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가톨릭 교리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02 ㅣ No.146

[교회상식 교리상식] (17)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왜?

 

 

11월은 위령성월이라고 해서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달이라고 들었습니다. 산 이들도 아닌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 연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은 죽은 이들도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의 표현이자 사랑의 행위이다.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잘못한 죄를 다 기워갚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천상 행복에 들기 전에 정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이 죽어 그 영혼이 정화 중에 있는 상태를 전통적으로 연옥이라고 불렀습니다.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란 이렇게 정화 중에 있는 영혼이 속히 정화를 마치고 하느님 품에서 영복을 누리도록 해 달라고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무엇보다도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과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회개하고 구원, 곧 영원한 삶을 얻을 기회가 아직 있지만 죽은 이들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희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이들도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산 이들의 기도가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갓난 아이나 중환자실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환자는 아무리 원해도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곁에서 돌봐주는 엄마와 봉사자가 있기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또한 사랑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죽은 이야말로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입니다. 그들에게서는 더 기대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또한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 교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백성의 모임, 곧 성도(聖徒)들 공동체입니다. 성도들 공동체인 교회는 현세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지상교회) 뿐 아니라 이미 천국 영광 중에 살아가는 성인들(천상교회)과 연옥에서 단련받는 이들(정화 중인 교회)이 함께 친교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이란 이렇게 세 형태로 이뤄진 하느님 백성이 서로 공을 나누고 통교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통공에는 기도뿐 아니라 희생과 사랑 등 온갖 좋고 거룩한 일이 모두 포함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상의 성인들께 우리를 위해 빌어 달라고 전구(轉求)하기도 하고,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성인들 통공과 관련,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의 친교를 믿습니다. 곧, 지상에서 순례자로 있는 사람들, 남은 정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죽은 이들, 하늘에 있는 복된 분들이 모두 오직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친교로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과 그분의 성인들이 우리의 기도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962항).

 

 

알아둡시다

 

연옥이란 : 교회는 연옥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과는 전혀 다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030~1031항).

 

이 가르침에 따르면 연옥은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지옥불)과는 전혀 다르며 죄를 지은 영혼이 거룩하게 돼 천국에 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정화 과정입니다. 이 정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해가 될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두렵고 고통스럽습니다. 그 사람이 벌을 주겠다고 벼르지 않더라도 그 사람 앞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화끈거리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연옥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현대 신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하느님과 만나게 되는데 사랑 자체이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과 만나는 그 자체가 죄를 지은 영혼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자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만남을 통해 영혼이 정화됩니다. 그것은 분명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겠지만 받아야 할 벌에 대한 고통이나 두려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신 하느님 앞에 자신이 지은 죄와 허물이 낱낱이 드러나고 그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으로 인한 고통이 감당하기 힘들고 두려운 그런 정화일 것입니다.

 

연옥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하느님 사랑과 은총으로 죽은 의인들이 가는 특정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의인이 또는 연옥의 정화를 거친 영혼이 하느님과 누리는 영원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지옥은 하느님을 거부한 사람, 하느님과 또 성인들과 이루는 친교를 결정적으로 '스스로 거부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단절된 상태 그 자체가 지옥인 것입니다. 지옥의 존재에 대한 교회 가르침은 인간에게 자신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 책임감을 지니고 자유를 행사하라는 호소이자 또한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합니다.

 

[평화신문, 2006년 11월 5일, 이창훈 기자]



5,40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