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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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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14 ㅣ No.256

[신심서적 다시 읽기]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오후에 택배로 이 책을 받아 단숨에 읽었다. 참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교황님을 맞이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선출된 후 흰 제의를 그대로 입고, 모제타도 걸치지 않았고, 빨간색 구두도 신지 않았으며, 금제 가슴 십자가도 착용하지 않았고, 성좌에도 앉지 않았다. 어느 자리에 선출되면 걸맞은 예우를 받아들이는 게 상식이 아니랴? 전용 리무진도 타지 않고 동료 추기경들과 미니버스로 이동하시고, 소년원을 방문하여 발을 씻기고 그 발에 입을 맞추셨다. 칼 레만 추기경은 교황님의 모습을 보고 “가톨릭교회의 근본인 성경과 영성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라고 하였다. 


새 교황님은 인자한 개혁가다. 교황직 수락여부를 묻는 질문에 “저는 이런 일을 맡을 수 없을 만큼 큰 죄인이지만 하느님의 자비와 인내를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며 교황직을 수락합니다.” 그리고 가난과 청빈의 이름인 “프란치스코”를 선택하였다.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시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자들 앞에서 먼저 교황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하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발코니를 떠나면서 “…좋은 밤 되시고 편히 주무십시오!”라고 하셨다. 얼마나 정감이 있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소박한 말씀인가?

‘프란치스코’는 오랫동안 금기시하여 사용하지 않은 교황명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청빈과 평화의 수도자이자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보호하신 분이며 1224년에 ‘그리스도의 오상(五傷)’을 받은 분이다. 성인이 설립한 수도회는 극단적인 청빈의 정신을 수도회의 기본적인 토대로 삼았으며 주님의 겸손한 자세를 본받고자 소외받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 병마와 한센병으로 고통 받는 이, 죄인과 신앙이 없는 이들과 함께 하였다. 초기 수도회의 형제들은 회색 수도복에 허리띠 대신 밧줄을 둘렀고 대부분 맨발로 생활했다.

복음화에 대한 말씀을 새겨보자. 가톨릭교회는 “단 하나의 신앙과 단 하나의 성사생활과 단 하나의 사도적 계승, 그리고 단 하나의 공통 희망과 단 하나의 사랑을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매우 아름답고 명확한 정의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해준다. 가톨릭교회는 신앙과 희망과 사랑에서 단일성을 지니며 성사와 직무에서도 단일성을 지닌다. 교회는 우리 형제자매가 함께하는 집이며 가정이다. 복음화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사도적인 열성을 포함한다. 사도는 ‘파견된 사람’ ‘보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고 다음으로 복음을 선포하도록 그분에게 선택받고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분에 의해 파견된 사람들이다. 교회는 복음화를 위해 자기 자신 안에서 나와 죄와 고통, 불의, 종교적인 냉대와 배제, 사상, 온갖 비참한 현실 등으로 소외된 곳으로 나가도록 요청 받는다. 만일 교회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기중심적이 된다면 교회는 병들게 된다. 이는 예수님을 자기 안에 가두고 그분이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게 막아 버리는 꼴이다. 그래서 교황은 교회가 ‘복음화라는 감미롭고 위안을 주는 기쁨’으로 사는 풍요로운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다른 종교로 발을 돌리는 이유를 가톨릭 공동체나 성당에서 친절한 분위기를 거의 체험하지 못하고, 미사전례가 너무 길고 이해하기 어렵고, 일상생활의 고민을 안고 성당에 갔을 때 관공서와 같은 딱딱한 분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사제가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오지 않는 공소에서는 사제가 없을 때 남성 신자나 여성 신자가 ‘세례자’로 봉사하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세례를 준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닌 영성은 열린 마음과 실행력이 돋보임이 아닐까 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형제에게 해준 조언이다. “여러분, 복음을 선포하십시오. 만일 필요하다면, 말로도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그 증거로 복음을 선포하십시오.” 목자와 평신도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서 일치를 보이지 않는다면 말과 삶의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면 교회에 대한 신뢰는 약해지고 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의 행위를 정의하고 요약하는 세 가지 말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들었다. 실례한다고 허락을 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든 것을 넘어 뜨리면서 지나가고, 감사란 고귀한 영혼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므로 감사의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가치조차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은 교만이라는 최악의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며 용서를 구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용서는 사랑의 실천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새로운 교황님의 모습을 본다. 교황님은 콘클라베가 끝난 후에 교황궁에 들어가 살지 않고 성녀 마르타의 집에 있는 작은 스위트룸에서 지낸다. 성 베드로 광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교황궁을 둘러보며 “여기에 300명은 족히 들어가겠습니다.”라고 하셨다. 교황은 이 집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만난다. 바티칸에서 일하는 정원사와 미화원을 미사에 초대하기도 하고, 바티칸 직원들 옆에 앉아 개인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내가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립 한국신학원장인 김 신부는 “세상을 위로하는 양 냄새나는 목자”로,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는 하나의 강령”으로, 라이너 마리아 뵐키 추기경은 “교황님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로, 쿠르트 코흐 추기경은 “세계를 위한 비타민 주사”라고 하였다. 칼 레만 추기경은 “이제 교황님이 길을 나서는데 외로운 길이 되지 않도록 도와드려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 따라 우리도 하느님께 마음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비추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각오를 굳게 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신앙은 우리를 부르고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형성된다. 정말 교황님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위르겐 에이바허 지음|신동환 옮김|가톨릭출판사 펴냄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5년 7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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