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수도 ㅣ 봉헌생활

봉헌, 완전한 사랑: 봉헌생활의 근본 규범인 그리스도를 따름과 창립의 정신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29 ㅣ No.503

[봉헌 - 완전한 사랑] 봉헌생활의 근본 규범인 그리스도를 따름과 창립의 정신

 

수도자들의 근본 규범인 그리스도를 따름

 

 

봉헌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수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소명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소명이며, 더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소명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에게 참된 인간의 모습을 계시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단지 당신을 알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빛이 되십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믿는 이들에게만 따라야할 진리이고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면, 이미 그 자체로 진리의 보편적 성격을 잃어버린 것이기에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수도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따르고 닮아야 할 참된 진리이십니다.

일찍이 네 복음서는 모두 그리스도로부터 부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을 전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 우리 역시 그분들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삶의 궁극적인 의미 물음의 답이신 그리스도

제가 수도 성소에 강한 끌림을 느꼈던 소싯적, 저를 사로잡았던 것은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나는 왜 사는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진정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진리는 있는가?” “인생에 참되고 영원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 앞에서 세상이 주는 모든 부귀, 명예, 인간적인 사랑, 자녀와 같은 세속적인 가치들은 상대적일 뿐,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남자로 태어나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의 정점에 선다 한들 기껏해야 5년이고, 세상의 부를 모두 거머쥔 갑부가 된다 한들 죽으면 저 세상에 1원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게 진실입니다.

인간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태어날 수 없듯이, 역시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과 죽을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 모든 인생의 허무를 넘어서 우리 존재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참되고 영원한 진리는 있을까요? 만일 그 진리가 있다면, 그 진리를 만나고 하나될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살아도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할 것입니다.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성찰 없이 산다면 백 년, 천 년을 살아도 그저 목숨만 연명하는 동물적인 삶에 불과할 뿐 아무 의미 없는 삶에 불과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치열한 성찰의 끝에서 저는 참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래서 그분의 뒤를 따르기로 하고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행의 여정을 돌고 돌아 이제 몇 년 후면 어느새 서원 은경축을 맞이하게 됩니다.


수도자는 완덕을 지향하는 구도자

저는 인생 전체를 두고 고심했고 온 가슴으로 받아들여 투신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길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궁극적인 길이자, 무엇보다 그리스도교적인 의미의‘도(道)’를 닦는 모든 수도자에게 근본적인 규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시작과 끝이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나가 일생을 통해 정진하며 고행과 극기 속에서 밤낮으로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던 초기 수도자들이 온 존재로 받아들여 살고자 했던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한 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며 그분을 통해 진리로 나아가고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과 싸우며 그분의 사랑을 깨치고 그 사랑에 응답하며 그분과 온전히 사랑으로 하나되고자 했습니다.

수도자들은 ‘완덕(完德)’을 지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완덕의 요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는 것, 그럼으로써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수도자들은 그러려고 ‘정결’, ‘청빈’, ‘순명’이라는 복음 3덕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공적으로 서원하고 살아감으로써 완덕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의 바탕인 대신덕, 곧 ‘믿음’, ‘희망’, ‘사랑’은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 살아야 하는 삶의 근본 원리입니다.

네 복음서 곳곳에 보면 예수님께서 더욱더 완전한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저러한 것을 하도록 권고하시는 모습을 가끔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권고는 해도 되고 안 해도 크게 상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면 더 좋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도자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고 거룩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주신 복음적 권고들을 충실히 살아감으로써 더욱 그분을 닮는 가운데 더 완전하고 거룩한 이들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수도자는 ‘더욱더’의 법칙을 사는 사람

수도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인류의 빛’ 6장 44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서원을 통하여… 세 가지 복음적 권고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은 지극히 사랑하는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며, 이렇게 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새롭고 특수한 자격을 받는다. … (그들은) 하느님 섬김에 더욱 깊이 봉헌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견고하고 더욱 확고한 유대를 통하여, 신부인 교회와 불가분의 유대로 결합되신 그리스도를 더 잘 드러낼수록 이 봉헌은 그만큼 더 완전해질 것이다.”

여기서 수도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표현은 ‘더욱더’라는 수식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도자들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일종의 ‘옵션’을 받아들여 하느님처럼 더욱 더 거룩해지려고 투신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더 좋아할까?”, “그의 마음에 더 드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더욱 깊이 사랑으로 일치하려는 수도자는 그분 마음에 더 드는 것, 그분이 더 좋아하시는 것을 ‘더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선택사항으로 주신 것을 받아들여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키워감으로써 더욱더 주님을 닮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수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자는 창립자의 정신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그러나 수도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되 그 방식에서 자신이 속한 수도회의 영성이라고 하는 틀 안에서 그분을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한 수도회에 영성적인 특징을 부여해 준 사람은 그 수도회를 창립하고 이를 교회로부터 인준받은 창립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수도회의 창립자가 어떤 영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지향으로 그 수도회를 설립했는가가 개별 수도자의 영성적인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중요한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립자의 영성은 다른 게 아닙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되 어떻게 따랐으며 어떤 그리스도를 닮고자 했는가가 바로 그의 영성의 색깔을 규정짓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어떤 창립자는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는가 하면, 어떤 창립자는 병자들을 돌보고 치유하시는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고, 또 어떤 창립자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시는 그리스도를 닮으려 합니다. 또 어떤 창립자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닮으려 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창립자들의 고유한 방식이 그의 영성이 되는 것이며 그 영성이 바로 그 창립자가 설립한 수도회의 영성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인가한 어느 수도회에 속한 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되, 그 수도회를 설립한 창립자의 방식대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속한 가르멜회는 그 창립자인 성녀 데레사의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하 느님을 깊이 체험하고자 기도생활에 전념합니다. 도미니코회는 창립자인 성 도미니코의 영성에 따라 교회의 학문을 충실히 공부하고 강론과 강의를 통해 가르치는데 전념합니다.

프란치스코회의 창립자인 성 프란치스코는 특별히 ‘가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셨습니다. 예수회는 창립자인 성 이냐시오의 영성을 따라 ‘더 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학문에서부터 선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성을 삽니다.

방인 수도회의 경우, 꽃동네수도회의 창립자인 오웅진 신부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돌보셨습니다. 순교복자회는 순교 성인성녀들의 모범을 따라 사셨던 방유룡 신부님의 영성을 따라 특별히 순교영성을 깊이 있게 삽니다.

이렇듯 각각의 수도회들은 창립자의 영성에 따라 그리스도를 따르며 교회에 봉사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의 지체들을 이룹니다.

그러나 동시에 개별 수도자들은 자신이 속한 수도회의 영성이라고 하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영성을 계발하고 성숙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럴 때비 로소 그는 진정한 수도자로서 서게 될 것입니다.

* 윤주현 베네딕토 - 가르멜수도회 수도사제. 로마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 가르멜수도회 대구수도원 원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서와 역서를 펴내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1월호, 윤주현 베네딕토]



2,11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