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8-04-01.....부활대축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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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4-28 ㅣ No.2200

예수님부활대축일 (나해)

사도 10,34.37-43         콜로새 3,1-4       요한 20,1-9

2018. 4. 1. 이태원

주제 : 부활의 의미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 부활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삶을 마치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하신 때를 대략 서기 30년 전쯤이라고 하고, 올해는 2018년이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계산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세상의 삶에서, 사람들은 흔히 순서를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먼저 태어나서 형이나 동생인지, 누가 나이가 더 많아서 대우를 얻거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잘하는 일에 왜 너는 잘 하지 못하는지 다양한 순서를 세웁니다.

 

며칠 전, 성목요일에 명동에서 있었던, 성유축성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서 행렬을 하던 중에, 옆에 있던 동료사제 한 사람이, 성당으로 들어가는 행렬의 뒤를 쳐다보면서 놀라운 소리를 했습니다. ‘, 우리 뒤에도 저렇게 많이 있는 것을 보니, 우리가 죽으려면 아직은 멀었는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스갯소리여서 웃으면서도, 또 세상을 떠나는 것은 나이의 순서대로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순서를 말하면서, 나에게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는 보통 슬픈 얘기를 담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게 좋은 일이 생기고 내가 하늘의 위로 올라가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질 때만 이런 순서를 계산할까요?

 

이러한 세상의 일이 신앙에도 적용된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하겠습니까? 순서를 정하고,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는 것이 세상의 삶에서는 가능한 소리이지만, 신앙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소리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 대표적인 것을 생각하자면, 부활에 대한 생각이 그 한 가지입니다.

 

세상에 먼저 태어났고, 세상에서 산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길면, 부활이라는 신앙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설명할 수 있고, 또 신앙인으로서 권장할 삶의 본보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많이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쉽게 하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적용하는 기준에서는 연배(年輩)가 높거나 많은 사람이 지혜롭다고 여길 것이기에,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고 할 수 있고,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이 올바른 것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상에 통용되는 그러한 사정이 신앙인의 삶에도 똑같이 연결될 수 있을까요?

 

오늘 부활대축일의 낮미사에 들은 복음은 요한이 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한 날의 첫 모습입니다. 어젯밤에 들은 마르코복음서의 말씀에는 천사가 등장해서 살아계신 분을 왜 죽은 사람들의 사이에서 찾느냐고 물었습니다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시신을 넣어두었던 무덤에 아침 일찍 다녀온 마리아막달레나가 사도들에게 전하는 내용과 사도들의 반응만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의 현장을 전해주는 얘기는 당시 사회에서 신빙성이 없다고 여겼던 여인의 증언에서 시작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증언을 다른 가치로 대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얘기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막달라마리아가 전한 내용은 무덤에 갔더니, 입구를 막았던 돌이 치워졌고,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일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막달라마리아가 전한 내용에 놀라서, 현장으로 급히 달려간 두 명의 사도가 만난 상황도 마리아가 전한 내용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게 부활의 실제 모습입니다. 우리가 놀랄 만한 내용인가요?

 

세상의 삶에서 놀라운 소리를 전하는 내용을 들으면, 우리는 그 내용이나 말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겠습니까? 돈을 버는 일이나, 내 명예를 높이는 일이라면 들려오는 소리대로 내가 움직일 가능성은 있겠지만, 내 삶과 직접 관련이 없다거나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내가 믿고 따를까요? 함부로 할 소리는 아닙니다만, 내 귀에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는 그대로 믿고 따르기보다는 내가 듣고 싶고, 내가 듣기를 원하는 내용에 따라 내가 믿고 받아들일 내용이 달라집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얘기하는 대축일의 낮미사에 함께한 우리는 부활의 소식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삶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듣거나 말거나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할 사람일까요? 삶에서 사람이 갖기를 권하는 원칙은 한 가지이겠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남길 수 있는 내용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우리의 삶에 다가온 은총이 우리의 삶을 통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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