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전례ㅣ미사

[축일] 전례력 돋보기: 축성 생활은 아까운 인생이 아닙니다 -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및 축성 생활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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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2-12 ㅣ No.2403

[전례력 돋보기] 축성 생활은 아까운 인생이 아닙니다 -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및 축성 생활의 날

 

 

2월 2일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이날은 연중 시기에 있긴 하지만 성탄절의 날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에 성탄 축제의 마지막으로 여겨집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며(탈출 13,2) 아들을 낳은 여자는 40일째 되는 날 정결례를 드려야 했습니다.(레위 12,1-8) 교회는 성탄절인 12월 25일 이후 40일째 되는 날이 2월 2일이기 때문에 이날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면서 정결례를 드린 것(루카 2,22-40 참조)을 기념합니다.

 

실제로 주님의 봉헌이 이루어진 예루살렘에서는 4세기 후반부터 이날을 성대하게 기념했습니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안고 성전으로 향했던 것처럼 신자들은 갖가지 초와 등을 밝혀 들고 예수님의 무덤 성당에 이르기까지 찬미가를 부르며 장엄한 행렬을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빛이신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이날에 우리들도 각자 영혼의 빛을 밝히고,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봉헌의 의미가 가득한 주님 봉헌 축일에 교회는 특별히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기억합니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이날을 ‘축성 생활(vita consacrata)의 날’로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축성이라는 말을 성직자에게만 국한시켜 ‘봉헌 생활의 날’이라고 번역해 왔지만 2019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그 번역을 바로 잡아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께 거룩하게 봉헌된 수도서원을 한 이들 역시 축성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축성 생활은 아까운 인생이 아닙니다.” 이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22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미사의 강론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교황님은 “세상은 종종 축성 생활을 ‘낭비 혹은 소모(spreco)’된 아까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괜찮은 젊은이가 수도자가 된다고요? 저렇게 괜찮은 젊은이가 수녀가 된다고요? 참 아깝네요. 차라리 못생기기라도 했으면….’ 세상은 어쩌면 축성 생활을 과거의 잔재나 쓸모없는 삶으로 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날 교황님의 강론은 그 미사에 참례한 수도자들을 향한 것이었지만, 참으로 현실을 꿰뚫는 말씀은 우리들의 생각과 시선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역시 은연중에 수사님이나 수녀님들을 ‘아까운 인생’으로 여기기도 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 수도 성소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좀 더 온전한 사랑으로 따르려고 선택하는 수도 성소는 참으로 고귀하고 소중한 삶입니다.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서원을 통해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두 팔을 벌려 예수님을 껴안고 살아가는 축성 생활자들의 존재는 세상에 예수님을 드러내고 그분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일이 참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고귀한 삶을 아깝다고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는 시선의 이면에는 세상의 편리함과 풍족함에 젖어 있고, 세상의 논리가 예수님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보다 우선한다는 사고방식이 앞서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물질주의와 세속화의 흐름 속에 예수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그 소중하고 고귀한 일을 자신의 삶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들, 또 그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과 존중과 격려가 전해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지향은 인생을 낭비하거나 소모하는, 아까운 인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고결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주님 봉헌 축일에는 성전에 봉헌되신 티 없이 맑으신 아기 예수님처럼 우리도 영혼의 등불을 켜고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 삶을 봉헌할 것을 다짐합시다.

 

나아가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을 봉헌한 축성 생활자들의 사랑과 열정이 한결같이 밝게 타오를 수 있도록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기도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월간 빛, 2024년 2월호,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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