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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산책: 이 시대에 진정한 리더가 그립다 - 2천 6백 년 전의 초나라 장왕에게서 배우는 리더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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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11 ㅣ No.258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이 시대에 진정한 리더가 그립다”
- 2천 6백 년 전의 초나라 장왕에게서 배우는 리더의 덕목



이번 달에는 중국 춘추시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명인 초(楚)나라 장왕(莊王)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장왕은 왕위에 오르고 나서 삼 년간 정사는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향락을 일삼았으며 온 나라 사람들에게 명하기를, 왕의 이런 행동을 간언하면 죽음에 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하 가운데 ‘오거(伍擧)’라는 자가 왕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수수께끼 하나를 내겠습니다. 새가 언덕에 앉아 있는데, 삼 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니 이것은 무슨 새입니까?” 그러자 장왕이 말했습니다. “삼 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날면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것이고, 삼 년 동안 울지도 않았으나,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오거, 그대는 물러갈지니 너의 말뜻을 알겠도다.”

그러고도 몇 달이 지나도록 장왕의 향락은 그치지 않고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대부 소종(蘇從)이 죽기를 각오하고 왕에게 건언을 하자 왕은 드디어 향락을 그만두고 정사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왕 옆에서 온갖 아첨을 일삼던 무리들을 모두 제거하고 오거와 소종을 임명하여 국정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왕에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충신을 찾아 기다린 것이겠지요. 이때부터 초나라는 주위의 수많은 나라와 오랑캐를 정복하고 춘추시대의 패자(覇者), 즉 으뜸으로 그 자리를 굳혔습니다.1) 여기서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습니다.

한 번은 장왕이 전쟁에서 돌아온 장수들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밤늦도록 잔치가 계속되었는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졌지요. 그때 갑자기 왕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전하, 지금 누가 어둠을 틈타 저를 희롱하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제가 그자의 갓끈을 뜯어 버렸으니 어서 불을 밝혀 범인을 잡아 주십시오.” 그러나 장왕은 촛불을 켜지 못하게 하고는 연회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갓끈을 잡아 뜯어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나중에 불이 밝혀졌지만 모든 사람의 갓끈이 끊어져 있었기에 범인을 찾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지요. 그리고 삼 년 후 초나라는 진(晉)나라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한 장수 덕분에 초나라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왕이 참으로 대견하여 그 장수를 불러 큰 상을 내리려고 했으나 장수는 오히려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옛날 연회 때 술에 취해 왕의 여인을 희롱했던 자라고 실토했습니다. 그때 자신을 용서해준 왕에게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고 싶어 죽기를 각오하고 전쟁에 임했다는 것이었습니다.2) 그때 왕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범인을 색출해 죽였다면 이런 명장을 얻을 수 없었겠지요. 여기서 나온 말이 “절영지연(絶纓之宴)”입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장왕이 급한 일로 태자를 궁으로 불렀습니다. 태자는 급하게 마차를 달려 궁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급한 마음에 마차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궁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때 형법을 관장하던 관리가 태자의 마차를 가로막고 세웠습니다. 마차를 타고 궁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법을 태자가 어긴 것입니다. 태자는 왕의 급한 부르심을 받고 가는 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담당 관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자의 마부를 끌어내어 처벌하고, 마차의 끌채를 잘라 버렸습니다. 신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긴 태자는 분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장왕에게 울면서 그 관리를 처벌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에 장왕은 태자에게 말했습니다. “법령은 종묘사직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므로 그 법령을 지키고 사직을 존경하는 자가 나라의 중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집행자를 어찌 처벌할 수 있겠느냐? 법을 지키지 않고 명령을 무시하며 사직을 존경하지 않으면 신하로서 군주를 경시하는 것이 되며,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에게 반항하는 것이 된다. 신하가 군주를 경시하면 군주의 권위가 없어지고, 아랫사람이 반항하면 윗사람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군주의 권위가 떨어지고 그 지위가 위태로워지며 사직을 지킬 수 없게 되면 무엇을 후손에게 전할 수 있겠느냐?”3) 그러면서 그런 충신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초나라의 복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법령과 그 법령을 공정하고 엄격하게 집행하는 충신, 그리고 그런 인재를 중시하는 정책, 이 세 가지를 일러 “장왕의 삼보(莊王三寶)”라고 이야기합니다.

초나라 장왕의 이야기를 보면서 한 국가, 한 단체, 한 가정의 리더나 본당 사목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인사(人事)’의 중요성입니다. 장왕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 누가 진정한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알아보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향락에 빠져 국정에 소홀하면서도 간언을 하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지요. 대부분의 신하들은 그런 왕 옆에서 비위를 맞추며 아첨을 떨었을 겁니다. 장왕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나라와 왕을 걱정해서 간언을 하는 충신을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는 주위에 어떤 사람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무조건 나에게 맞춰 주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기분이 좀 상하더라도 내 눈치만 보지 않고 넓은 시야로 두루 살펴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제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람을 써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신뢰’의 중요성입니다. 내가 인사(人事)를 적재적소에 잘했다면, 다음으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을 믿어 주어야 합니다. 장왕이 연회 때의 잘못을 따지고 들어 범인을 색출해 처벌해 버렸다면 충직한 장수 한 명을 잃었을 것이고, 주위에 있던 이들은 공포에 질리거나 리더의 눈치만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믿고 기다려 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그마한 잘못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사소한 실수도 들춰내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연인, 남편, 아내, 아이들을 믿지 못해 스마트폰을 검사하고 메일을 뒤져 보기도 합니다. 믿어 주지 않으면 자꾸 속이게 됩니다. 믿어 준다면 설사 사소한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자기를 믿어 줬다는 사실이 더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자신이 신뢰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 사람은 더욱 충실히 자기가 맡은 임무를 해 낼 것입니다.

셋째는 ‘시스템’의 중요성입니다. 조직이 리더의 카리스마에 따라 즉흥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리더의 기분에 따라 조직이 좌우되어서도 안 되지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누구나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 조직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장왕은 초나라가 왕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시스템에 따라 합리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올바른 법령과 공정한 법집행,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안정된 시스템이 그것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인권이 중시되며 국민 모두가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아 올바른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한 나라가, 한 공동체가, 한 가정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2천 6백 년 전보다 더 합리적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운영하는 곳은 어떻습니까? 회사일 수도 있고, 본당이나 모임,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움직입니까? 아니면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 합리적으로 움직입니까?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고전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고, 과거의 잘잘못에서 제대로 배워 오늘날 나의 실정에 맞춰 실천해 나가는 데 있습니다. 초나라 장왕 같은 멋진 리더가 그리운 때입니다.

1) 사마천, 『사기』, 「초세가」 참조.
2) 풍몽룡,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제51회 참조.
3) 『한비자』, 34편 「외저설우상(外儲設右上)」 303.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15년 8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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