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8-04-08.....부활 제2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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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4-28 ㅣ No.2201

부활 제2주일 (나해)

사도 4,32-25     1요한 5,1-6       요한 20,19-31

2018. 4. 8. 이태원 (2000년 요한바오로2세 교황님이 제정한 하느님-자비주일)

 

주제 :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 사는 것

사람은 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답을 찾습니다. 개인적인 것이라서 개인의 대답으로 충분할 질문도 있고, 질문은 개인이 하는 일이지만, 대답이 공동체에 주는 영향이 큰 것이라서 좀 더 큰 규모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것은 세상의 일이나 신앙의 일이나 차이는 없는 일입니다.

 

질문과 대답에 대한 표현을 들으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고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세상에 꼭 필요한 얘기를 듣습니다. 평화에 관련된 것입니다. 내가 누릴 평화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서 내게 선물로 주고 나는 그저 받기만 하면 되는 일일까요? 질문하는 순간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질문은 필요한 일이고, 대답도 찾아야 하는 일입니다.

 

한 나라와 한 민족이라고 하면서도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가 현재와 달라지는 모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복음에서 3번을 반복해서 들은 평화일 것이고, 세계의 최강대국으로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미국과 우리의 북쪽에 있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 필요한 것도 3번을 반복해서 들은 평화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들은 평화는 말로만 노래한다고 우리의 삶에 오는 것도 아니고 실현되는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삶에서 필요하다고 여기는 만큼 내 삶에 이루려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론으로 아는 이런 일이 현실로 드러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제자들과 함께 있기를 예수님께서 바라신 평화(平和)는 듣고 대하는 사람마다 뜻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힘이나 무력(武力,=군사상의 힘)이 있어야 평화를 누린다고 하겠지만, 신앙에서는 어떤 기준을 앞세워야 하겠습니까?

 

죽을까 두려워서 문을 닫아걸고 있는 사도들에게 예수님은 평화가 있기를 권하시며, 그 두려움을 이기기를 바라셨고,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용서를 말씀하시면서 두번째 평화를 비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믿지 않는 마음, 불신을 걷어내기를 바라시면서 행복을 이루는 방법으로 세 번째로 평화가 함께 하기를 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떤 것이 내 삶에는 필요하지 않다고 과감하게 솎아내고 걸러내고, 외면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하신 말씀을 우리도 같은 사람이면서도 짧은 순간에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우리가 평화에 다가서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체험한, 초대교회공동체의 사람들이 실천했던 삶의 모습을 전합니다. 그대로 따라서 사는 일은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자본주의를 삶의 기본이론으로 말하는 세상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개인생산, 공동소유, 필요에 따라 생산의 좋은 결과를 만들지도 않은 개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필요에 따른 공동사용이라는 일은 이해하지 못할 일입니다.

 

실제로 세상에서는 신앙에서 전하고 있는 이러한 일이 옳은 것이라고 인정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이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한계일 것입니다. 내가 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쓸 것인데, 자신이 만든 삶의 결실을 내놓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개인주의로 생각하고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 하려고 하는 한, 초대교회공동체의 사람이 보여준 삶의 본보기는 우리에게 실현되지 않을 일입니다.

 

요한사도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과 계명을 따르는 일을 신앙인이 가져야 할 삶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합니다. 요한사도가 우리와는 다르게 삶의 지혜가 얼마나 뛰어난 것이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가 하느님의 선택과 축복으로 놀라운 사람으로 산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지혜로 전부 이해하지 못할 하느님의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부활대축일부터 8일째 되는 날, 우리의 삶에도 하느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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