 미사가 집전된다. 우리는 50여 년이 지났어도 교황님의 손길을 미사에서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지 아니한가? 요한 23세 교황님은 겸손하고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강한 의지력, 개인적인 외교력 등을 통해 교회의 핵심적인 교리를 온전히 보존하면서 그가 사랑한 교회를 구했으며 교황이 남긴 포용과 개방이라는 유산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 조카에게 “십자가를 가리지 말라.”고 한 말씀이나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이 마지막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았으면 한다. - 《요한 23세 성인 교황》, 그렉 토빈 지음 / 허종열 옮김 / 가톨릭출판사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5년 6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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