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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인문학 강좌: 다문화와 인류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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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10 ㅣ No.257

[인문학 강좌] 다문화와 인류공동체

 

 

인간은 나면서부터 주위의 존재와 관계를 맺어가며 산다. 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끊임없이 접촉하는 가운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살거나 기이하고 깎아지른 기암절벽(奇岩絶壁)에 기거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관계적 존재인 것이다. 유다계 종교철학자인 마틴 부버는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 나와 그것의 종속적인 만남이 아니라 나와 너의 대등한 만남이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관계는 다른 존재를 마주 보는 일이고, 살아있는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며, 그를 실존하는 존재로 인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만남은 진솔한 대화로써 이루어지며, 그 대화는 인격을 나누는 행위인 것이다. 


교통과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세계화의 시대가 가속화되었다.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다양한 민족, 인종, 문화, 사상, 종교 등이 접촉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러한 낯설고 이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나와 다른 그러한 것들을 어떤 자리에 서서, 어떠한 관점으로 보고, 어떻게 이해하고자 하느냐에 있다.

사찰에 가면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신 대웅전,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대적광전, 관세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신 원통전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본전의 위쪽으로 산신, 독성, 칠성을 모신 전각을 종종 본다. 산신각은 그야말로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있던 토착신을 모신 곳이다. 독성각은 원래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스승의 도움 없이 홀로 깨달은 나반존자를 봉안한 곳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단군신앙과 결합되어 전승되어 온다. 또한 칠성각은 옛날부터 이 땅에서 수명과 장수를 관장한다고 믿어지던 칠성신을 받든 곳이다. 세 곳 모두 불교가 이 땅의 기존 문화와 결합한,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전각이다. 이는 불교가 4세기경에 이 땅에 들어와 기존의 토속신앙을 끌어안은 결과다. 토속신앙 숭앙계층을 자연스럽게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효과를 보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종교 · 사상이 다른 종교 · 사상을 만나 절충하는 형태를 습합(習合)이라 한다. 나와 다른 것을 배워 익혀서 하나로 아우른다는 뜻이다.

물론 불교가 습합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강제로 눌러서 이기고자 하는 압승(壓勝)의 형태를 띠기도 하였다. 강화의 석모도에 보문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다. 그 절 뒤편에 있는 눈썹바위에 석불을 새길 때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처음에 부처를 새길 때 정이 자꾸 구부러져 일이 진척되지 않았으며, 그 바위를 건드린 뒤로 심한 흉년이 들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경북 영일군 지행면에 있는 고석사의 석불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치성을 드리면 반드시 효험을 보던 바위에 부처를 새기자 피가 흘러내렸으며, 마침내 영험함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들은 불교가 압승의 형태를 띠자 토속신앙을 숭앙하던 계층이 반발한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장승을 톱으로 베어 버리고, 단군상을 훼손하는 세력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질적인 것과의 만남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도 외래종교라는 인식이 남아있는 가톨릭이 이 땅에 깊고도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깊이 이해하여 습합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소위 문화다원주의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문화와 상대의 문화를 대등하게 여긴다면 습합의 태도를 견지할 것이고, 자신의 문화를 상대의 문화보다 우월하게 인식한다면 압승의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겸손한 태도로 상대를 존중하고자 할 때, 낯설고 이질적인 상대의 것을 배워 익혀서 하나로 아우르고자 하는 습합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월감을 가지고 상대를 얕볼 때, 낯설고 이질적인 상대의 것은 미개하고 저급하므로 힘으로 제압해서 깨뜨려 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무렵에 프랑스의 한 여배우가 우리의 개장국 문화를 맹렬하게 비난하였던 경우를 들 수 있다. 애견의 차원을 떠나서 목축문화와 농경문화에서 개의 기능과 효용가치에 대한 차이를 무시한 채,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의 눈만으로 상대를 판단한 결과였다. 이러한 우월감 내지 우매함은 비단 음식문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과 첨단, 그리고 세대 간의 차이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 가능하다. 낯설고 이질적인 상대를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넓은 마음, 그리하여 하나로 아울러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큰마음이 있을 때,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합과 조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특수하고 제한적인 문화를 넘어 보편적이고 열린 문화를 만들고자 하였던 위인들도 있었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에서 내려와 자신이 누리고 있던 특권적인 문화를 만인에게 전파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불교의 원효 스님과 그리스도교의 바오로 사도가 바로 그러하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깨달은 바 있어 되돌아왔다. 그 뒤 스님은 요석 공주와 정을 통해 신라 십현(十賢)의 하나이자 이두를 집대성한 설총을 낳았다. 원효는 승복을 벗고 박과 같은 악기를 들고 다니며 길거리에서 무애가(無歌)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로 인해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하층민들까지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되었다. 당시의 귀족 불교가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불일(佛日)을 처음으로 빛나게 하였다는 뜻으로 원효(元曉)라고 자칭한 뜻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은 그런 원효를 거룩한 스님이라는 뜻으로 ‘성사(聖師)’라 칭하였다. 새 길을 연 분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던 것이다.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전에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사도가 되었다. 사울은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출신으로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 장차 유다교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었다. 그는 예수를 추종해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며 이탈하는 유다교 신도들을 체포하러 다녔다. 어느 날 청년대장으로 다마스쿠스에 모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던 사울은 강한 빛을 받고 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사흘간 앞을 볼 수 없었는데, 그때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는 예수의 말을 듣고 회심하였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전교여행길에 올라 유다계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보편종교로 나가는 길을 닦았던 것이다.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사도 9,15)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바오로라 개명한 이 사도가 아니었다면 이방인들이 어찌 하느님을 알 수 있었을까.

결국 원효 스님과 바오로 사도는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있어 어떠한 차별과 제약도 있을 수 없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였다. 이는 곧 문화다원주의의 발로이자 나아가 인류공동체에 대한 평등의식과 박애정신의 실천이었다. 가톨릭(Catholic)의 어의가 ‘보편적’이라는 점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는 오늘 타인과 타문화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견지에 서서 긍정적인 눈으로 바르게 보고 있는가. 타인과 타문화를 배워 익혀 하나로 아우르고자 하는 넓고도 큰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 나아가 민족, 인종, 문화, 사상, 종교 등을 초월하여 인류공동체에 대한 평등의식과 박애정신을 지니고 있는가를 돌아볼 시점이다.

[평신도, 2015년 여름호(VOL.48), 김문태 힐라리오(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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