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연중 22 주간 화요일-2003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9-02 ㅣ No.481

연중 22 주간 화요일 - 홀수 해

 

        1데살로니카 5,1-6.9-11   루가 4,31-37

    2003. 9. 2.

주제 : 내가 받아들이는 하느님

 

사람은 자기 눈앞에 있는 것만 봅니다.  우리가 가끔씩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소식들과 이야기들 때문에 놀라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만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훨씬 더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중요한 사실들을 자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시하고 지내다가 내 삶에 힘겨운 시련을 당하게 되면 눈이 번쩍 뜨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에 가서는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도 갑자기 보게 된 것처럼 우리가 놀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시기가 늦어질수록 힘겨운 일은 많아지는 법입니다.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주보에 실린 글의 내용 한 가지는 ‘내가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보느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우리 삶의 친구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감시자로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우리 삶은 크게 달라집니다.  내가 하느님을 친구로 받아들인다면 정성을 다해 내 것을 하느님께 주려고 애쓰겠지만, 내가 하느님을 감시자와 책망하는 분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그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범죄 후에 나무 뒤에 숨습니다.  물론 내가 아무리 애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내가 빛의 자녀로 살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권장할 만한 삶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나오는 비판자의 경우처럼, ‘당신은 내 삶을 방해하는 분, 따라서 제가 편히 살도록 제발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삶을 지내고 있다면 문제는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각자는 이런 정도는 우리 삶을 구별할 줄 압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식적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알아들은 것이 전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걸림돌로 생각하고 최대한 그 걸림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다가올 것은 ‘현재 안전하게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난처에서 쫓겨나는 것’ 뿐입니다.  입을 통하여 발설하는 내용이 옳든 아니든 예수님은 악마에게 ‘입을 다물고 그 사람에게서 나올 것을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선언이 우리에게 가혹한 말씀으로 들려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31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