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묵주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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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7 ㅣ No.261

[신심서적 다시 읽기] 묵주알



- 《묵주알》 / 나가이 다카시 지음 / 이승우 옮김 / 바오로딸 펴냄

신심서적 《묵주알》은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다시 읽고 싶어서 찾았더니 눈에 띄지 않았다. 오래 되고 세로쓰기의 문고본이어서 이사를 하면서 정리한 것 같다. 《묵주알》이 떠오르면 ‘여기당’이 보이고 “…타다 남은 양동이에 아내를 주어 담고….”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그 뒤 일본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나서 ‘여기회원’이 되었고 여기애인(如己愛人; 내 몸처럼 남을 사랑하라.)의 뜻도 다시 새기게 된다. 《묵주알》은 병상일기(病床日記)이다. 전편에 걸쳐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그리고 아내와 두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묶어 그려본다.


1. 하느님사랑

○ 서문에서 :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일념뿐이다. 나는 이미 폐인이 되었으므로 커다란 봉사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꺼져가는 내 가냘픈 목숨을 이 일념을 위해 불사르며, 최후의 순간까지 하느님께 봉사하고 싶다.”

○ 십자가 : 우리 집터 안방이었던 곳을 파보니 제단에 모셨던 십자가가 있었다. 물론 나무는 타 버렸지만 청동으로 된 그리스도 상(像)만은 손상된 곳이 없이 그대로였다. 나는 모든 재산을 잃었으나 이 십자가를 잃지 않은 것이 무척 기뻤다.

○ 꽃 : 기와조각 틈에 한 떨기 나팔꽃이 피었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창조주의 마음씨에 감사드렸다. 황량한 폐허에 최초로 보내신 아름다운 선물, 역시 우리는 하느님께 버림받지 않았구나!

○ 욕심 : 몇 해 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었던 논에 미꾸라지가 들끓었다. 모두가 그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일을 했다. 상혼이 강한 사람들이 미꾸라지를 잡아 읍내에 내다팔면 돈벌이가 될 거라며 흥정을 끝내고 돌아왔는데…. 그 다음날 미꾸라지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하느님이 그날그날의 양식을 내려주시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누구든 욕심을 내면 그 은혜를 거두어 가시는 거여.”라고 말한다.

○ 토마스 고사키 소년의 편지 · 일본 26위 성인 중의 한 분 : “어머니!,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즐거움으로 삼고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훌륭한 최후를 마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한 발짝 먼저 천당에 가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더구나 소년이, 성인이라도 죽음 앞에서 이 말을 쉽게 할 수 있으랴?


2. 이웃사랑

○ 원고료는 많이 들어오지만 : 저는 이웃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므로 그들과 똑같은 정도의 낮은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지갑에 남겨 놓고는 그 나머지를 이웃의 삶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원자벌판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는 것은 저만이 아닙니다.

○ 가야노(딸)를 돕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 예수께서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귀하의 마을 안에 있는 이웃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늘에 숨겨져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고아나, 반 고아, 또는 고아예정자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먼 나가사키의 가야노에게 사랑의 손을 뻗쳐 주시기 전에 먼저 귀하의 이웃에 있는 외로운 어린이들에게 그 손을 뻗쳐주시기 바랍니다.


3. 부부사랑

○ 묵주알 : 대학의 조수로 있으면서 아내가 월급 40원으로 집안 살림을 꾸릴 때 불평하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아내에게 새 옷 한 벌 사주지 못했고 외식 한 번 한 일이 없었는데도…. 내 양말, 와이셔츠, 외투까지 모두 아내가 만든 것이었다. 원폭 후 사흘째 되던 날, “… 나는 곧바로 찾아내었다. 부엌 뒤쪽에 있는 검은 덩어리를, 그것은 타다 만 골반과 요추였다. 그 옆에 십자가가 달린 묵주가 남아 있었다. 타다만 양동이에 아내를 주워 담았다. 그때까지도 아내는 따뜻했다.” 가슴이 찡해 온다. “나는 연구실에서 방사선의 장해를 받아 백혈병에 걸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이 내리던 날,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말했더니 아내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이 듣고만 있었다. 어느 날, 아내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출근길을 배웅해 주었는데 도시락을 잊고 와 다시 집으로 되돌아갔더니 현관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내를 보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4. 자녀사랑

○ 가야노의 양녀문제 : 아이를 양녀로 맡겠다는 사람도 나서고, 재혼을 권유받기도 하는데…. 집이라고는 단칸방뿐이라서 내 침대 밑은 두 아이의 잠자리이자 또한 장롱 역할도 한다. 북쪽 벽에는 십자가와 성모상과 꽃이 놓여있고 그 옆 선반에는 책이 꽂혀있다. 그런데 재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남의 집에 주지 않는 이유는 이 아이에게 엄마를 단 한 사람으로 보존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두 아이에게 남겨줄 유산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어버이의 추억만이라도 아름다운 것으로 남겨주고 싶다. 순수한 양친에 대한 추억을…. ‘엄마’ 이것은 조그마한 가슴에 숨겨져 있는, 그리고 단 한 점도 더럽힘 없이 빛나고 있는 보석이다.

○ 편지 : 흩어져 있는 흰 뼈들과 함께 생활을 같이하는 이 처참한 꼴을 구태여 세이이치(아들의 이름)에게 체험시킨 것은, 아이에게 전쟁의 본체를 뼛속깊이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아이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일평생을 평화주의자로서 지낼 것임에 틀림이 없다.


5. 책을 읽고 나서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방사선학을 전공한 의학자이다. 자신도 백혈병이면서 원폭피해자를 치료하고, 아내도 원폭으로 잃었다. 또한 병석에 누워 1.5평 남짓한 단칸방 목조집(여기당)에서 5년 반 동안 두 자녀와 살면서 《나가사키의 종》, 《묵주알》 등 14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사랑, 평화, 신앙으로 그 삶이 설명된다. 《묵주알》은 사랑으로 엮인 병상일기이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성찰할 일이다. 신앙은 체험이다. 진리를 파악하는 길은 오직 하나이며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게 ‘나는 믿나이다.’ 라는 일념만이 필요하다. 신앙인이나 믿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 이 책을 널리 권하고 싶다.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5년 9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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