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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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강요하지 않는 성모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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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2 ㅣ No.257

[경향 돋보기] 강요하지 않는 성모신심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의무인가?

 

사람들로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전철역 주변을 지나가다 보면 참 귀찮은 일을 당할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네 신앙을 강요할 때다.

 

자칭 ‘전통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며 이른바 ‘포덕’이라는 것을 펼치는데, 이는 혼자서 가는 사람에게 더욱 심하다.

 

그들은 “잠깐 이야기 좀 나누자.”거나 “얼굴에 덕이 가득하신데 도에 관심이 있느냐?” 등 귀가 솔깃한 말을 미끼로 던진 뒤 혹시라도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거나 강하게 뿌리치지 못하면 적극적으로 다가든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들의 본거지로 데려가 “조상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면서 제사비용을 받아낸다. 처음에는 점잖게 거절하던 나는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면서, 또 그들의 의도를 알고 나서부터는 그들이 말을 걸어오는 몸짓만 보여도 심한 거부반응을 나타내거나 꾸지람을 하게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기, 도, 주역, 관상, 사주 등과 같은 이른바 ‘동양철학’에 끌려 입도식이란 것을 치르고 신자가 된다. 철저한 교육을 받은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에 거의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매달린다.

 

또한 자신들이 조상을 섬기는 ‘애국적인’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비뚤어진 믿음에 끌어들이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알고 있다. 그러기에 행인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다.

 

 

성모 신격화는 위험하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사람들을 위에서 말한 신흥종교나 사이비 종교에서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특히, 이른바 열심하다는 사람들 가운데 더욱 많다. 성모신심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적체험을 했다.”느니 “신비한 빛을 보았다.”느니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이들은 이미 본인이 직접 체험을 했기 때문에(또는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남에게 ‘확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말한다. 그가 특정한 장소에 가보았던 경우라면 다른 사람들도 꼭 그곳에 가보아야 한다며 같은 곳에 데리고 간다. 그러면 직접 가보지 않았거나 ‘신비체험’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어느 것이 교회의 올바른 가르침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주눅’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그들이 가보자고 하는 곳에 같이 가거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가지 못하는 경우에는 속으로 은근히 ‘죄책감’까지 느낀다.

 

어떤 이들은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너무도 열렬하여’ “이 세상이 너무도 악에 물들어있어서 하느님께서 치려고 팔을 드셨는데 성모님께서 그 팔을 붙잡고 계신다.”고 하면서 성모님께 기도하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느님을 ‘분노하는’ 분으로, 성모님은 그와 대조적 분으로 ‘자비하신’ 분으로 표현하는 것은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이유는 그분이 하느님의 명에 따라 이 세상에 구세주 예수님을 낳아주시고 기르셨으며, 당신 스스로 그 아드님의 제자가 되어 사셨던 신앙의 모범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의 죽음과 승천 이후 예수님 곁에서 신자들의 기도를 효과적으로 ‘전해’주시는 ‘전구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신 그분의 존재를 신격화하여 삼위일체께만 드릴 수 있는 ‘흠숭’의 예를 드린다든지, 그분이 원하시면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 이루어진다든지 하는 등의 생각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물론 성모님께서는 모든 성인과 천사들보다도 높은 지위에 계신다. 그래서 예전에 교회는 성모님께는 ‘상경지례’를 드린다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은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공경’보다는 높은 의미다. 교회 전례력 안에서 성모님과 관계있는 축일이나 기념일들을 헤아려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어떤 성인이나 천사들보다도 성모님과 관련한 축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모님이 신과 동격의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잘 살펴보면 이런 많은 성모님의 축일이나 기념일들도 모두 예수님의 축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성모님이 그만큼 예수님께 충실하셨고, 또 신자들을 예수님께 올바로 인도하고자 하는 분이심을 뜻한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갈등을 느끼는 부분은 위에서 말한 공경 태도나 기도의 대상뿐이 아니다. ‘기적’이라고 일컫는 사건이나 ‘발현’ 사건 앞에서 난감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발현 사건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우리가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이 있고,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건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의 오감은 현실보다는 이런 일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웃들이나 그 현실을 쉽사리 외면하고 신비주의자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현실이 막막할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이는 괴롭고 힘든 현실에서 피하려는 심리의 소산이리라.

 

그러나 성모 마리아 발현이나 그에 따르는 기적 사건들은 우리가 신자로서 믿어야 하는 신앙 내용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굳건하게 해주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교회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이다. 마리아의 발현 이야기는 매우 많다. 그 장소와 메시지, 목격자들도 다양하다. 그중에는 소속 주교가 인정한 경우도 있고, 교황청이 추후에 발현 목격자를 시성하거나 성지순례를 권장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승인하는 경우도 있으며,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발현 사건들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지 않는다. 교회의 승인은 교의처럼 믿을 내용으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발현이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 없고 신심을 위해 충분한 징후들이 있다는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비록 승인된 것이라 하더라도 신자들이 거기에 동의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떤 발현 사건이든지 모든 그리스도인이 신앙조항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강제성을 띠지는 않는다. 신자로서 믿고 순응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 자신을 앞세우고자 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뒷전에 머물러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활동에 협력하는 분이심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요를 당해서가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와 본인 스스로 가지게 되는 신심이야말로 더욱 귀중한 것이 되리라 생각한다.

 

* 최경선 소피아 - 로마 마리아눔 대학에서 마리아론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부산 가톨릭대학과 수원 마리아 학교에서 마리아론을 강의한다. 교황청 소속 국제 마리아 학회 한국 대표, 미국 데이튼 대학 마리아 학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7년 5월호, 최경선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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