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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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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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11 ㅣ No.263

[신심서적 다시 읽기]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저자는 서문에서 “가장 사적이고 가장 주관적이며 어쩌면 믿음을 갖지 않은 이들에게,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이성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황당한 판타지 같은 글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하였다. 글을 읽으며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비롯해 아빌라까지 11개 수도원을 순례한 기록이다. 다 읽고 나서 ‘하느님의 큰 사랑과 기도와 하느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믿음’이 가슴에 다가온다.

○ 한국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에서〉 : 18년 만에 냉담을 풀고 성당을 찾아가 자기를 온전히 봉헌하고 수도원의 ‘손님의 집’ 벽에 달린 십자가를 보고 “왜입니까? 나는 망신을 당했고, 상처를 입었고,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내게 돌아온 것은 멸시와 배반과 수치, 그리고 통렬한 외로움입니다. 주님, 나는 도저히 당신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왜 그러셨나요? 대체 왜요?” 그러고는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하느님께 배반당한 이 느낌, 이건 참을 수 없다.”며 가슴 깊은 아픔의 하소연을 쏟아놓는다.

○ 미국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에서〉 :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때 승선 정원이 10명인 화물선에 14,000명을 태워 목숨을 구한 레너드 라루 선장이 전쟁 후 이 수도원의 마리너스 수사가 되어 머물렀다. 어떻게 그 작은 배가, 그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많은 위험을 극복했을까? 한국의 검은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메시지가 전해졌다고…. 신앙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고백이다.

○ 프랑스 파리의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 : 딸은 고3이면서도 늦게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의 길로 보내며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하느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단 한 사람도 고통을 피해간 사람은 없다. “다른 건 다 하느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다만 당신과 함께 걷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주님, 아이들을 두고 하는 이 기도가 진실임을 당신도 아시기에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 이탈리아 〈수비아코 수도원에서〉 : 베네딕도는 공부하러 로마에 왔다가 학업을 포기하고 수비아코로 온다. 그의 바람은 하느님을 찾는 삶이다. 어느 날 스콜라스티카(베네딕도 성인과 이란성 쌍둥이)는 오빠를 잡고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성인은 가야 한다고 일어섰다. 스콜라스티카는 합장을 하고 머리를 수그린 채 주님께 기도하였다. 식탁에서 머리를 들자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 쏟기 시작하였다. 베네딕도는 떠나지 못하고 스콜라스티카와 머물렀다. 하느님은 스콜라스티카의 기도를 받아주셨다.

○ 이탈리아 〈카말돌리회 산 안토니오 수녀원에서〉 : 평생 갇혀 산 수녀님! 수녀님이 바라신 것은 바티칸을 비롯한 교회의 정화와 쇄신이고, 놀랍게도 한국의 평화였단다. 라자레나 수녀님! 두 평쯤의 좁은 방에서 평생을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수녀님. 방안 오른쪽에 작은 십자가 침대가 놓여있고 의자와 아주 작은 책상이 전부였으며 수녀원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창을 통해서 미사에 참례한다. 20대 중반의 오페라가수 출신이 이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스스로 봉인된 삶을 시작한다. “사막(영적인)으로 가서 나와 함께 있자.”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봉인된 삶을 살았다고 전한 아빠티사 미켈라 수녀님은 그녀가 사용하던 편태(채찍)와 가슴과 배에 둘렀던 가시복대(중세의 극기도구)를 보여 주셨다. 돌아가시던 날 30분 전쯤, 44년 만에 문밖으로 나왔다. 나자레나 수녀님은 “내가 많이 아픕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하시고는 쓰러지셨다. 마지막 고해를 받으시고 가장 좋아하는 시편의 노래를 청했다. ‘야훼,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두 번쯤 불렀을 때 원장 수녀님 품에서 그 작은 분은 눈을 감았다. 상상이 어려운 철저한 수도자의 삶!

○ 이탈리아 〈카마돌리 수도원에서〉 : 그대의 생활 한가운데 사막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때때로 사람을 피해서 침묵과 기도 가운데 영혼을 재건하기 위해 고독을 찾도록 하라. 하루 한 시간, 한 달에 하루, 일 년에 팔일, 필요하다면 그 이상으로 그대 주변의 모든 것을 떠나서 하느님과 함께 고독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느 신부님의 말씀처럼 “사막에 간 성인도 있고, 수도원의 방으로 들어간 성인도 있고, 순교한 성인도 있다. 모습들은 다 다르지만 기도하지 않는 성인은 없었다.”

○ 스페인 〈아빌라에서〉 : 아빌라의 성녀! 스페인 각지에 개혁을 이루고 15개의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동료 수녀들까지도 마귀 들렸다며 못마땅해 하고 교황대사도 “싸대는 여자, 말 안 듣는 고집쟁이, 봉쇄를 뛰쳐나와 돌아다니는 여자” 등 욕을 들었다. 아빌라 성녀는 성체를 영한 뒤 밤새워 시편 51편을 외우고 나서 새벽에 눈을 감는다. “내 주, 내 님이시여, 이제야 그 바라던 때가 왔습니다. 떠날 때가 왔사오니 가나이다.”(『완덕의 길』 중에서)

○ 나가는 글과 후기에서 : 우리는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좁은 문으로 가야 한다. 한때는 남들이 “그렇게 은총을 받았는데 어찌 저 모양이야?” 할까 두려웠는데 요즘은 “은총을 받아서 이 정도가 되었습니다.”라고 용기를 낸다. 나는 인간이기에 천년이 하루 같을 수는 없으나 하루가 천년 같게 살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하면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사랑만이 우리의 시간들을 알맹이로 채워준다는 것을 나는 이제 어렴풋이 느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수도자나 성직자의 신분도 아닌데 그렇게 철저하게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이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외국의 여러 수도원의 삶도 엿보게 한다. 더 다행한 것은 나의 본당이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의 소속 성당이기도 하고 또 수도원이 매년 예비신자 성지순례 코스여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소개된 수도원을 순례한 경험 등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후기에서 이 지상에서의 나의 삶은 사랑만이 우리의 시간들을 알맹이로 채워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낀다고 했다. 읽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 것에 감사드린다.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펴냄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5년 10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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