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생활의 해, 완전한 사랑4: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03 ㅣ No.497

[봉헌 생활의 해 - 완전한 사랑] (4)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

세상을 멀리한 수녀들, 기도로 세상 속에 살다



-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 수녀들이 저녁기도를 바치고 있다.

 

 

12월 3일. 밤새 내린 함박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다. 택시를 타고 소복이 쌓인 눈길을 올라가는데 기사가 대뜸 물었다. “정말 여기가 맞아요?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 사람이 사나?” 지도를 봐도 찾아가기 어려운 곳. 그곳에 봉쇄 수녀원이 있었다.

충북 청주시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수녀들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기자를 맞았다.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봉쇄 수녀원에서 하루 동안 수녀들과 함께 먹고, 자고, 기도했다. 봉쇄 구역 안에 들어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한 관상 수녀들의 생활을 담았다.

 

 

봉쇄 수도원의 삶

행복한 생활

“끼이익.”

봉쇄 구역을 막아놓은 육중한 문이 열렸다.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실내가 어두컴컴했던 것과 달리 봉쇄 구역에는 햇살이 쏟아졌다. 원장 수녀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도 두 눈은 바쁘게 주위를 살폈다. 넓은 복도와 깨끗한 실내, 밖으로 펼쳐진 눈 덮인 산…. 처음 보는 봉쇄 구역은 예상과 달리 무척 밝고 따뜻했다.

원장 수녀가 2층 공동 휴게실로 안내했다. 마침 휴식 시간이었다. 수녀들은 저마다 성탄 카드를 쓰거나 묵주를 만들며 자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 중 두 번 있는 자유 시간에는 유일하게 침묵이 해제된다. “깔깔깔”,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온 방에 울려 퍼졌다.

수녀들 웃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사소한 한 마디, 눈빛 하나에도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거 밖에선 알까요?” 노수녀의 질문에 ‘정말 이곳에서의 삶이 행복하냐’고 되물을 수 없었다. 수녀들 얼굴이 이미 답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TV나 인터넷, 휴대폰 없이도 수녀들은 삶이 즐겁다고 했다. 수녀원에서의 1박 2일 동안 휴대폰을 꺼두기로 했다. 최대한 수녀들과 비슷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사실은 나도 그 행복을 조금은 맛보고 싶었다.

 

- 한 수녀가 제병을 만들고 있다. 수녀들은 노동 중에도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함께한다.



침묵, 침묵, 그리고 침묵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의 사도직은 끊임없는 기도와 관상이다. 창립자인 십자가의 성 바오로(1694~1775)의 정신에 따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신을 봉헌한다.

수녀들은 수련 과정에서 ‘오감’(五感)을 죽이는 연습을 한다. 외부로부터 오는 감각에 둔해질수록 내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녀원 내에서는 항상 침묵이 유지된다. 지나가다가 서로 마주쳐도 간단한 목례만 하고, 꼭 할 말이 있을 때는 손짓과 눈짓을 섞어 의미를 전한다. 이렇게 유지되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수녀들은 세상의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과 항상 함께 있는 예수님을 기억한다.

성당에 들어와 수녀들과 함께 묵상 기도를 했다. 조용히 눈을 감으니 원장 수녀의 말이 떠올랐다.

“수녀원 안에서만 산다고 바깥 일을 모르지 않아요. 교회 곳곳에서 들어오는 기도 요청이나 교계 신문을 보면서 세상 소식을 접하죠. 세월호나 밀양 송전탑 사건처럼 사회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저희는 기도로 함께합니다.”

숨소리 한 번 내지 못할 정도로 고요한 침묵 속에서 수녀들은 하느님과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고 있구나.’ 어느덧 어색하기만 했던 침묵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수녀원의 저녁

해가 졌는데도 수녀원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복도 중간중간의 간이조명만이 희미하게 수녀원을 지키고 있었다. 수녀원은 꼭 필요한 공간을 제외하고는 전등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원장 수녀에게 이유를 묻자 “매일 다니는 곳인데 불을 켜놓을 필요가 있나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번 들어오면 평생 같은 곳에서 사는 수녀들에게 이곳은 한마디로 ‘눈 감고도 훤한 곳’이었다. 더듬더듬 벽을 잡고 가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어둠 속에 있다 보면 나도 내면의 눈을 더 키울 수 있을까나….’

어둠을 해치고 식당에 들어갔다. 각자 정해진 자리에 수녀들이 앉았다. 따뜻한 밥에 시래기 무침과 김치, 그리고 삶은 달걀이 나왔다. 수녀원에서는 연중 시기 수요일과 금요일, 토요일에 이와 같은 ‘경식’(가벼운 식사)을 한다. 사순과 대림 시기에는 모든 식사가 경식이다. 소박한 식단이지만 기도를 오래 해서인지 밥맛이 꿀맛이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며 고요한 평화를 지니고 기쁘게 일하십시오’라는 창립자의 말처럼 봉쇄수녀원의 생활은 단순하면서도 행복했다. 끝기도와 성체조배를 마친 수녀들이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고요한 침묵 속에 봉쇄 수녀원의 하루가 지나갔다.  


예수 고난 광상 수녀회는

예수 고난 관상 수녀회는 1771년 십자가의 성 바오로에게 영감을 받은 마리아 칸디다 수녀가 이탈리아에서 설립했다. 한국에는 1986년 일본 오사카 공동체에서 존 메리 수녀와 마리아 돌로레스 수녀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소개됐으며, 1988년부터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수녀회 수도복에는 하얀 십자가 아래 심장 모양의 표지(싸인)가 달려 있다. 표지에 적힌 ‘JESU XPI PASSIO’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뜻이다. 하얀색의 십자가는 이 표지를 착용한 수도자의 마음이 십자가에 봉헌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심장은 예수님의 고난을 항상 간직하는 수도자의 순결한 마음을 상징하며, 심장 안의 못 세 개는 예수님의 고통과 수난에 참여하는 모든 이의 고통을 상징한다.


봉쇄 수도원 수녀님, 궁금합니다.

Q. 수녀님들도 기도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나요?

A. 많은 분이 기도를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거나 감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오롯이 마음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시간도 모두 기도의 과정입니다.

Q.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특별히 수행하시는 것이 있나요?

A. 고난회 수녀들은 복음적 권고인 정결, 청빈, 순명 이외에 고난 서원을 합니다. 기도의 삶 안에서 예수 고난의 기억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기 위해서죠.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묵상하고, 제비로 한 명을 뽑아 하루 중 33번 예수님을 찾아뵙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도록 합니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1일, 글 사진 김유리 기자]



3,178 2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