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자 발견 150주년] (상) 잠복 키리시탄과 사제, 250년 만의 해후

일본 교회 암흑기 250년 뛰어넘은 부활, 그 감동의 순간!

- 오우라 천주당 앞에 있는 ‘일본 신자 발견 100주년 기념비’. 잠복 키리시탄들이 성모자상을 발견한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1865년 3월 17일, 일본 열도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천주교 신자가 오우라 천주당에 나타났다. 1614년 일본 전역에 금교령이 떨어진 후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250여 년간이나 숨어 신앙을 지켜온 것이다. 일본 교회는 이 기쁨의 사건을 ‘일본 신자 발견’, 그 주인공들을 ‘잠복 키리시탄(포르투갈어 크리스타오 christao에서 유래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올해는 ‘일본 신자 발견 150주년의 해’다. 이웃 교회의 뜻깊은 때를 맞아 나가사키현 서울사무소의 초청으로 3~6일 일본 나가사키 현 현지 천주교 사적지를 순례했다. 3회에 걸쳐 일본 신자 발견 150주년의 의미와 일본 교회와 한국 교회의 역사적 관계 등을 살펴본다.

“프랑스 절에 갈 거다. 가서 그 서양 사람이 우리가 기다리던 신부님이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1865년 3월 17일 일본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마을, 가족들과 기도를 마친 이사벨라 유리 부인이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얼마 전 외국인 거류지에 서양 사람이 지붕이 뾰족한 집을 짓고 성모 마리아상을 모셔놓았단 소문을 들은 것이 계기였다.

가족들은 경악했다. 전보다 외국인 출입이 잦아졌다지만 아직 조정에서는 천주교 신봉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위가 먼저 이사벨라 유리 부인을 말렸다.

- 잠복 키리시탄들이 보고 기뻐했던 오우라 천주당에 있는 성모자상.


“장모님, 저도 그곳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절이 세워진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몰려든 구경꾼들 입을 타고 전해진 이야기라 무작정 믿고 찾아가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사벨라 유리 부인은 이미 확신에 차 있었다. 바스챤 순교자의 예언 때문이었다. 박해 초기 선교사로 활동했던 바스챤은 처형되기 전 ‘7대 동안 박해가 계속된 후에 로마의 파파가 보낸 사제가 마리아를 모시고 온다’는 예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 7대손이 바로 이사벨라 유리 부인이었다.

결국 이사벨라 유리 부인을 포함해 가족 15여 명이 3월 17일 아침 일찍 프랑스 절로 향했다. 정오가 조금 넘은 때에 도착한 프랑스 절에는 ‘오우라 천주당’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가족들은 ‘천주’라는 글자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기도를 바칠 적마다 다른 이들이 알아듣지 못하게끔 웅얼대며 ‘천주’라는 말을 입안에서 삼켜야 했던 이들에게 그 글자는 자체로 감동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성모 마리아상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가족들은 천주당 문을 열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그때 전전긍긍하는 가족을 본 한 서양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오우라 천주당 주임 프티장(파리외방전교회) 신부였다.

신부는 가족들을 성당이 궁금해 매일같이 찾아오는 구경꾼으로 여기고는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쳤다. 그런 신부에게 가족 중 한 부인이 다가와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 오우라 천주당 전경.


“우리는 당신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티장 신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신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이들은 오래전 사라진 키리시탄의 자손일지 모른다!’ 가족들이 던진 그다음 질문은 신부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성모 마리아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부는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가족들을 제대 왼편으로 데려갔다. 그곳엔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있는 인자한 얼굴의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다. 가족들은 성모자상을 보고 감동해 어쩔 줄 몰랐다.

몇몇은 성모자상을 보고 자신이 키리시탄인 것을 감추고자 제 발로 밟았던 성모님 얼굴이 떠올라 끓어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표정으로, 몸짓으로, 목소리로 오우라 천주당에서 신앙을 고백했다. 금교령 이후 약 250년 만의 일이었다. 이것은 그동안 목자 없이 자신의 힘으로 신앙을 지켜온 양 떼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온 순간, 일본 교회가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15일, 일본 나가사키=백슬기 기자]

타카미 미츠아키 대주교(나가사키대교구장) - 키리시탄의 강인한 신앙 본받아야

“일본 신자 발견 사건은 ‘일본 교회의 과거를 미래로 연결하는 사건’입니다. 모진 박해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잠복 키리시탄이 있었기에 일본 교회가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나가사키대교구장 타카미 미츠아키 대주교는 일본 신자 발견의 의미를 전하며 “천주교 성당을 찾아와 신앙을 고백한 수만 명의 잠복 키리시탄들이 일본 교회의 새로운 핵이 됐다”고 설명했다.

타카미 대주교는 일본 신자 발견 150주년(17일)을 맞아 “신자들이 교회 역사를 깊이 알고, 사제 없이 신앙을 지켰던 선조들의 신앙심을 본받아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지혜와 용기를 얻길 바란다”면서 “이번 기회로 일본 교회가 종교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고 선교하는 공동체로 거듭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타카미 대주교는 일본 교회와 한국 교회의 관계 증진도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양국의 과거사와 그에 따른 국민적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도 “양국 간 평화 구축을 위해 교회로서 공헌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러한 노력의 원동력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얻어야 한다”며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교류해 나갈 수 있도록 서로의 기도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나가사키의 교회군(群)과 그리스도교 관련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려는 최근 일본 정부의 활동에 기대감을 내비치며 “일본 내 비신자들에게 일본 역사가 그리스도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천주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편 매년 3월 17일 나가사키대교구 차원에서만 이날을 기념했던 것과 달리, 올해부터는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승인을 받아 이날을 ‘일본 신자 발견의 성모’라는 일본 교회의 축일로 정하고 전국적으로 기념하고 축하한다. 이에 대해 타카미 대주교는 “일본 교회가 키리시탄의 강인한 신앙을 본받아 쇄신과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며 “그리스도의 참된 모습을 알릴 기회가 주어졌으니 적극적으로 복음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15일, 백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