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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 사람을 가장 소중히 생각한 성현들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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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08 ㅣ No.262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 사람을 가장 소중히 생각한 성현들의 가르침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가 신학교 입학할 때 원장 신부님이 하신 질문입니다. 신학교 입학시험 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교수 신부님들의 면접입니다. 총 세 곳의 면접장을 거쳐야 하는데 그중에서 원장 신부님과 원로 신부님들이 계신 면접장이 가장 긴장되는 곳으로, 두 사람씩 들어가서 여러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성소 동기를 묻거나 어떤 사제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뜻밖의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질문을 받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 같이 들어간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어요. 얼떨결에 저도 따라서 대답했습니다. “저도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신학교에 들어왔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문득문득 그때의 질문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 나는 정말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사람을 중시한 인물을 생각하면 공자(孔子)가 떠오릅니다. 『논어(論語)』에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구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께서 조정에서 물러나와 “사람이 다쳤느냐?”라고 물어보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1)

사실 공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논어(論語)』를 읽다가 이 대목을 접하고는 공자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한지, 얼마나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일화는 공자가 대사구(大司寇)라는 높은 벼슬에 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말은 자가용 이상의 가치를 지닌 큰 재산이었습니다. 일상에서뿐 아니라 전쟁 때 꼭 필요한 동력이었으므로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재산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말이 모여 있을 마구간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말이 “사람이 다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싸고 소중한 말은 어떻게 되었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집 안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값비싼 물건을 잘못 다뤄 깨뜨리기라도 하면 이게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아느냐며 아이에게 야단을 치고 속상해 합니다. 하지만 공자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가 사람만 생각하고 말의 생명을 경시한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주자(朱子)는 이렇게 주(注)를 달았습니다. “말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쳤을까 두려워하는 뜻이 커서 말에 대해서는 물어볼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2) 마구간에 불이 나 혹시라도 주인이 아끼는 말이 다칠까봐 하인들은 무리해서 불을 끄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인의 목숨 값보다 명마 한 마리 값이 더 비싼 현실에서 오로지 사람이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한 공자의 인품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속거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매일 뉴스에는 흉악한 범죄가 보도되고, 특히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이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극악무도한 일들이 자행되곤 합니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에게 왕따와 멸시를 받게 되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바로 지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같이 살면서 서로 사랑해야 할 가족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더불어 살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이웃이 오히려 나를 시기하거나 안 좋은 소문을 내고 따돌릴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생명이 하찮게 여겨지고 인권이 경시되는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희망찬 사람은 / 그 자신이 희망이다. // 길 찾는 사람은 / 그 자신이 새 길이다. // 참 좋은 사람은 /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 사람 속에 들어 있다. / 사람에서 시작된다. // 다시 / 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시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중에서

그렇습니다. 사람 때문에 세상살이가 절망적이더라도 다시 사람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죄를 짓고 하느님을 부정해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셔서 당신 아드님까지 내어 주셨고, 그 아들을 죽이기까지 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아들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 10-11)

우리가 받은 사랑이 이토록 크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공자 이후 전국시대에도 이런 주장을 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묵자(墨子)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른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며 당시 전쟁과 부역에 끌려가 고생하던 서민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당시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키며 나라의 발전만을 꾀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묵자는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허식에 빠져 낭비를 일삼던 유가(儒家) 사상을 비판하며, 물자를 아껴 쓰며 서로 사랑하며 산다면 어지러운 세상이 질서가 잡히고 사람들의 삶이 평화로울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겸애설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매우 흡사합니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이롭게 해 주기 때문에 반드시 하늘의 상을 받을 것이다. 하늘의 뜻에 반하는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며 서로를 해쳐서 반드시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다.”3)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지만 다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아 주는 것도 결국 사람입니다.

1) 『논어(論語)』 「향당(鄕黨)」 12장. ?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2) 朱熹, 『논어장구집주(論語章句集註)』, 12장.
3) 『묵자(墨子)』 「천지상(天志上)」 3장. “順天意者, 兼相愛, 交相利, 必得賞. 反天意者, 別相惡, 交相賊, 必得罰.”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15년 10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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