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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서평: 중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최병욱 저, 경인문화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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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22 ㅣ No.1455

서평

 

『중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

최병욱 저, 경인문화사, 2020

 

 

중국 천주교사 연구의 정수가 담긴 반가운 신간

 

2020년 가을 출간된 최병욱 교수의 『중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는 저자가 그간 축적한 연구의 정수가 담긴 책이다. 천주교를 중심 주제로 다룬 제대로 된 국내 중국사 연구서를 찾아보기 힘든 근자에, 특히 개인적으로도 중국 천주교사를 공부하는 후배 연구자인 필자의 입장에서 본서의 출간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아편전쟁 이래 전개된 중국 근현대사의 흐름에서 서구열강과의 관계 속 소위 ‘종교의 자유’를 둘러싸고 일어난 여러 가지 역사적 쟁점들에 대해 그간 구체적으로 살피지 못하고 어렴풋이 이해하고만 있었는데, 이러한 지적 갈증을 이번에야 비로소 풀 수 있는 고마운 계기가 되었다. 학문적 깊이와 친절하고 명료한 문장 서술의 두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는 이번 책은 전문 학술 연구서로서 뿐만 아니라 중국 근현대사의 전개와 천주교 역사에 관심을 가진 모든 독자에게도 큰 지침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인접 전공인 근세 중국 천주교사를 공부하는 필자에게 이 책의 출간이 더욱 반가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이 책이 단순히 지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을 넘어 근현대 중국 천주교사 연구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집적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해 준 걸출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천주교사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다

 

생각건대 중국사 연구자로서 천주교사(‘천주교회사’가 아니라 ‘천주교사’임을 유의하라)를 다룬다고 한다면 대략 세 가지 차원의 연구 방향을 상정할 수 있다. 첫째, 제도사로서 협의의 교회사 연구이다. 주로 지역별 천주교회의 성립과 전개 양상을 살피고 특히 교계제도와 교구 설정 및 분화에 주요한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작게는 본당사와 교구사의 서술이 그렇고, 크게는 중국 천주교회사의 통사를 서술할 때에도 이 제도사로서 교회사라는 틀은 견고하게 유지된다.

 

둘째, 정치사 및 관계사적 맥락에서 천주교사를 다루는 연구이다. 외래종교로 중국에 전래된 천주교, 그리고 서양 선교사의 왕래를 연구 주제로 다루는 일은 필연적으로 중국-서양 간 정치적, 문화적 관계를 맺는 문제와 직결된다. 때문에 이러한 방향의 천주교사 연구는 근세에는 특히 동서교류사의 문제와, 근현대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과 뗄 수 없는 주제가 된다.

 

마지막 셋째는 사회사 및 사상사의 맥락에서 천주교사를 다룰 경우이다. 첫째 제도사 연구의 초점이 교회와 교구라는 조직의 진화에, 또 둘째가 중국과 서양이라는 양쪽 주체의 관계 맺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이 셋째 방향은 중심을 온전히 중국이라는 주체에 놓고 천주교사의 연구 주제를 다루는 것이다. 특히 중국 사회의 변화상을 가늠하는, 혹은 변화의 직접적인 기폭제 역할을 한 변수로서 천주교의 전래와 중국 내에서 나타난 사상적인 반향을 연구한다. 일찍이 폴 코헨(Paul A. Cohen)이 선언했던 ‘중국 자신에 입각한 접근법(China-centered approach)’을 천주교사 연구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학계의 중국 천주교사 연구는 이 세 연구 방향의 결합, 교섭, 길항을 통해 역사 분과에서 하나의 연구 영역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중국 근현대사의 중심 주제로서 천주교사 연구를 제시

 

최병욱의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결합과 교섭의 산물로서 제도사, 관계사, 사상사 영역을 넘나들며 망라하는 중국 천주교사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본문은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특하게도 각 편이 위의 세 연구 방향의 하나를 큰 줄기로 삼고 있다. 제1편은 정치사와 대외관계사의 맥락에서 프랑스의 선교 보호권과 중국의 천주교 정책을 다루고 있다(21~157쪽). 여기서 최병욱은 근현대 시기 프랑스가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가운데 주장한 선교 자유의 확대와 실현 과정을 차근차근 추적해가며 보여주고 있다. 먼저 프랑스 선교 보호권 확립의 독특한 양상은 루이 14세 때 포르투갈의 선교 관할권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 출신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제1장). 이후 19세기에 이르러 제1차 아편전쟁과 난징조약(1840), 황포조약(1845), 그리고 제2차 아편전쟁과 텐진조약(1858), 베이징조약(1860)으로 이어진 ‘조약의 시대’에 프랑스의 선교 자유 요구는 중국 사회의 개항과 금교령의 철회 국면을 맞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갔다. 여기에서 최병욱은 그간 프랑스 선교 보호권의 확대 양상에서 조명이 덜 되어 왔던 황포조약의 의미와 그 협상 주체인 라그르네와 기영의 주요한 역할에 주목하였다(제2장). 그리고 베이징조약으로 프랑스의 선교 보호권이 확립되는 국면에서 나름대로 냉철한 현실 인식과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고군분투했던 총리아문의 역할에 주목하였다(제3장).

 

제1편의 서술은 사실상 중국 근현대 시기 서구 열강의 침탈과 불평등조약 체결의 흐름을 차근차근히 짚어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청조 당국은 대체적으로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인식하는 전통적인 천주교 이해 방식을 고수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프랑스의 요구에 계속해서 넋 놓고 당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던 것도 아니었다. 최병욱은 청조 당국이 조약의 실효성과 문구 해석을 달리하는 등의 방식으로 프랑스의 선교지 확대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약을 거듭하면서 프랑스의 선교 자유 확대 압박에 청조는 호응할 수밖에 없었고, 결정적으로 베이징조약에서 부동산 조매권을 인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중국 내지에 천주교 선교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최병욱의 이러한 서사는 천주교사 연구가 중국사 연구의 주변적인 주제가 아니라 가장 중심을 이루는 연구 주제가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명말청초 예수회의 적응주의 유산을 계승한 근현대 중국 천주교회의 인물들

 

제2편은 중국 천주교 토착화를 위한 대화와 소통이라는 주제로 사상사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159~250쪽). 여기에서 최병욱은 오리엔탈리즘적 의식에 매몰된 대다수 서양 선교사들의 중국에서 활동과 확연히 다른 길을 걸었던 근대 중국 천주교사의 걸출한 세 인물을 조명하는 데 역점을 둔다. 바로 예수회 신부이자 민족주의자였던 마상백(제1장), 타자화된 그리스도교상을 타파하고 중국인으로 거듭난 선교사 뱅상 레브(제2장), 그리고 교황 사절로서 중국 천주교의 토착화에 힘썼던 첼소 코스탄티니(제3장)이다. 이들은 모두 근현대 중국 천주교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면서도 국내외 연구에서 비교적 덜 조명되어 왔다.

 

최병욱은 이들을 공통적으로 중국 천주교의 토착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로 규정한다. 사실 공교롭게도 세 인물은 교회 내에서 각각 매우 다른 입장에 놓여 있었고, 그만큼 정체성과 결이 달랐다. 마상백은 예수회 교육과 훈련을 받은 중국인 사제였고, 뱅상 레브는 벨기에 출신 선교사였으며, 이탈리아 출신에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코스탄티니는 근대 최초의 교황사절로 중국에 파견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중국인을 위한 중국의 종교로서 천주교가 중국 사회에 온전히 정착해야만 한다는 매우 강력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 세 인물에 대한 최병욱의 분석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들이 모두 명말청초 중국에서 활동했던 예수회 적응주의의 지적 유산을 계승하고자 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먼저 마상백은 그 자신이 명말 이래 천주교를 신앙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예수회의 교육과 수련을 받았던 점에서 태생적으로 예수회와의 인연이 깊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례논쟁의 국면 이래로 청초에 끊어져 버린 중국에서의 예수회 적응주의 선교 노선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실천하였다는 데에 있었다. 1897년 마상백은 마테오 리치, 서광계, 아담 샬, 페르비스트를 다루는 네 편의 글을 연속해서 발표하는데, 최병욱은 이를 마상백의 천주교 토착화 노력의 서막을 알리는 것으로 평하고 있다. 또한 최병욱은 마상백이 중국과 서양의 사상적인 소통을 위해 유가 문화를 근본으로 천주교를 전파하고자 했던 리치 이하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유역불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음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천주교를 서양의 종교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에 융합되어 중국 고유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비록 예수회와의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근세 예수회 적응주의 노선을 계승하는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뱅상 레브 또한 마상백 못지않았다. 최병욱은 중국 사회의 유가 지식인들과 대화와 소통을 배제하고 그저 가난한 이의 종교를 표방하면서 고립되어 간 중국 천주교회의 현실을 타파하고 그 자신이 평생 동안 진정한 중국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보여주었던 레브 신부의 노력에 주목하였다. 우선 레브 신부는 당시 중국에서 활동한 다른 선교사들이 관리나 엘리트들과의 지적 교류에 소극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중국인 관리와 상류층 인사와 접촉하였고 중국의 고전 연구에 매진하였다. 명말 리치 이래 정착된 근세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방침의 노선과 꼭 닮아 있었던 것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그러하였듯 뱅상 레브의 이러한 노선은 일반 민중을 향한 선교에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쇠퇴와 중국 사회와의 괴리를 극복하고 중국 천주교회를 온전히 중국 문화에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한 뱅상 레브는 선교 중에 현지의 문화와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천명함으로써 회칙 「막시뭄 일룻(Maximum Illud)」의 초고에 결정적인 원천을 제공하였다.

 

바로 이 회칙의 반포 3년 후 중국에 파견된 인물이 교황 사절 코스탄티니였다. 5·4운동 이래로 중국 사회에 한층 고조된 민족주의 열기, 또 그와 더불어 높아져 간 반(反)그리스도교 움직임을 이해하고 있었던 코스탄티니는 중국 천주교의 체질을 개선하고 천주교가 온전히 중국의 사상과 문화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썼다. 코스탄티니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치외법권 지역인 외국 공사관 구역이 아닌 곳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였다.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서양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하고 있을 때, 코스탄티니는 ‘신앙’과 ‘신앙을 포현하는 방식’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여기에서 최병욱은 코스탄티니의 노선을 두고 명말 대표적인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평한다. 실제 천주교의 중국 내 토착화 임무를 띠고 파견된 코스탄티니는 중국의 사상·문화를 존중하고 깊이 연구해야 함을 강조하였으며, 천주교 사상과 전통 유가 사상 사이에 소통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코스탄티니였던 만큼 중국 예술과 건축을 천주교회 내로 끌어들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그가 몸소 보여준 적응주의적 문제의식의 단적인 사례로 중국 인민의 지도자 손문이 서거 시 장례예절에 참석하여 그 앞에 세 차례 허리를 굽혀 절하는 예를 표한 일을 꼽을 수 있다. 최병욱은 코스탄티니를 평하는 말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었던 교황 요한 23세가 코스탄티니의 가까운 벗이었음을 상기하며 이미 공의회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었던 코스탄티니의 업적을 평가하며 그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단절’에서 ‘계승’으로 : 근세와 근현대 천주교사 서술의 연결고리를 찾다

 

제2편에서 근현대 중국 천주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세 인물을 살피는 과정은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명말청초 예수회의 적응주의 명맥이 금교령과 예수회의 해산을 통해 19세기 내내 사실상 끊어져 버린 것으로 생각되어 왔지만, 사실 근현대 중국 천주교회 내부에서는 그 유산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비로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편전쟁과 함께 태어나 중일전쟁기까지 무려 한 세기를 살았던 마상백의 일생과 업적에 대해서는 좀 더 다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미 본서에서 포괄하지 못한 최병욱의 마상백 관련 연구가 있으니 궁금한 독자들은 찾아보길 권하며, 아울러 그의 행보와 업적이 갖는 의미가 단순히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종횡으로 확장될 여지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복원하고자 한 예수회의 적응주의 유산을 마상백 그 자신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또한 그 구체적인 노력들은 실제로 어떠한 결실을 맺었는지 구체적인 논의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 제3편은 중국과 교황청의 외교 관계를 중심 주제로 살피는 순서로서, 얼핏 보면 관계사의 영역에서 서술하는 것으로 읽히지만 사실 앞선 두 편의 구성보다 제도사적 분석틀에 입각한 통시적 서술, 즉 좀 더 협의의 교회사 서술에 가까운 지향과 시도를 보여준다(253~337쪽). 먼저 그간 중국과 교황청 간의 외교 관계 연구가 의례논쟁 연구에 집중되어 온 것을 지적하고 근대 시기 청조와 교황청 사이의 외교 관계 수립이 어떠한 전개 양상을 띠고 확립되었는지를 추적하였다(제1장). 또한 청말 중국에서 교계제도를 확립하고자 한 교황청의 노력과 총리아문과 주요 관료들의 대응으로 대변되는 청조 당국의 조약과 외교 관계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분석하였다(제2장). 마지막으로 20세기 들어 신중국 성립 이후까지 근현대 중국과 교황청의 외교 관계를 재조명하면서 ‘하나의 중국’ 관념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복잡하고 난처한 관계 설정의 문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진행되는 대화와 상호 존중의 흐름을 통시적으로 분석해 내었다(제3장). 좀 더 전형적인 교회사 서술의 틀에 충실한 연구답게 제3편의 서술은 그간 덜 조명된 사료의 선택, 그리고 교황청과 중국의 외교 관계라는 주제를 근세 시기부터 현대에까지 풍부하게 제시하는 서술 방향을 채택함으로써 역사 연구 논문이 갖추어야 할 미덕을 보여준다. 더불어 오늘날 중국과 바티칸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측면에서 가장 시의성을 갖춘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인 연구자로서 중국 천주교사를 연구한다는 것

 

총평컨대 최병욱의 저서 『중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는 중국사와 천주교 문제의 어느 한 부분에라도 관심과 흥미를 가진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적극 추천하고 싶은 노작이다. 특히 지면과 표현력의 한계로 인해 제2편의 마상백, 뱅상 레브, 그리고 코스탄티니를 만나면서 느꼈던 희열과 흥분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향후 저자 최병욱이 어떻게 근현대 중국 천주교사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 나갈 것인지 앞으로의 연구가 더 기대된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후속 연구를 통해 과연 한국인 연구자로서 중국 천주교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차별성을 갖고 해외 학계와 소통, 길항함으로써 기여할 수 있을지 통찰을 듣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만일 그 방법론으로서 동아시아 천주교사로의 저변 확대, 그리고 근세 시기와 근현대 천주교사 서술 사이의 단절이 아닌 연속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는 종횡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큰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준 최병욱 교수에게 재차 경의를 표한다.

 

[교회사 연구 제58집, 2021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신주현(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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