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수도승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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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7 ㅣ No.216

수도승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 들어가는 말

 

요즈음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오는 온갖 질병, 스트레스, 걱정, 그리고 불안한 미래에 대해 정신적인 안정과 육체적인 건강을 찾고자 유사영성 운동에 가담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1) 

 

좋은 것, 기적, 환시, 또는 유사영성 운동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참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신앙을 크게 위협할 수 있고, 또한 우리를 참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게 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가 그토록 강조해 온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서를 읽고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 없으며, 죽은 문자로 남아있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우리 안에 결코 말씀이 ‘강생’할 수 없으며, 더욱이 그 말씀은 의미 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그쳐버릴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을 직시하면서 수도 전통 안에서 훌륭히 꽃핀 성서에 대한 접근인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성독)2) 수행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2. 렉시오 디비나의 단계

 

12세기 카르투시오회의 9대 원장이었던 귀고 2세(Guigues II)가 그의 저서 The Ladder of Monks에서 렉시오 디비나의 4단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바로 독서(lectio)-묵상(meditatio)-기도(oratio)-관상(contemplatio)의 단계이다. 귀고에 따르면, 성독의 제일 첫 단계인 독서는 자신의 온 힘을 집중하여 성서를 주의 깊게 읽음으로써 묵상에 사용할 자료를 발견하는 단계이다. 둘째 단계인 묵상은 말씀 안에 숨겨진 진리를 깨닫는 단계를 말한다. 셋째 단계인 기도는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올리고 관상의 감미로움을 청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넷째 단계인 관상은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 들어올려져,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성독에서 이러한 단계들은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서 없는 묵상은 오류에 빠질 수 있고, 묵상 없는 기도는 쉬이 냉담해질 수 있으며, 기도 없이 관상에 이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3. 수도 전통 안에서의 성서 독서

 

1) 능동적인 독서

 

중세 수도 전통의 권위자 가운데 한 분이셨던 베네딕도회의 장 르끄레르 신부는 고대나 중세 수도 전통 안에서 어떻게 성서 독서를 했는지 구체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수도자들은 성서를 읽을 때, 오늘날과 같이 단순히 눈과 머리만 이용해서 대충 그리고 빨리 읽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성서 독서 시간에 성서 본문에 대한 주석이나 구조 분석을 시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은 단순하게 천천히 눈으로 본 내용을 입술로 작게 소리 내어 직접 귀로 듣고 또 그것을 기억과 마음에 간직하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 존재를 활용하는 능동적인 독서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그의 규칙서에서 여름철 동안 제4-6시3)까지 수도자들이 자유롭게 성서 독서를 하도록 배려하였고, 더욱이 제6시경 뒤에 식사를 마치면 형제들은 침묵 중에 휴식을 취하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원하는 사람은 독서를 하되 남에게 방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베네딕토 규칙서」, 48,4-5). 

 

곧 수도자들은 먼저 성서를 손으로 펼쳐서(손) 성서의 말씀을 보고(눈) 그것을 작은 소리를 내어 읽으면서(입) 동시에 그 말씀을 듣게 된다(귀). 그리고 그것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하루 내내 계속해서 그 말씀을 되뇌게 되는데, 이것이 수도 전통에서 행해졌던 단순한 묵상, 곧 반추기도이다.4) 

 

2) 들음

 

초기 수도승 작품들을 보면 독서(lectio)와 들음(auditio)이라는 두 용어가 자주 동의어로 사용되곤 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성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동시에 귀 기울여 그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의 독서는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읽는 수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귀 기울여 듣는 수행이었다. 장 르끄레르 신부는 이러한 수행을 일컬어서 “청각적인 독서”라고까지 표현하였다. 베네딕토 성인 역시 수도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수행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계속하여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빛을 향해 눈을 뜨고,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외치며 훈계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베네딕토 규칙서」, 머리말 9절). 

 

오늘날 우리는 공동체 모임이나 전례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자주 성서를 읽거나 듣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선포되자마자 물거품처럼 곧 사라지게 됨을 종종 체험하곤 한다. 이것은 성서를 읽고 귀 기울여 듣는 수행이 잘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을 때, 비로소 그 말씀은 우리 안에서 메아리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수행이 깊어질 때, 성서의 어떤 말씀이든지 우리를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우리 안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3) 기억

 

추론적인 묵상 방법들이 인간의 지성과 상상을 강조하는 반면에, 초기 수도 전통은 모든 종류의 상상이나 개념들을 철저히 거부하고 특별히 기억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서 독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언제나 기억에 간직하였고, 끊임없이 그 말씀을 암송하는 단순한 묵상을 실천하였다. 이렇게 수도자들에게 기억은 수도생활에서 아주 기본적으로 요구되었던 요소였는데, 그것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기억 속에 간직된 하느님의 말씀을 암송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집트의 안토니오 성인은 그의 기억 속에 성서 전체를 간직하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초기 수도 전통에서 그토록 강조되었던 기억의 중요성은 중세에도 계속되었다. 결국 수도 전통에서는 성서 독서가 우리의 기억과 분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곧 성서 독서는 기억을 통해서 묵상, 기도, 그리고 관상으로 나아가게 되고, 기억은 성서 독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머무르는 거룩한 곳이 되어 그 충만한 의미를 갖게 된다. 

 

 

4. 수도 전통 안에서의 성서 묵상

 

우리는 고대 수도자들이 행했던 단순한 성서 묵상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상상과 추리를 요구하는 다양한 추론적인 묵상 방법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대 수도 전통에서 가르쳐주는 묵상 방법은 구조화되지 않고 체계화되지 않은 단순한 묵상법이다. 여기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지 그냥 단순하게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항구하게 성서의 말씀을 되뇌라는 것이다. 어원적으로 볼 때, 라틴어 ‘meditari’(묵상하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내면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인 그리스어 ‘meletan’에서 왔으며, 이것은 어떤 것을 반쯤 소리 내어 중얼거림을 뜻하는 히브리어 ‘haga’에서 왔다. 그러므로 고대나 중세 때 수도자들이 묵상한다고 하면, 그것은 당연히 기억된 성서 본문에 대한 암송으로써 온 마음으로 그 구절의 충만한 의미를 배우는 것이었다. 

 

사실 고대나 중세까지만 해도 ‘묵상’과 ‘되새김’은 별 차이 없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12세기 이후 스콜라 학문이 발전하면서, 묵상의 개념이 더욱 지성적인 측면을 내포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 묵상의 개념은 이제 생각하는 것(cogitatio), 고려하는 것(consideratio), 그리고 연구하는 것(studium)과 같은 지성적인 의미들을 포함하게 되었고, 조금씩 이러한 의미들로 대체되어 갔다. 그리고 근세 이후에는 묵상에 더 합리적이고 추론적인 요소들이 많이 첨가됨으로써 점점 더 묵상과 되새김은 분리되었고, 더욱이 후자는 거의 잊히게 되었다. 이로써 수도 전통 안에서 단순하게 그리고 독특하게 행해져 오던 성서 묵상인 되새김(ruminatio) 수행이 오늘날 거의 잊히게 된 것은 교회 안에 크나큰 손실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5. 반추기도(ruminating prayer)의 개념

 

반추기도(ruminating prayer) 란 귀고 2세 원장이 이야기한 렉시오 디비나의 4단계 가운데 둘째 단계인 성서 묵상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구절을 반복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반추동물이 삼킨 음식물을 토출(吐出)하고, 재저작(再詛嚼), 재혼합(再混合), 그리고 재연하(再嚥下)하여 완전히 자신의 살과 피가 되게 하는 일련의 과정과 같다. 마찬가지로 반추기도란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나의 살과 피가 되게 하는 독특한 수행이다. 고대 수도자들은 성서의 말씀을 소리 내어 읽고 기억에 간직해 두었다가 일터에서 또는 혼자 산책하거나 기도할 때 그 말씀을 토출해 내어 신. 망. 애 안에서 다시 천천히 되씹고 그 말씀을 마음에 재연하시킴으로써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단순하고 독특한 묵상을 실천하였다. 이것이 바로 반추기도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되며 끊임없이 온 마음으로 되뇌어야 한다. 신·망·애 안에서 이러한 수행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덧 말씀 안에서 살아가고 말씀과 하나 되게 된다. 우리는 시편 저자의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당신 생각, 밤을 새워가며 당신 생각뿐, 나를 도와주신 일 생각하면서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즐겁습니다”(시편 63,6-7). 

 

 

6. 성독의 효과

 

1) 성독은 우리를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고대 수도자들이 행했던 성독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기도이기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러한 기도를 오래 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단순하게 된다. 

 

2) 다른 기도와 달리 성독은 철저히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가 중심이다. 그러므로 성독 수행을 충실히 해나가면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3) 말씀을 온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다 보면, 성서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 요한 가시아노는 「담화집」 제14권에서 이러한 수행이 하느님 말씀에 대한 참된 지식(gnosis)을 얻게 해준다고 강조하였다. 

 

4) 성독 수행을 충실히 하다 보면 하느님의 말씀이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게 됨으로써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하게 된다. 이때 개개인에 따라서 통회의 눈물이나 신체적, 정신적 치유도 일어날 수 있으며, 내적 통찰력도 생기게 된다.

 

5) 자연스럽게 집중력이 생겨 정신 통일이 가능해지고 마음이 고요하게 되어 내적 고요의 상태로 인도된다. 이러한 수행은 흐트러진 생각들과 무질서한 관심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말씀에 집중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6) 성독은 죄와 사탄의 유혹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지켜줄 수 있으며, 또한 방황하는 마음과 정신을 고요하게 만드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에바그리오는 그의 저서 「프락티코스」(The Praktikos)에서 8가지 악덕을 거슬러 싸우는 여러 수행들을 제시하면서, 특별히 성독을 방황하는 정신의 치료제들 중의 하나로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요한 가시아노는 「제도서」 제5권에서 탐식의 악덕을 거스르는 수행들 중의 하나로서 성독을 권고하고 있으며, 또한 「담화집」에서도 성독이 온갖 탐욕, 육신의 유혹, 슬픔 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줌을 강조하고 있다.

 

7) 성독은 온갖 분심 잡념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요한 가시아노는 「담화집」 제1권에서 모세 압바의 영적 권고를 전해주고 있다. 모세 압바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온갖 분심과 나쁜 생각들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주 성서를 읽고, 끊임없이 묵상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8) 우리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시기와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라앉게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게 한다. 그럼으로써 사랑, 평화, 기쁨, 온유, 절제, 인내, 친절, 너그러움 등과 같은 영적인 열매들이 자라나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동시에 모든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희망을 갖게 된다. 

 

9) 성독 수행을 통해 바쁜 활동 중에서도 고요함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으며, 고요함 가운데서도 분주히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수행을 통해서 하느님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하게 되면, 하느님 말씀과 분리되지 않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독 수행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우리 삶의 중심이신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준다. 그리고 실제로 말씀을 통한 크고 작은 체험들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많은 영적인 열매들을 가져다준다.

 

 

7. 사목 현장에서의 적용

 

1) 미사 시작 전 공동체가 함께하는 렉시오 디비나

 

하루 중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점은 무엇보다도 미사이다. 특별히 날마다 미사 중에 선포되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 우리 각자에게 보내시는 사랑의 메시지들이다. 그러므로 그날의 미사의 말씀들을 공동체가 함께 렉시오 디비나를 하면서 잘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부록 2>에서 제시한 공동 독서를 시도해 볼 수 있겠다. 특별히 주일미사를 시작하기 15분이나 20분 전부터 해설자가 그날 선포될 말씀을 공동 독서의 순서에 따라 천천히 반복해서 봉독한다면 아마도 공동체가 함께 말씀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미사를 준비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2) 회합 시작 전 공동체가 함께하는 렉시오 디비나 

 

본당의 여러 모임에서 회합을 시작할 때에도 <부록 2>에서 제시한 공동 독서를 시도해 볼 수 있는데, 각 공동체의 상황이나 모임의 성격에 따라 공동 독서의 내용이나 순서를 수정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공동 렉시오 디비나는 회합의 중심이 하느님의 말씀이 되게 하며, 또한 구성원들에게 말씀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3)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공동 기도 모임(반추기도)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가장 적합한 시간에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성서 묵상인 반추기도 모임을 갖는다. 기도 묵상실이나 경당을 최대한 활용하면 좋겠지만, 성당이나 회합실을 사용해도 괜찮다. 그러나 어느 장소이건 간에 중앙에는 십자가와 성서 그리고 촛불을 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모두가 그 둘레에 편하게 앉은 다음 <부록 3>에 제시된 반추기도의 순서에 따라 30-40분간 반추기도 시간을 갖는다. 

 

각자 반추기도 모임에 오기 전에 성서 독서를 하고 마음에 닿는 한 말씀을 미리 선택하면 좋지만, 성서 독서와 성서 묵상을 동시에 할 수도 있다. 곧 <부록 2>에 제시한 공동 독서의 순서를 따라가다가 마지막 세 번째 말씀을 봉독하고 나서 대략 10-20분 정도 깊은 침묵 가운데 반추기도 시간을 가지면 된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안내자가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려주고, 이때 각자는 침묵 중에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봉헌한다. 그리고 3-4분 뒤에 다 함께 찬미의 노래로써 “알렐루야”를 봉헌하고 마친다. 

 

이외에도 각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8. 나가는 말

 

성서학자이자 수도자였던 예로니모(St. Hieronymus, 347-420년) 성인은 “성서를 모르면 결코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를 알려면 성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자주 읽고 묵상하지 않기에, 신앙이 자주 흔들리고 기복적으로 변질되거나 아니면 온갖 형태의 유사영성들에 탐닉하려는 유혹을 크게 받는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통해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의 신앙생활은 크나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날마다 가까이하고, 그것을 온 마음으로 순수하게 읽고 묵상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이에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는 단순하고 구체적으로 우리를 하느님 말씀의 풍요로움 그 자체로 인도할 것이다. 그때 말씀은 우리 안에서 살아 현존하게 되며, 우리는 더 이상 방황하거나 유사영성들에 현혹당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과 함께 세상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고대 수도자들의 단순하고 독특한 말씀에 대한 수행을, 현대 동양 문화권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수도원 안에서 본인이 수행해 온 방법이며, 또한 여러 수도 공동체들의 연례 피정을 지도하면서, 부산 명상의 집에서 성독 피정을 지도하면서 함께 나누고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부록 1> 개인 독서(성서 독서)

 

1)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다.

2)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한다.

3) 성령께 도움을 청한다.

4) 성서 말씀을 천천히 작게 소리 내어 읽고 듣는다.

5) 성서 말씀 가운데 마음에 닿는 구절이 있으면, 거기에 잠시 머무른다.

6) 위와 같은 방법으로 계속해서 성서를 읽어 내려간다.

7) 하느님께 감사하는 기도로 끝마친다.

 

* 일어나기 전에 마음에 닿았던 성서구절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그 구절을 염두에 두거나 쪽지에 간직하고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부록 2> 공동 독서(성서 독서)

 

1)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다. (개인 독서와 동일함)

2)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한다. (개인 독서와 동일함)

3) 성령께 도움을 청한다. (개인 독서와 동일함)

4) 성서 말씀의 같은 본문을 천천히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고 듣는다.

  (1)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다(첫 번째 독서).

  * 주의할 점: 각자는 잠시 침묵 가운데 봉독된 성서 말씀을 전체적으로 되새겨 본다.

  (2)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다(두 번째 독서).

  * 주의할 점: 각자는 잠시 침묵 중에 마음에 닿는 어떤 성서구절을 선택하고 그것을 머릿속에 간직한다.

  (3)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다(세 번째 독서).

  * 주의할 점: 각자는 침묵 중에 자신이 선택한 말씀을 신·망·애 안에서 천천히 반추한다.

5) 나눔(* 나눔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다음 사람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6)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각자는 하나의 선택된 성서구절을 가지고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부록 3> 반추기도(성서 묵상)

 

1)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다. (개인 독서와 동일함)

2)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한다. (개인 독서와 동일함)

3) 성령께 도움을 청한다. (개인 독서와 동일함)

4) 성서 말씀을 천천히 반추한다.

  (1) 선택한 성서구절을 떠올린다. (토출)

  (2) 성서구절을 되씹는다. (재저작/재혼합)

  (3) 성서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다. (재연하)

5)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6) “알렐루야”로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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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 II」,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년 참조.

 

2) 필자는 이 글에서 ‘성스러운 독서’, ‘성서 독서’, ‘성령에 따른 독서’라는 의미로 ‘성독’과 ‘렉시오 디비나’라는 용어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주교회의 천주교 용어위원회에서는 ‘lectio divina’를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기도가 되게 하는” 폭넓은 의미에서 ‘영적 독서’라 번역하고 있으며(「천주교 용어집」,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0년, 61면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거룩한 독서’라고 번역하였다. - 편집자 주.

 

3) 고대에서의 시간 개념은 오늘날의 시간 개념과는 다르다. 사실 그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이 정확한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의 변화에 민감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루의 일출과 일몰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을 12 등분하여 오늘날의 1시간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제4-6시는 오늘날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아침 10부터 12시 정도를 의미한다.

 

4) 이러한 독특한 묵상 방법을 필자는 “반추기도(ruminating prayer)”라 명명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수도승 전통에 따른 성서 묵상법 반추기도”, 「신학전망」 제115호, 1996년 겨울, 131-157면을 참조하기 바란다.

 

[사목, 2005년 8월호, 허성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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