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모든 관계의 시작은 자기 사랑에서부터 - 성현들에게 배우는 자존감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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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7 ㅣ No.260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모든 관계의 시작은 자기 사랑에서부터”

- 성현들에게 배우는 자존감(自尊感)의 중요성



미국의 명문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최근 1년 사이에 자살한 학생이 6명이나 된다는 보도에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주변의 다른 명문 대학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완벽주의 풍조와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이런 상황을 낳았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자랑거리만 올리는 SNS가 학생들의 경쟁심과 우울증을 부추기고, 대학에 간 뒤에도 자녀들의 학교생활을 일일이 챙기는 부모들이 많아진 게 원인이라고 합니다. 세계 최고 명문 대학에 다니면서도 자존감(自尊感) 없이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다 보니 작은 실패에도 쉽게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사정도 다르지 않지요. 요즘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많은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실시간 알 수 있지요. SNS를 통해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자신의 사진도 올리며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주고받습니다. 주로 맛집에 가서 맛있는 걸 먹은 사진이나 멋진 장소에 휴가 가서 재미있게 노는 사진이 올라옵니다. 문제는 친구들이 교대로 이런 걸 올리니 나 빼고 모두들 행복해 보이기만 합니다. 친구들은 늘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늘 휴양지에 놀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래서 나도 기회가 생기면 사진부터 찍어 올리기 바쁩니다. 한껏 즐거운 표정을 하며 정말로 행복하다는 듯이 말이죠. 서로 자랑하면서 더 불행해지고, 서로 소통하면서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오늘날 스마트한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자공이 말했습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괜찮으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다.”1)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가진 고유한 장점을 보지 못하고 늘 남들과 비교하다 보면 우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이웃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땐 나도 잘 살고 행복하지만 그 안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보면 금방 자신이 초라해지곤 합니다. 호화로운 고급 아파트촌에 살아도 비교하기 시작하면 불행하고 우울해집니다. 더 큰 집에, 더 호화롭게 사는 이웃, 성공한 남편,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비교하면서 ‘우리 집은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사나?’ 하며 불행해합니다. 일단 비교하기 시작하면 결과는 안 좋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내가 우월하다고 느끼면 교만하게 되고, 남보다 못하다고 여기면 열등감에 빠지겠지요. 어느 것도 좋지 않습니다. 비교해서 우월하다고 한들, 거기서 오는 행복은 불안한 행복입니다. 자만에 빠지면서도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으니 늘 불안해하며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합니다. 반면에 비교해서 열등감에 빠지면 우울해지고 시기, 질투하게 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이야기한 경지도 대단합니다. 남과 비교해서 가난하더라도 부유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다는 것은 덕을 많이 쌓은 군자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자공의 말에도 남과 비교하는 사람의 모습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에 공자는 가난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 부유하면서도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예(禮)를 좋아하는 사람의 경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자존감”, 즉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이 커야만 합니다.

공자는 비록 가난하고 비천하게 자랐지만 남들과 비교하며 신세한탄이나 하면서 우울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귀한 인격으로 성장하여 수많은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었습니다. 외적 조건이 사람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인(仁)을 실행하고 예(禮)를 존중하는 내면의 힘이 그 사람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잘 알고 몸소 실천했습니다. 공자가 세상을 떠돌아다닐 때 구이(九夷)라는 오랑캐들이 머무르는 비천한 곳에 가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누추한 곳인데 어찌 사시렵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군자가 거주하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2) 거처하는 곳이 비록 누추한 곳이라도 자기가 군자라는 의식이 있다면 그곳은 이미 누추한 곳이 아니라 군자가 머무르는 성스러운 공간이 됩니다. 자존감은 결국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해 주는 마음입니다.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존감이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중국 철학사에서 나를 사랑하는 데 최고의 전문가로 ‘양주(楊朱)’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주의자가 아닙니다. 자기애에 가득 차서 자기 모습에 심취해 다른 것은 볼 줄 모르는 나르시시즘도 아니었습니다. 양주가 주장한 “자신을 위하기(爲我)”, “자기를 귀하게 여기기(貴己)”는 삶을 긍정하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삶을 위할 줄 안다면 세상이 어지러울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양주는 삶 자체를 단순한 수단으로 여기는 모든 것을 배격했습니다. 세상에서 오직 자신의 삶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양주의 사상은 도가(道家)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소중하다는 가르침은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19,19)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나의 삶이 소중하다는 뜻이겠지요. 이제 다른 이들과 비교하고 싶은 눈은 잠시 감고,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잠시 접어 두고,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는 스마트폰도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을 바라봅시다. 나의 모습, 나의 마음, 나의 정신.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대로 만들어 주신,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사랑해 줍시다. 그리고 이런 나에게 소중한 것들,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행복에 젖어 봅시다. 이런 자존감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비교하는 마음 없이 다른 이들에게로 다가가 충만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1) 『논어(論語)』 「학이(學而)」 15장.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2) 『논어(論語)』 「자한(子罕)」 13장. 子欲居九夷. 或曰, “陋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15년 9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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