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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산책: 발을 신발에 맞추지는 않는지요? - 새해를 맞아 삼가고 경계해야 할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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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09 ㅣ No.268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발을 신발에 맞추지는 않는지요?”
- 새해를 맞아 삼가고 경계해야 할 세 가지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한 해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한 해 동안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기원하기도 합니다. 옛 성현들은 새해를 시작하며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고 경계(警戒)했습니다. 우리도 공자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가는 데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으니, 젊어서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경계할 것이 색(色)에 있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한창 강하므로 경계할 것이 다툼(鬪)에 있으며,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하므로 경계할 것이 소유함(得)에 있다.”1)

젊었을 땐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고 왕성하게 성장할 때입니다. 사춘기를 지나며 육체는 급격히 성장하지만 아직 정신은 그만큼 성숙하지 못합니다. 이성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과 사랑, 열정의 마음이 있지만 상대를 배려하거나 책임지는 사랑의 성숙까지는 이르지 못해 많은 혼란을 겪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이 말씀은 특히 요즘의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더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는 성(性)관념이 너무 개방적이고,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선정적인 영상이나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이돌 스타들이 인기를 끌면서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하고,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 몸짱 만들기 등이 유행처럼 퍼집니다. 예쁘고 멋있는 외모가 이 시대의 우상처럼 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부추기며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은 어른들입니다. 매스컴을 통해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거기에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아이들은 아직 혈기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 때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색(色)에 빠져 혈기를 함부로 쓰지 않도록 기성세대가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장성해서는 혈기가 가장 강하기에 다툼(鬪)을 경계해야 합니다. 투(鬪)는 싸움, 다툼을 뜻하는 말로, 다른 이들과의 끝없는 경쟁을 말합니다. 흔히 오늘날의 세상을 전쟁터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람들은 끝없이 경쟁합니다. 회사 동료도 이웃도 모두 나의 경쟁 상대일 뿐입니다. 늘 비교당하고 비교하는 가운데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해야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세상엔 나보다 외적 조건이 나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비교하는 행위는 결국 열등감만 키우고 나는 불행하다는 생각만 들게 합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경쟁을 하고 별 일아닌 일에도 욕을 하며, 기분 좋은 술자리에서도 술을 누가 더 잘 마시느냐로 다툽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봉사하는 것도 남과 비교하고 경쟁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과열된 세상, 화가 나 있는 사회 같습니다. 두세 사람만 모여도 뒷담화, 험담을 하고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왕따를 시킵니다. 우리는 다툼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든 지든 싸운다는 것은 결국 손해입니다.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상책(上策)으로 여깁니다. 강한 혈기를 잘 다스려 다투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노년은 이제 혈기가 약해지는 시기입니다. 혈기가 약해지는데 왜 얻음(得)을 경계해야 할까요? 노년은 그동안 수고한 결실을 거두며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릴 시기인데 왜 내가 얻은 것들, 소유한 것들이 경계해야 할 대상일까요? 요즘의 겨울나무들을 보세요. 봄의 화사한 꽃잎도, 여름의 싱싱하게 푸르던 잎도, 가을의 풍성한 열매도 다 떨어뜨리고 마치 죽은 것처럼 딱딱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푸르른 나뭇잎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어땠을까요? 혹독한 추위에 그 많은 물기가 다 얼어 터져 버렸겠지요. 그러면 나무 전체가 죽어 버릴 겁니다. 그래서 나무는 가을이 되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잎사귀로 들어가는 수로를 막아 버립니다. 물이 공급되지 않는 나뭇잎은 점점 말라 가고, 결국 떨어져 나가게 되지요. 그 말라 가는 과정이 아름다워서 사람들은 낙엽을 보며 감탄합니다. 늦가을에 산에 가보면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냇물이 많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이 품고 있는 물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산의 나무들도 물을 내보내고, 흙이 품고 있던 물도 계속 흘려보냅니다. 겨울이 와서 나무가 얼어 터지고 땅이 갈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내려놓고, 버리는 길만이 사는 길임을 자연은 알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만이 나이가 들수록 잘 내려놓지 못합니다. 돈이나 재산 같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명예를 얻음에 집착해 업적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무리해서 책을 출판하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돈을 쓰는 것도 소유욕의 다른 형태지요. 권위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많고 경륜이 쌓일수록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공자는 나이 육십에 “귀가 부드러워졌다.(耳順)”라고 했습니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어른이 될수록 귀가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다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 줄 수 있는 겸허함이야말로 현명한 군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은 얻는(得)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虛)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내 삶에서 무엇이 주(主)된 것인지, 무엇이 부수적인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무엇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며, 무엇이 수단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한(漢)나라 때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기르기 위하여 길러야 할 목적물을 해치는 것은 비유컨대 발을 깎아 신발에다 맞추고, 머리를 깎아 갓에다 맞추는 것과 같다.”2)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 삶에서 추구해야 할 주된 것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맹목적으로 달려 나가기만 한다면 목적은 잊고 수단만을 강조하게 될 것입니다. 주(主)된 것을 등한시하고 부수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게 될 것입니다. 발에 맞고 편한 신발을 고르려 하지 않고, 신발이 하나 생겼으니 거기에 발을 맞추려고 발을 깎아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 것입니다. 친목도모를 위해,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이런저런 봉사활동에 얽매여서, 미사에 안 나가면 왠지 찜찜해서, 부모님께서 간절히 원하셔서 성당에 나간다면 신발에 발을 맞추는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우리의 주(主)는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느님 나라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입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공동번역 요한 6,68)

1) 『논어(論語)』, 계씨(季氏) 16편, 7장.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2) 『회남자(淮南子)』, 권17 「설림훈(說林訓)」 편. “夫所以養而害所養, 譬猶削足而適履, 殺頭而便冠.”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16년 1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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