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나를 넘어 그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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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11 ㅣ No.259

[신심서적 다시 읽기] 나를 넘어 그 너머로



머리글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바른 삶을 위하여 자신을 ‘내려놓아라. 버려라, 비워라.’하는 말을 많이 듣고 또 쓰기도 한다. 이 말의 뜻은 잠심(潛心)의 개념을 도입하면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잠심이란 ‘알되 그 앎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전에는 “마음을 가라앉히어 깊이 생각함”으로 풀이하고 있다. 기도하면서 분심과 잡념이 생길 때 잠심을 하면 분심과 잡념을 알되 그것이 내가 기도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 아주 값진 물건을 가졌다 해도 그 값진 물건이 그를 대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게 되는 것이 잠심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좋고 나쁜 감정이 들 때 그 감정에 빠지지 않고 잠심상태에 머무르면 마음이 좀 더 평화로워질 수 있고, 그 순간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모두 8개의 장으로 잠심의 삶을 위한 마음, 잠심이 어떤 점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하고 각 장마다 짧은 예화를 담아 이해를 도와준다.


1. 인간 최대의 관심사인 성공과 실패에 대하여

사람들은 실패했을 때 이를 극복하여 재도전하기도 하고 극단의 늪에 빠져드는 등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볼 수 있다. 만일 성공과 실패를 구분할 줄 알되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진화와 발전의 방향이 아닐까? 따라서 잠심한다는 것은 세상을 내 생각과 경험대로 보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탈출하는 일이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상만 바라보며 그것이 전부인양 살아가지 아니 하는가? 코이라는 비단 잉어가 있다. “코이는 있는 곳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자란다.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cm, 수족관이나 연못에서는 15-25cm,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자란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나’에 끼워 맞추는 삶이 아니라 잠심을 통해 벗어나면 ‘큰 나’로 성장한다는 것을 배운다.


2. 성경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하느님께 의탁하여 하느님을 자기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쁘거나 슬픈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말한다. 또 겸손한 사람이란 욕심이 없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고요하여 괴로워하거나 초조하거나 슬퍼하거나 흥분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또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고 한다. 어린이다움의 내적 특성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천진난만한 순수성과 단순성, 거짓이 없는 진실성,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을 말한다. 초등학교 3학년 수학시간에 낸 문제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100km라 생각하고 비둘기가 시속 20km로 날아간다면 몇 시간이나 걸릴까? 아이들은 “6시간입니다.”라고 답했다. “틀렸어, 5시간이야!” 아이들은 “선생님, 비둘기도 거기까지 날아가려면 중간에 1시간 정도는 쉬어야 합니다.” 참으로 어린이다운 생각이 아닐까? 잠심을 하면 우리의 삶에 어떤 도움이 있을까? 피카소의 조각품 중에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있는 예술품인 ‘황소머리’의 재료는 쓰레기 처리장에서 구한 낡은 자전거였다니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겉치레를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게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은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마르 4,21-25)라는 말씀은 진정 자유롭게 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러니 드러내는 삶이 강인한 삶이고 생존할 수 있는 삶이며 ‘참 나’로 사는 삶이다.


3. 잠심은 소통이 제대로 되는 삶이다.

진정한 대화는 내 생각대로 진행되는 대화가 아니라 내 생각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닐까? “세상에 대해 죽는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성 마키리우스의 제자가 스승에게 그 뜻을 물었다. 스승은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해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하고 돌아오너라.”고 했다. 돌아온 제자에게 그 반응을 물었더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있는 칭찬, 없는 칭찬을 다하고 돌아오너라.”고 했다. 제자는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스승은 “그것이 바로 죽은 것이다.” 판단을 멈출 때 세상에 대해 죽은 때이고 자신이 죽고 비워지는 것이 잠심이며 이때 내 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싸움이 잦은 부부가 스승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사소한 한 마디에도 귀를 기울이니 호전되었다. 신혼시절처럼 서로를 신뢰하고 깊이 사랑했던 감정으로 되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이제 말하지 않은 것에 귀를 기울이게. 사랑은 이해와 공감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라네.” 이렇게 잠심하며 사는 사람들은 상대의 말에서 자유롭고 상대의 진심 어린 호의를 받아들이고 발바닥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귀로는 들리는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고, 눈으로는 본질을 꿰뚫어 보고, 머리로는 그것을 이해하고, 입으로는 표현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이 모든 걸 내려놓고 듣는 게 발바닥으로 듣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 가진 재산이 없는 사람도 몸으로 하는 봉사, 따뜻한 마음, 평온한 눈길, 온화한 표정, 친절하고 따뜻한 말 등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4. 우리는?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세 가지의 여행이 있다. 안으로의 여행(내면으로의), 밖으로의 여행(사랑을 실천하는), 위로의 여행(하느님과의 일치)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을 거쳐 발까지 이루어지는 여행”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잠심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며 그 뜻을 실천하게 되면 하느님과 더 깊이 일치하게 되리라. 우리 삶의 지향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려놓아라. 버려라. 비워라.” 이 한 마디를 우리의 생활에 접목시키는 삶이어야 하리라. - 《나를 넘어 그 너머로》|정규한 지음|성서와 함께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5년 8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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