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아버지의 뜻 vs 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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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20 ㅣ No.1782

[빛과 소금] 아버지의 뜻 vs 나의 뜻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좋고 나쁨을 따질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자유와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이 판단을 합니다.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들은 사람의 가늠이 개입되면서 더 좋은 것과 그보다 못한 것으로 나뉘게 되고, 거기서 인간은 더 좋은 것을 취하고자 하는 욕망에 눈뜹니다. 탐욕 곧 죄의 뿌리입니다. 이후 사람은 이전까지는 몰랐던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느님의 시선을 피해 숨었으며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책임 회피에 이르게 됩니다. 죄가 번져가는 과정입니다. 주신 그대로 그저 누리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인간이 가려내면서 가지려다가 오히려 고통을 끌어안고 자유는 잃게 되었습니다.

 

탐욕이라는 말에 대해 보통 무엇인가를 욕심내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지만, 성경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인간의 미숙한 판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류의 지혜가 위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주의 광대함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인간이 어찌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어찌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알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알고 있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솔한 지성은 본질을 놓치고 사소한 것에 한눈을 팔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 판단으로 모든 좋은 것들을 제쳐두고 하나에만 갇혀 버리면서 자유를 잃게 된 것도 그러한 모습입니다. 오늘의 우리 인간관계에서도 자기 판단에 대한 의심 없이 상대를 구별하고, 결국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려 버리는 일이 생깁니다. 이어서 미움과 시기, 질투가 시작됩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면 평화로울 텐데 그러질 못하고 온갖 구차한 감정에 휘말려 자유를 빼앗깁니다.

 

신앙인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옳은 지향의 기도와 그렇지 못한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청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뤄주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뤄달라고 기도하고 있는가?’라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믿음은 있으나 자신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채우려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시는 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실망할 일이 없지만, 원하는 것을 고집하는 사람은 이뤄지지 않을 때마다 고개를 떨구고 하느님을 외면하게 될 것입니다. 탐욕이 고개를 들며 불평과 원망으로 번지는 죄의 과정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본능적으로 건강해지고 싶고 풍요로워지고 싶고 명예롭고 싶은 원의(原意)가 있습니다. 여기서 묻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좋고 나쁘고의 여부는 인간인 우리 편에서 구분 지어 저것이 아니면 안 된다며 자유로움을 포기한 채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겠습니까?

 

하루아침에 자식들과 재산을 모두 잃고 병까지 걸린 욥이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욥 2,10)

 

내가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이미 다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드리며 살고 계십니까? 모든 것을 이뤄주시는 놀라우신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땅에서 내 뜻이 이뤄지길 기도하고 계십니까?

 

[2022년 3월 20일 사순 제3주일 인천주보 3면, 장인호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신부(인천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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